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식탁, 위기의 식량
[김현아의 우연한 연결] 김현아 | 작가·로드스꼴라 대표교사
아버지가 육지로 나가 먹을 수 있는 잡초를 캐 오고는 했는데, 아버지는 나에게 육지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늘 얘기하셨어. 육지에는 언제나 대형 산불이나 홍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도 했고, 특히나 굶주린 사람들과 잃을 것 없는 사람들이 그중 위험하다고 하셨어. 육지에도 공동체들이 몇개 있는데, 외부인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공동체도 많아. 반면에 우리 타워는 아이들은 무조건 받아준다고 해서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이곳으로 온 거지. 우리 타워도 늘 태풍이나 해일에 위협받지만 그래도 육지에 비하면 비교적 안전한 곳이 맞아. 그래서 우리는 이 정도라도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글방에 나온 지아 글의 일부다. 이 말을 하는 등장인물 9E15는 기후변화로 살기 어려워진 육지를 떠나, 바다에 지어진 타워로 ‘이주’한 ‘난민’이다. 그곳에서 그는 무쓸모인간을 죽여 식량으로 만드는 일을 맡아 하고 있다. 그 묘사가 ‘리얼’해 글을 읽은 사람들은 불편함을 토로했지만 한편으론 그래서 작가에게 신뢰가 간다는 이야기도 했다. 식량위기에 처한 인류의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에스에프(SF)지만 예술이란 종종 사회에 대한 경고이며 경종이기도 해서 의미 있는 글이라는 평이 주를 이뤘다. 지아의 글은 식량위기에 관한 토론을 촉발했다. 이야기는 크게 세 축으로 흘렀다. 인구 증가와 기후위기 그리고 농사.
현재 지구에 사는 인류의 수가 80억명이라는 말에 참가자 중 한명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언제 인구가 그렇게 늘었지? 나는 60억으로 알고 있었는데. 두어명도 그러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10억에서 20억이 되는 데 100년이 걸렸다면 60억에서 70억으로 느는 데는 12년, 70억에서 80억으로 증가하는 데는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단다. 경작지가 그대로라면 식량 부족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농경지를 확대하는 것이 대안은 될 수 없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과 야생동물의 ‘사이’가 줄면서 발생한 전염병이라는 것은 중론이다. 게다가 농사는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산업이다. 극한 기상이 빈번히 발생하면 어떤 첨단기술도 통하지 않는 게 농사다. 1만2천년 전 사피엔스가 농경을 시작하고 정착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경작이 가능한 기후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폭염과 고온은 새로운 기후 표준이 되고 있다. 가뭄과 폭우가 계속된다면 수확량은 해마다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지금까지는 식량 수출국 한 곳에 흉년이 들어도 다른 수출국의 생산량으로 부족분을 보완할 수 있었다면, 앞으로는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에서 동시에 자연재해가 발생하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고에 따르면 식량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취약한 국가 순위 1위다. 2위는 일본이다. 한국은 곡물의 80%를 수입에 의지하고 있다. 사실 전세계 85%의 국가는 식량 순수입국이다. 식량을 수출하는 나라는 미국·프랑스·독일·오스트레일리아·브라질·캐나다·우크라이나·러시아 등 몇 나라 되지 않는다. 석유가 중동을 비롯해 몇몇 나라에서만 생산되는 것처럼 식량도 마찬가지다. 극한 기상으로 이들 국가에 문제가 생기면 식량 대란은 기정사실이 된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인 일본은 식량자급력을 높이는 국가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식량자급‘률’이 아니라 식량자급‘력’을 강화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비상시를 대비해 농지 면적을 유지하고 농업기술을 개발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해두는 게 식량자급력 강화의 핵심 내용이다.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식량 공급망을 극단적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산이 전 국토의 70%인 한국은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지금이야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싱싱하고 다양한 먹거리들이 현관 앞에 놓여 있지만, 그 상황은 전세계의 식량 생산지와 유통망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때만 가능하다.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우리는 자꾸 다가올 미래라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좋은 한 편의 글은 사피엔스라는 종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톺아보게 한다.
토론 도중 우리는 종종 딜레마에 부딪혔는데 이를테면 출생률 같은 문제를 얘기하면서다. 한국의 출생률은 2022년 현재 0.78명이다. 전세계에서 압도적인 최저 출생률이다. ‘침몰하는 대한민국’ 같은 표현을 써가며 언론은 출생률에 대해 걱정하고, 국가는 출생률을 높이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 역시 개별 국가의 인구수를 유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나라별로 따로따로 적정인구 수준을 유지하려 든다면 20년 안에 세계 인구수는 100억명을 돌파할 것이다.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스마트 농경도 마찬가지다. 스마트 팜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도심의 빌딩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했을 때, 농민들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고 사회는 큰 갈등에 휩싸일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겪는 내적 갈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화력발전소 폐쇄는 동의하지만 전기요금이 오르는 것은 반대하는 자신, 기후위기는 걱정되지만 에어컨과 건조기를 안 돌릴 수 없는 상황, 전 지구적인 자각과 연대를 외치지만 자국의 이익 앞에 속수무책으로 깨지는 국제적 약속에 대한 무력감.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를 앞에 두고 조금 암울해졌을 때 여름이 말했다.
사피엔스는 공기로 빵을 만들어낸 종이잖아요. 무슨 말인가, 우리는 여름을 쳐다보았다. 산업혁명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식량난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두 가지 주요한 혁명이 인류를 식량난에서 구했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공기의 78%를 차지하는 질소로부터 암모니아 합성법을 만들어낸 프리츠 하버. 그는 질소 정제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인공 비료의 개발을 가능케 했고 이로 인해 식량 생산은 획기적으로 늘 수 있었다. 물론 명암은 있지만. 다른 하나는 키 작은 밀의 육종에 성공한 것. 키 작은 밀은 제3세계에 보급되어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니 우리도 뭐라도 해 볼 일이라고 여름은 말했다. 수직 농업, 배양 단백질, 정밀 농업, 농업 스타트업 회사 등 우리는 각자 알고 있는 농사와 관련한 이야기를 더했다. 가장 유망한 미래산업이 농사일 수 있겠는데, 누군가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량안보가 국가의 주요 어젠다가 되어야 하는가, 국가 간 경계 따위 훌쩍 넘어 사피엔스의 어젠다가 되어야 하는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글방 모임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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