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 받은 기사 11% 저작권 위반… 언론 신뢰 좀먹는 '복붙'

김고은 기자 2023. 8. 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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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 창립 59주년 기획] 모두가 눈감은 '뉴스 베끼기'

7월26일 오후 12시38분. 연합뉴스가 <중학생들이 또래 집단 폭행·영상 촬영…경찰·교육청 조사 착수>란 제목의 기사를 송고했다. 12분 뒤, A 방송사 온라인에 같은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의 리드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종결어미만 ‘했다’에서 ‘했습니다’로 달라졌을 뿐 연합뉴스 기사와 똑같았다. 그러나 기사엔 ‘연합뉴스 전재’란 표기 대신 A 방송사 기자의 바이라인이 달렸다. 같은 날 오후 1시1분, 서울신문이 보도한 <“50대 남성 마사지사가 여성손님 강간”…경찰 수사 나서>란 제목의 기사. 3시간 뒤 B 경제지에서 같은 제목의 기사를 올렸는데, 역시 내용과 문장 구조 등이 거의 일치했다.

흔히 언론의 잘못된 관행의 하나로 ‘받아쓰기’가 지적된다. 보도자료 받아쓰기, 정치인 말 받아쓰기, 유명인의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받아쓰기 등. 사실 확인 등의 추가적인 취재 없이 무턱대고 받아쓰는 이런 기사들이 언론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저널리즘을 황폐화한다는 지적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렇게 받아쓰는 기사 중엔 타 언론발 기사도 상당수다. 다른 언론이 취재·보도한 기사를 요약하거나 일부 표현만 바꿔 보도하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재하면서 자사 기자 바이라인을 다는 일도 있다. 말 그대로 ‘Ctrl+C(복사), Ctrl+V(붙여넣기)’다.

이런 기사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를 떠나 언론윤리와 충돌한다.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채택한 신문윤리실천요강 제8조엔 저작물의 전재와 인용에 관한 규정이 있다. “언론사와 언론인은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며, 저작물을 전재 또는 인용할 때는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원칙 아래에 △통신기사의 출처 명시 △타 언론사 보도 등의 표절 금지 △출판물 등의 표절 금지 △사진, 영상 등의 저작권 보호 등 구체적인 실천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런데 매달 해당 조항을 위반해 신문윤리위원회 제재를 받는 기사가 두 자릿수에 이른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신문윤리위의 월별 심의에서 ‘주의’ 이상의 제재를 받은 신문·온라인 기사 2380건 중 저작권 관련 위반에 해당한 기사가 265건으로 11.1%에 달했다. 한 달 평균 20건이 넘었다는 의미다. 신문 기사만 따지면 798건 중 174건으로 그 비율이 21.8%까지 늘어났다.

인터넷신문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인터넷신문위원회가 2022년 한 해 동안 인터넷신문 기사를 자율심의한 결과, 인터넷신문 기사심의규정의 제12조(저작물의 인용과 전재)를 위반한 사례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의규정을 위반한 총 5061건의 기사 중 무려 35.9%(1815건)가 여기 해당했다. 세부 조항별로는 ‘통신기사의 출처표시’ 위반이 1563건으로 30.9%를, ‘표절의 금지’ 위반이 252건으로 5.0%를 차지했다.

신문윤리위는 심의결정문 등을 통해 “기사 표절은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며 “언론이 이러한 기본 원칙조차 지키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행위”이고 “신문의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매번 경고하고 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기자협회보는 지난 1년치 신문윤리위 심의 결과를 토대로 우리 언론의 ‘베껴쓰기’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살펴봤다.

지난 1년간 신문윤리위 심의에서 제재를 받은 기사(265건)들이 많이 위반한 저작권 관련 조항은 통신기사의 출처 명시(52.8%) > 타 언론사 보도 등의 표절 금지(35.1%) > 사진, 영상 등의 저작권 보호(12.1%) 순이다. 신문 기사는 타 언론사 보도 등의 표절 금지 위반 사례가, 온라인 기사는 통신기사의 출처 명시 위반 사례가 더 많았다.

통신기사는 베껴도 노프라블럼?

신문윤리실천요강 제8조1항은 “통신기사를 전재할 때는 출처를 밝혀야 하며, 사소한 내용을 변경하여 자사 기사로 바꿔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전재계약을 맺은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통신사와 전재계약을 맺은 언론사는 물론 그렇지 않은 언론사까지 통신기사를 베껴 쓰는 게 현실이다.

내외일보는 지난 4월17일자 신문 1면에 <결국 ‘부결’, 상처만 남긴 양곡관리법…여야는 책임 떠넘기기>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4월13일 뉴스1이 송고한 기사와 제목부터 본문까지 완전히 일치했다. 그런데 내외일보는 이 기사를 자사 기자 바이라인을 달아 1면에 보도했다. 스포츠서울이 지난해 6월13일 16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15억→20억 원 갈아탄 일시적 2주택자, 3억여 원 절세효과>란 제목의 기사도 연합뉴스 기사를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무등일보도 지난해 8월31일, 전날 뉴시스가 보도한 <호남권 기숙사 고교 내 학생 휴대전화 제한 여전…개선 권고>란 제목의 기사를 분량만 조금 줄인 채로 자사 기자 이름을 달아 신문에 실었다가 신문윤리위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온라인상에서 통신기사 베끼기는 더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신문윤리위에서 통신기사 출처 명시 위반으로 ‘주의’ 이상의 제재를 받은 온라인 기사는 신문협회 회원사(계열사 포함)만 따져도 82건에 달한다. 헤럴드경제가 10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경제(7건), 매경닷컴·중앙일보(6건), 국민일보·문화일보·세계일보·한경닷컴(5건) 등도 상위에 있었다.

