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 칼럼] 체포안 공개투표? 의원특권 폐지가 답이다

2023. 8. 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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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창 부국장 겸 정치정책부장

정치의 요체는 말이다. 정치는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 한마디에 선거 판세가 바뀌고 정치인의 운명이 갈린다. 실언으로 곤욕을 치른 정치인이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총리자리까지 날아갔다. 정치인이 말을 가려해야 하는 이유다.

정동영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의장은 2004년 17대 총선 때 "60-70대는 투표 안해도 된다"는 노인 폄훼발언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정치를 하는 내내 그를 괴롭혔다. 2010년 김태호 총리 후보자(한나라당)가 낙마한 것도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국회 인사청문회서 '2007년 이전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일면식도 없다'고 했다가 2016년 한 출판기념회서 나란이 찍은 단체사진이 나와 곤경에 처했다. 위증논란에 결국 사흘만에 자진 사퇴했다.

최근 여권의 설화가 잇따랐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양두구육 발언 등으로 당원권 정지 1년의 중징계를 받았다. 김재원 태영호 최고위원은 5.18정신을 훼손하는 말과 대통령실이 공천에 개입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녹취록으로 물의를 빚었다. 홍준표 대구 시장은 수해골프에 "부적절하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괴씸죄가 추가 돼 중징계를 받았다.

설화의 원조는 야당이다. 야당의 전매특허라 할 만하다. 열린우리당은 '싸가지 없다'는 여론에 3년 9개월 만에 간판을 내려야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최근 특권 포기 발언으로 코너에 몰렸다. 특권 포기는 의원 체포동의안을 다수 의석으로 부결시키지 않겠다는 의미다. 자신에 대한 체포안이 국회서 부결되면서 형성된 방탄이미지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자신이 주도한 혁신위에 길을 열어주고 방탄 이미지를 날리기 위한 나름의 승부수였다. 적어도 측근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말 바꾸기 전까진 그랬다.

그가 '이 대표에게 대북송금과 관련해 보고를 했다'는 취지로 검찰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검찰은 조만간 이 대표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낼 것으로 전해진다. 특권 포기를 선언한 마당에 의원들에게 체포안 부결을 압박할 순 없다. 특권 뒤로 숨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방탄벽이 사라지니 다급해졌다.

이 대표가 체포안에 대한 기명투표를 들고 나온 배경이다. 혁신위가 선진국 사례를 들어 체포안에 대한 기명투표 카드를 적시에 꺼냈고 이 대표가 기다렸다는 듯이 "조기에 추진하자"고 화답한 것이다. 입법 전이라도 민주당이 당 차원서 결의하면 사실상 당론과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기명투표는 공개투표다. 의원 개개인의 투표 결과가 드러난다. 이 대표는 이미 수십명의 친명계를 거느린 당의 실권자다. 총선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면 상당한 공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자신의 목줄을 쥔 사람에 대한 찬반 공개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지기는 쉽지 않다. 정치생명을 거는 모험이다. 기명투표는 바로 이런 압박효과가 있다. '수박(겉과 속이 다른 비명계) 색출쇼'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선진국 얘기를 하지만 우리 정치문화는 전혀 다르다. 민주주의 역사도 짧다. 토론문화가 활성화 돼 있지 않다. 주요 사안은 거의 밀실에서 결정돼 왔다. 당론투표가 관행이다. 국회는 권력자를 위한 통과의례였다. 여당은 거수기에 불과했다. 불체포 특권을 만든 이유는 권력자의 횡포에서 헌법기관인 의원의 활동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무기명 비밀투표도 마찬가지다. 인사같은 민감한 사항을 공개투표 한다면 권력자의 눈치를 보게 될 게 뻔하다. 소신투표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결과는 뻔하다. 인사안건과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다시 표결에 부쳐진 법안에 대한 무기명 투표를 국회법에 명시한 것은 이런 정서와 정치문화를 반영한 것이다.

당장 손봐야 할 건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이다. 당초 입법 취지는 이제 모두 사라졌다. 국민 보기에도 부끄러운 비리 의원의 방탄 수단으로 애용되고 있다. 포기선언을 할 게 아니라 특권 자체를 없애는 방향으로 손봐야 한다. 표결 방식은 본질이 아니다. 한참 후순위다. 그것도 미래가 아닌 특정인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책임정치 구현 차원에서 장기과제로 다뤄볼 만하다. 물론 특권 폐지가 대전제다. 부국장 겸 정치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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