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길어질 폭염, 에너지 약자·노동 휴식권 보호 우선할 때다
장마가 끝나자마자 불볕더위가 이어지면서 온열질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일 기준 온열질환자 수는 1191명, 사망자만도 13명으로 집계됐다. 7월달 비가 그렇게 쏟아졌는데도 지난해 폭염 사망자인 9명을 이미 넘어선 것이다. 여름이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 정부가 이날 폭염 위기경보 수준을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상향할 정도여서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폭염은 누구나 일상이 괴롭지만 더 큰 타격을 입는 쪽은 사회적 약자다. 지하철 역사에서 더위를 피해야 하는 노인들, 전기요금이 부담스러워 에어컨을 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에너지 약자들이 있다.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폭염에 노출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6월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가 폭염으로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그는 옥외에서 하루 4만보 이상을 걸으며 무더위 속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고용노동부는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일 때 시간당 10~15분씩 휴식을 부여하도록 하지만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일 뿐이다. 이 사고만 봐도 권고사항에 그치는 이 가이드라인이 작업장에서 얼마나 무용지물이었는지 짐작하고 남는다.
폭염은 ‘소리 없는 재난’으로 불린다. 홍수나 태풍처럼 건물 하나 파괴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숱한 목숨을 빼앗는다. 실제로 태풍이나 호우보다 폭염으로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2018년 온열질환으로 48명이 목숨을 잃은 후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시켰다. 그해부터 4년간 질병청이 집계한 폭염 사망자는 146명에 달한다. 이 기간 호우·태풍·강풍 대설을 합친 자연재해 사망자(218명)에서 폭염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올여름도 ‘역대급’ 더위가 심상치 않다. 2018년과 같은 ‘최악의 폭염 사태’가 재현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기후위기는 심해지는데 정부의 폭염 대책은 과거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정부는 취약계층에게 폭염은 생사를 가르는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야외에서 근무하는 분과 고령자, 쪽방촌 거주자들이 폭염으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 대책을 이행하는 데 만전을 기해달라”고 긴급 지시했다. 대통령 지시대로 노동자가 또 폭염 속에 일하다 쓰러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산업재해 예방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약속했다. 빈말에 그치지 않도록 강력한 행동으로 보여주기 바란다. 무엇보다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으로는 노동자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국민 모두가 지켜봤다. 국회는 관련법 개정을 서두르고, 각 지자체는 사회의 안전망을 촘촘히 운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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