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풍경] 남자는 수렵인 여자는 채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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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탈리아 하원에서 입법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한 의원이 생후 3개월 된 아들에게 모유 수유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이번 주(8월1~7일)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가 지정한 '세계 모유 수유 주간'이다.
미국 작가 플로렌스 윌리엄스는 저서 '가슴 이야기'에서 "젖가슴을 성적 대상으로 지나치게 부각해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잘못된 이미지를 갖게 한 결과, 모유 수유를 하도록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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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풍경]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얼마 전 이탈리아 하원에서 입법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한 의원이 생후 3개월 된 아들에게 모유 수유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이탈리아 의회에서 처음 있는 일로, 주변 의원들의 ‘초당적’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이번 주(8월1~7일)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니세프가 지정한 ‘세계 모유 수유 주간’이다. 이런 주간까지 만들었다는 건 그만큼 모유 수유 비율이 낮다는 뜻이다. 이런 배경에는 엄마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모유 수유하는 걸 꺼리게 하는 오늘날 문화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미국 작가 플로렌스 윌리엄스는 저서 ‘가슴 이야기’에서 “젖가슴을 성적 대상으로 지나치게 부각해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잘못된 이미지를 갖게 한 결과, 모유 수유를 하도록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고 썼다. 그리고 이런 편견이 사회에 자리잡는 데 과학도 한몫했다는 것이다. 1967년 출간된 영국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가 대표적인 예다.
이 책에서 모리스는 사람의 젖가슴은 수유 기관을 넘어, 직립으로 보이지 않게 된 “살집이 있는 양 볼기짝을 대신한” 성적 기관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과거 수렵채집인 시절 사냥감을 쫓아다니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남자들이 화덕 주위 여자들의 젖가슴을 보는 걸 낙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학술지 ‘플로스 원’에는 모리스 가설의 전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논문이 실렸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남자는 수렵을 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채집을 하는 역할 분담을 했다는 설정은 남녀 몸 차이를 바탕으로 유추한 몇몇 학자들의 생각이고, 이걸 언론과 대중이 별 의문 없이 받아들인 것이지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시애틀퍼시픽대 생물학과 연구자들은 세계 각지의 사회에 대한 민족지학 보고서를 모아놓은 데이터베이스(D-PLACE)에서 수렵채집 사회 63곳을 골라 기록을 꼼꼼히 분석했다. 그 결과 79%에 해당하는 50개 사회에서 여성도 사냥을 했다는 기록을 확인했다.
사냥감의 크기를 봐도 여성이 사냥에 참여한 경우는 영양처럼 대형 동물을 표적으로 삼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여성들은 활뿐 아니라 칼, 그물 등 다양한 도구를 써서 사냥했다. 또 개나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사냥하기도 한다. 논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렵채집인으로 생활하는 몇몇 사회에서 여성들이 사냥하는 모습도 묘사하고 있다.
사실 여성의 신체 능력이 남성보다 떨어지는 건 상대적일 뿐, 사냥 능력 여부를 가를 만큼 결정적인 건 아니고 훈련과 경험으로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훈련받은 여성의 능력은 보통 남성 평균을 한참 웃돈다.
지금은 이탈리아 의원의 공개 모유 수유 장면을 별일이라며 보지만, 100년 전 우리나라에 온 서양 선교사들은 아무 데서나 가슴을 내놓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우리나라 여성들을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겼다.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어쩌면 지엽적이고 특이한 현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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