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회의 행로난] 개똥 뒤집어쓰기
법가사상을 집대성해놓은 <한비자>를 보면 개똥을 뒤집어쓴 남자 이야기가 나온다.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에서 있었던 일로 저간의 사정은 이러했다.
그곳의 한 여인이 젊은 남자와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하루는 남편이 예정에 없이 일찍 귀가하다 마침 집을 나서는 젊은 남자와 마주쳤다. 남편은 아내에게 무슨 일로 온 손님인지를 물었다. 아내는 여기 손님이라고는 없는데 무슨 말을 하냐며 시치미를 뚝 뗐다. 황당해진 남편은 주변에 있던 이웃에게 손님이 안 보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도 한결같이 손님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아무래도 당신이 미친 것 같다며 개똥을 끼얹었다.
개똥을 끼얹은 까닭은 당시에는 귀신에 씌면 미치게 되고, 짐승의 똥물을 끼얹으면 귀신이 쫓겨 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놓고 불륜을 저지르던 여인과 그편에 선 사람들이 멀쩡한 사람을 미친 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첫째는 ‘말의 힘’ 덕분이다. 말이 지니고 있는 여러 힘 중 하나가 여러 사람이 똑같게 말하면 거짓도 사실로 둔갑시킨다는 것이다. “세 사람이 없던 호랑이를 있게 만든다”는 뜻의 삼인성호(三人成虎) 고사는 말의 이런 힘을 잘 말해준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처음 들을 때는 믿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연이어 그렇게 말하자 결국 믿게 되었다는 일화는 말을 쉬이 믿는 사람의 허술함과 동시에 사람에게 말의 힘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다음은 ‘세력’이다. 고사 속 여인의 이웃들은 모르긴 해도 그 여인과 이익 공동체였을 개연성이 크다. 그 여인에게 약점을 잡혔을 가능성도 있다. 그들의 관계가 어떠하든 분명한 것은 그들이 그녀의 편에 서서 하나의 세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세력 대 개인’의 구도가 형성된 것이고, 주지하듯이 개인은 세력 앞에 무기력할 때가 대다수다.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됐음이다.
2000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고사 속 남편은 억울하게 개똥을 뒤집어썼지만 요새는 스스로 개똥을 뒤집어쓰는 이들이 많은 듯해서다. 가짜 뉴스를 너무도 당당하게 지어내고, 허위임을 알면서도 덥석 믿는 이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어 한 말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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