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동 칼럼] 한·미 동맹 70주년에 등장한 트루먼 동상
일본 패전 이후 미국은 일본인들의 저항을 우려해 천황제를 유지하는 대신 그 권위를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한정했다. 일본의 ‘국체(國體)’는 보존됐지만, 그 대가로 대미종속 구조가 확립됐다.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로 회복한 주권을, 같은 날 맺은 미·일 안보조약으로 미국에 헌납했다. 이후 70여년간 미국은 신성불가침의 권위였고, 미국이 그어놓은 선을 넘는 이는 누구라도 거세됐다. 미국을 앞질러 중국과 수교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방침을 미국과 협의 없이 발표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대표적이다.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의 말대로 일본의 진짜 국체는 상징 천황제가 아니라 미·일동맹이다.
한국전쟁 마지막 해인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출범한 한·미 동맹도 처음부터 성역이었다. 미국의 이해는 모든 것에 우선했고, 한국 정부는 보수·진보 구분 없이 미국 뜻을 거의 예외 없이 받들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만 해도 ‘용미(用美)’ 즉 ‘수단으로서의 동맹’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한·미 동맹은 존재 자체가 목적이 됐다. 중세 사람들이 신의 존재에 의문을 가져선 안 되듯, 동맹 비판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미국이 대통령실을 도청해도 “악의가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행동을 의심하는 것은 선을 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18~2019년 북·미 협상이 실패한 뒤 북한이 핵무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자 윤석열 정부는 동맹의 ‘국체’화로 맞서고 있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백선엽의 친일경력을 지운 것도 국체화 작업의 일환이다. 이승만이 방위조약을 체결했고, 백선엽은 미군이 가장 선호하는 한국군 장성이기 때문이다.
경북 칠곡에 가면 한·미 동맹이 어떤 단계에 와 있는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미 동맹과 정전 70주년을 맞아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진 해리 트루먼 미 대통령 동상은 학술 용어를 빌리면 동맹의 ‘육화(肉化)’ 혹은 ‘신체화’다. 트루먼이 참전 결정을 내려 풍전등화의 한국을 구한 것은 평가돼야 한다. 하지만 트루먼 행정부와 미군정이 ‘해방 정국’에서 저지른 숱한 과오를 덮어둔 채 추앙만 할 수는 없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축적된 연구들은 분단과 전쟁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지속적으로 묻고 있다.
전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철저히 위계적이었고, 한국은 일본의 ‘부속물’ 취급을 받았다. 미국은 군정 직접통치를 적국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서 실시했다. 미군정은 일본의 군국주의 경찰을 해체수준으로 개혁했지만, 한국에서는 집회취체(단속)령, 불온문서임시취체령 등 악법들을 되살리며 경찰력의 억압적 성격을 강화했다. 군정 고문이 된 총독부 직원들은 미군정이 일제협력자들을 등용하도록 조언했다. 다시 제복을 입은 친일경찰들은 예전처럼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았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론이 신탁통치에 앞서 임시정부를 수립하기로 한 것임에도 ‘소련만이 신탁통치에 찬성했다’고 날조한 가짜뉴스를 기화로 친일파들은 반공애국자로 둔갑했다. 이 가짜뉴스의 확산을 미군정이 묵인·조장했음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
한국전쟁 참전과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이 대한민국의 존속과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은 부동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1945~1950년 국면에서 미국이 범한 과오가 면책되지는 않는다. 보수·진보 간 극심한 갈등, 권위의 부재, 기회주의의 득세와 정경유착 등 악덕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때의 지배세력을 그대로 갖다 쓴 미군정의 책임이 무겁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한·미 동맹이 건강한 ‘고 투게더(Go together)’가 되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지난 과오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70주년을 맞은 지금이 타이밍이다. 원폭 피해지인 일본 히로시마에 미국 대통령이 두차례 방문했다. 2016년 버락 오바마에 이어 지난 5월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조 바이든이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헌화했다.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는 제주 4·3평화공원을 방문할 것을 권한다. 한·미 정상회담을 제주에서 갖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당시 미군정은 제주도민을 상대로 한 군경의 초토화작전을 용인했고, 제주도민 3만명이 희생됐다. ‘제주 4·3’이 한국전쟁에 이르는 수많은 도화선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도 미국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히로시마에 두 번이나 갔다면, 제주에 못 올 이유가 없다.
서의동 논설실장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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