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 ‘앵그리버드 정치인’의 해악

기자 2023. 8. 1. 20:3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7월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LH 무량판 구조 조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질 능력은 안 되고 내가 주목하는 것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같은 정치인의 행태이다. 그는 갑자기 사업을 백지화시켰다. 그러더니 연일 “정치생명을 걸겠다” “민주당 간판 걸고 붙자” 등 버럭하며 핏대를 세웠다. 요즘 정치인들이 언론 앞에 나와 기자와 국민들을 겁박하는 것은 새로운 일도 아니다. 국민들이 무서워서 찍소리나 하겠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앵그리버드 정치인’들의 해악은 상당하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우선 원인부터 알아보자. 도대체 왜 원 장관 같은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핏대를 세울까? 최고권력자와 강성 지지층에 어필하는 것은 제외하고 세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전략적 분노이다. ‘벼랑 끝 전술’을 펴는 것이다. 1950년대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이 당장이라도 핵전쟁을 할 것처럼 밀어붙여 상대방의 양보를 얻어내려 했던 외교적 협상전술인데 이를 국내 정치에 차용하는 것이다.

둘째, 성질이 좋지 않은 사람이 정치인이 된다는 것이다. 성격까지는 모르겠으나 능력과 도덕성이 높은 사람들은 아예 정치권에 입문하지 않고 나쁜 사람들이 정치인이 된다는 경제학 이론이 있다. 국회의원 세비는 연간 약 1억5500만원이다. 이게 로펌 변호사, 회계사, 펀드매니저, 기업 임원 등과 비교하면 경쟁력 있는 금전적 보상은 아니다. 국회 밖에 충분한 선택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덕성이 높은 사람은? 충분하지 못한 금전적 보상을 보충하는 방법은 국회의원 권력을 통한 사익추구인데 도덕성이 낮은 사람은 거리낌이 없지만 도덕성이 높은 사람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셋째, 엘리트들이 오히려 분노조절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최대의 경제학자 구인 플랫폼인 ‘이코노믹 잡 마켓 루머(EJMR)’의 혐오 게시글을 분석한 연구가 나왔다. 전체 게시글의 10%인 70만건이 인종차별, 여성혐오, 욕설 등 독성 게시글이었는데 작성자를 추적한 결과 스탠퍼드대, 컬럼비아대, 시카고대, 버클리대 등 명문 대학이 상위권이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직원도 있었다.

앵그리버드 정치인을 설명하는데 이 세가지 중에 마지막, 즉 분노조절장애가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첫번째 ‘벼랑 끝 전술’은 의문이다. 정치인들의 분노에 이런 전략이 분명 섞여 있을 것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예를 들면 원 장관은 지난 대선 기간 중에 라디오 생방송에 나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소시오패스’ 발언을 두고 상대 출연자와 삿대질과 말싸움을 하다가 방송중단 사태까지 일으켰다. 고도의 전략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리얼하다. 두번째 가능성인 ‘나쁜 정치인 이론’도 부족하다. 실제 국회의원들의 스펙을 보면 나쁜 정치인이 좋은 정치인을 대체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스펙 자체로는 엘리트다.

분노와 스트레스는 모두에게 내재돼 있고, 술자리에서의 막말은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 정치인들의 분노조절장애도 술자리의 애교로 넘어가 줘야 하는가? 아니다. 분노조절장애 정치인의 해악은 상당하다. 정치인들은 부정적 외부효과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행동에 대해 본인은 어떤 비용도 치르지 않지만 국민들에겐 부정적 효과를 미친다는 것이다. 유럽 프로축구리그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특정 선수의 고국이 심각한 내전을 겪고 있으면 해당 선수는 축구장에서 공격적이 되고, 그 결과는 경고와 퇴장이다. 싸움은 물리적 싸움만이 전부는 아니다. 정치라는 공적 영역이 정치인들, 특히 국정운영에 책임이 있는 정부·여당 정치인의 분노로 점철되는 것도 국민을 괴롭게 만든다. 해당 정치인의 극성팬들만 제외하고 말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35%인데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78%, 민주당 지지층에서 5%, 무당층에서 20%이고, 보수층 60%, 진보층 13%, 중도층 33%이다. 그렇지 않아도 분노가 떠돌아다니는 한국사회인데 불안한 정치적 균형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윤 대통령은 통일부 장관으로 정치 유튜버 출신 인사의 임명을 강행했다. 분노는 분노를 낳는다. 그럼에도 계속 핏대와 삿대질의 정치를 하고 싶다면 이렇게 하시라. 한 연구에 따르면 폭력 영화는 단기적으로 폭력 사고를 줄인다. 폭력적 성향의 사람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대신 영화를 보느라 시간을 쓰고 술을 안 마시는 ‘대체효과’이다. 분노조절이 안 되는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팬들만 초청해 옥타곤에서 격투기 시합을 해라. 술은 제공받지 않는 조건을 달고!

이창민 한양대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