타사 단독도, 외신도 출처는 ‘나 몰라라’

타 언론사 보도 표절 금지 위반은 신문 기사에서 주로 많이 나타났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제8조2항은 “타 언론사의 보도와 논평을 표절해서는 안 되며, 출처를 명시하지 않고 실체적 내용을 인용해서도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타사 보도의 핵심 내용을 발췌·인용하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은 우리 언론의 고질적인 관행 중 하나다. 타사의 단독 보도인 경우에도 언론사 이름을 밝히지 않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지난 2월 한 달 동안 신문윤리위 제재를 받은 기사가 27건에 달했다. 이 중 17건이 조선일보의 윤석열 대통령 인터뷰를 받아쓴 것이었다. 중앙·한국일보 등 중앙일간지와 지역지 등 17개 신문사가 윤석열 대통령의 인터뷰 발언을 인용하면서 구체적인 출처를 밝히지 않고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매체와의 신년인터뷰에서’ 등으로 썼다. 전북일보는 ‘윤 대통령은…말했다’라고 아예 출처 표기 없이 쓰기도 했다.

이처럼 단독 인터뷰를 표절‘당한’ 조선일보가 표절로 가장 많이 제재를 받은 신문사라는 건 역설적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1년간 모두 22건의 기사에서 표절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에는 기사 6건이 한꺼번에 제재를 받기도 했다. 정치인의 라디오 방송 인터뷰를 인용한 기사들인데, 해당 발언을 보도하면서 조선일보는 프로그램명을 밝히지 않고 ‘라디오에서’, ‘방송에서’ 등으로만 썼다. 신문윤리위는 “정치인이 타 매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발언한 내용을 기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핵심 사실로 인용하거나 주요 제목으로 뽑으면서도 발언의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주의’를 결정했다.

라디오 인터뷰만큼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자주 인용되는 것이 외신 보도다. 지난 4월19일 동아일보 20면에 실린 <초인종 잘못 눌렀다가… 백인 집주인 총에 맞은 美 흑인 소년> 기사. 마치 “사건 발생 당시 기자가 옆에서 지켜본 듯 사건 현장을 생생하게 전했”는데, 출처표시는 없었다. 신문윤리위는 “외신 등의 스트레이트 기사를 재구성해 피처기사로 작성한 경우에도 출처를 밝혀야 한다”며 저작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미 여러 외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내용이라고 해도 출처표시는 원칙이다. 한겨레는 지난해 10월 <이스라엘-레바논 ‘해저 가스전 분쟁’ 타결> 기사가 표절 금지 위반으로 제재를 받자 ‘복수의 통신사를 통해 공표된 것들이므로 문제없다’는 취지로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신문윤리위는 신문윤리실천요강 제8조2항 “출처가 여럿일 경우 이를 포괄적으로 명시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에 대해 “AP, AFP, 로이터, 뉴욕타임스 등 인용한 매체를 일일이 적시하지 않고 ‘AP 등 외신에 따르면’이라고 간략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지 출처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모든 저작물을 전재 또는 인용할 때는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것이 신문윤리실천요강의 기본 정신”이란 것이다.

신문윤리위 제재를 ‘물’로 보는 이유

신문윤리위는 자율심의기구지만 그 심의 결과는 정부광고 집행 지표, 언론진흥기금 공모사업,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 지원 대상자 선정 등에 반영돼 해당 언론사의 신뢰도는 물론 경영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에 신문협회는 “신문윤리위 제재 ‘물’로 보지 마라”(2022년 2월 신문협회보)며 “심의규정 준수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당부한 바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제재와 지적에도 기사 표절 관행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선 언론사들 스스로가 기사 표절에 관대한 편이다. ‘우라까이’(베껴 쓰기를 가리키는 일본식 속어)를 수습 기자 때부터 배우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며, 기사를 표절한 기자에게 책임을 묻는 일도 좀처럼 없다. 지난 2019년 중앙일보 뉴욕특파원이 월스트리트저널 사설 일부를 표절한 칼럼을 썼다가 직무정지를 당하고 귀국 후 감봉 징계를 받은 게 그나마 이례적으로 꼽힌다.

언론사끼리도 표절을 봐주는 관행이 있다. 특히 통신사 기사는 계약사든 비계약사든 그냥 받아 써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다. 통신사는 전재계약을 맺은 곳은 ‘고객사’여서, 비계약사는 실효성이 낮아서 강경 대응을 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시정 요청을 하는 선에서 그치곤 한다. 저작권법 위반으로 대응을 해봤자 까다로운 절차와 법무 비용에 비해 기대할 수 있는 배상액 등은 적기 때문이다. 앉은 자리에서 클릭 몇 번과 마우스 드래그 몇 번으로 닮은꼴 기사를 하루에도 몇 개, 몇십 개씩 생산할 수 있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에 따라 AI의 뉴스 도용과 이에 따른 저작권 침해 이슈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신문협회는 최근 뉴스 저작권 보호를 위한 법·제도 정비를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언론에 의한 뉴스 저작권 침해가 묵인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저작권 보호를 위한 언론인 스스로의 논의와 실천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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