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올 지구 생태용량 다 썼는데, 왜 우리 기업은 ‘나 몰라라’

기자 2023. 8. 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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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의 폭염’ ‘관측 이래 최대 강수량’ 같은 기상 소식이 매년 경신되고 있다. 그만큼 이상기후는 해가 갈수록 심각해진다는 뜻이다.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올해 한국은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면서 충북 오송과 경북에서 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폭우가 물러난 자리는 다시 끓는 듯한 폭염이 차지하면서 국민 모두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상기후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파격적인 수준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해마다 더욱 빈번하게, 극단으로 치닫는 기후재난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이상기후 현상이 기후위기의 결과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상식이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화석연료 같은 생태자원을 태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바로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이다. 문제는 유한한 지구 생태계가 제공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자원을 활용하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폐기물, 즉 적당한 양의 온실가스를 처리해야 하는데 그 선을 넘어버렸다는 점이다.

8월2일은 바로 2023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인류가 지구의 재생산 가능 자원을 모두 소진한 날을 의미하는 오버슈트데이(Earth Overshoot Day)다. ‘지구생태용량 초과의 날’을 의미하는 이날은 그해 지구가 생성할 수 있는 생태자원의 양을 인류의 수요, 즉 생태발자국으로 나누고 365일을 곱해 계산한다.

한국의 실상은 충격적이다. 국가별로 계산할 때 한국은 이미 올해 4월2일 생태용량을 초과했다. 365일 중 75%에 달하는 274일은 미래세대의 생태자원을 빌려 쓰는 셈이다. 게다가 한국은 오버슈트데이가 산출된 138개 국가 중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연합이나 쿠웨이트 그리고 미국, 호주같이 에너지를 많이 쓰는 나라에 이어 18번째 순서로 오버슈트데이가 빠르다. 한국의 전력, 철강, 반도체, 석유, 화학, 시멘트와 같은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의 탈탄소화가 시급하다. 특히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포스코, 삼성전자, 한국전력 같은 기업의 변화가 핵심이다.

이들 기업은 생태자원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적정 수준까지 빠르게 낮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 날로 거세지는 글로벌 기후정책보다 앞서 행동해야 한다.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하는 정부의 규제와 유인책도 필수다. 뿐만 아니라 기업의 지속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업의 환경 역량 수준에 따라 투자가 좌우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한마디로 기후위기 대응을 잘하는 기업에 ‘돈’이 흘러 모이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판을 짜는 데 있어 성패는 기업의 투명한 기후정보 공개다. 국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공시 및 비재무 공시 의무화 일정이 속속 확정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내년과 내후년부터 기업의 연차보고서에 기후정보 공개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또한 우리나라 기업이 따르는 국제회계기준(ISSB) 역시 내년 도입을 예고한 바 있다. 이제 글로벌 투자자들은 매출과 영업이익 등 재무정보뿐만 아니라 기업의 기후대응과 같은 비재무 정보를 투자 결정의 주요 요소로 보게 되었다.

그런데 국제 추세와 달리 우리나라의 느긋한 태도는 매우 우려스럽다. 국내 기업들은 최근 금융위원회가 수립한 ESG 공시기준 로드맵이 부담스럽다며 유예기간을 연장하고 대상 기업 범위를 축소해줄 것을 요구했다.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특성상 국내 제도만 늦장 부릴 수 있을지는 차치하더라도, 기업 압박 때문에 기후정보 공개를 수년간 지체하는 동안 심각해질 기후위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질 수밖에 없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일수록 기후위기 대응에 강한 책임을 갖고 글로벌 기준에 맞는 기후정보 공개를 서둘러야 한다.

양연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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