이종찬 광복회장 “이승만도 임시정부 계승 강조했다, 기념관에 꼭 기술해야” [차 한잔 나누며]

이종찬 광복회장 인터뷰
“1919년·임정은 곧 대한민국 정체성
北과 정통성 경쟁서 우위에 서는 것
백선엽 ‘친일 문구’ 삭제는 아쉬워
해방 전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일환
노선, 생각 달라도 폭넓은 인정 필요”

“이승만 기념관이 만들어지면 이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강조한 부분을 꼭 넣어야 합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제78주년 광복절을 앞둔 1일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민간 주도로 건립이 추진되는 이승만기념관 논란에 대해 “진보 진영은 이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깎아내리는 반면, 보수 진영은 이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신격화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기념관을 짓되 보수 역사학계가 주장하는 ‘1948년 건국론’이 아니라 ‘대한민국 원년은 1919년’이고 이 전 대통령은 건국 대통령이 아닌 ‘초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기념관에 기재하자고 말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1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이 회장은 “이 전 대통령 본인도 자신이 건국했다고 말한 적 없다”며 “(대한)민국 연호 사용을 강조했고 임정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며 “1948년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부르자는 주장은 이 전 대통령의 공적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제23대 광복회장으로 선출된 이 회장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이자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죽마고우인 이철우 연세대 교수의 부친으로 윤 대통령과도 가까운 관계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취임하자마자 현 정부와도 가깝고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주도하는 단체들과 다른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이 회장은 임시정부와 1919년이 곧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제국까지는 임금의 나라였고 (일제의 국권 강탈) 이후 1919년 전까지는 임금의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었다”면서 “그러나 1919년 3·1운동으로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부터는 국민의 나라, 즉 민주공화정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설명했다.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점은 북한과의 정통성 경쟁에서 우위에 서게 되는 요소라고도 했다.

이 회장은 “1919년 김일성은 7살이었다”며 “그래서 북한은 김일성이 1926년에 ‘타도 제국주의 동맹’을 만들어 독립운동이 시작했다고 역사를 왜곡하는데, 실제 역사를 계승한 우리가 민족사적 정통성이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우린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헌법에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보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윤석열정부의 방향을 평가하면서도 공정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가보훈부가 최근 고(故)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기록에 기재된 친일 관련 문구를 삭제한 것을 사례로 들었다. 이 회장은 “백선엽 장군이 젊었을 때 만주군(간도특설대)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6·25 때는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국가유공자라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지울 거면 친일 문구가 기재된 다른 인물 전부 지워줬어야 공정했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되는 독립유공자 서훈 기준과 관련해 “김원봉처럼 대한민국 건국이 아닌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사람들은 서훈을 주지 않는 게 타당하다”면서도 “다만 해방 이전에 사회주의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경우 이는 독립운동의 하나의 방편이었으니 폭넓게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이 그만큼 관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이 심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화이부동’(和而不同:화합하되 차이점을 인정한다)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선 투쟁은 있었지만 여러 독립운동 노선을 아우르려고 했던 임시정부의 정신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선이 달라도 같은 대한민국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요즘 서로 밥도 같이 안 먹는다고 하는데 대화의 단절은 대한민국의 기본정신과도 어긋납니다. 싸우더라도 제발 대화를 하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