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단축·공간 활용 우선… 무량판 지붕 지탱할 기둥은 허술 [철근 빠진 아파트]

박유빈 2023. 8. 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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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아파트 ‘부실 시공’ 실태
보 없는 대신 철근 충분히 감아야
2017년 이후 민간 293곳에서 적용
188개 단지는 이미 입주 마친 상태
붕괴 사고 삼풍백화점도 같은 공법
고의성 못 밝히면 형사처벌 힘들 듯
재시공 요구 등 소송 장기화 불가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 단지 중 지하주차장 철근을 빠트린 15개 단지가 공개되며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부실시공 문제가 드러난 아파트 단지의 지하주차장은 모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공통점을 가진 것으로 파악됐다.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철근 누락’ 아파트에 대한 책임 소재가 가려지더라도 형사처벌보단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준공된 전국 민간 아파트 중 무량판 구조를 채택한 단지는 모두 293개다. 이 중 105개 단지는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며 188개 단지는 이미 입주를 마쳤다. 무량판 구조는 대들보를 없애고 기둥이 슬래브를 받치는 형식이라 공간 활용도가 뛰어난 편이고 공사기간이 단축되는 장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보가 없는 만큼 기둥이 튼튼하게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철근(전단보강근)을 충분히 감아야 한다. 이렇게 보완작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공사장 붕괴사고 재발은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일 경기 오산시 청학동 소재 한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 하중분산 지지대가 설치돼 있다. 국토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91개 단지 중 철근이 누락된 아파트 15곳을 공개했다. 이 단지는 보강 철근 필요 기둥 90개 중 75개에서 철근이 누락됐다.
과거 붕괴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삼풍백화점(1995년)이나 나산백화점(2008년)에도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월 공사 중 붕괴사고가 발생해 7명의 사상자가 나온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도 무량판 구조였다. 무량판 구조 자체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부실 시공이 있었을 경우 사고에 취약한 형태라는 지적이다.

건설업계 안팎에서는 설계부터 시공, 감리까지 단계마다 부실이 누적된 데 더해 건설업계 ‘이권 카르텔’도 부실공사와 안전문제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전날 LH의 전관특혜 의혹을 조사해달라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경실련은 지난 4월29일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배경으로도 LH 전관예우 문제를 지적했다. 이 공사의 설계부터 감리까지 LH 출신이 있는 전관 영입업체가 맡은 것으로 경실련은 파악했다. 경실련이 건설사업관리용역 경쟁입찰 290건에 대한 수주현황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LH 전관 영입업체 47곳이 용역의 55.4%(297건) 계약금액의 69.4%(6582억원)를 수주했다. 수주과정에서 LH 전관 영입업체들과 LH 간의 유착관계를 의심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택수 경실련 경제정책국 부장은 “부처 등 모든 공공부문에서 전관예우가 만연한 것이 사실이나 전 국민이 예민하고 오가는 액수가 큰 부동산 문제가 엮여서 LH의 전관예우는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부장은 “LH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공기업”이라며 “이런 기업이 자기네끼리 짬짜미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해당 기업이 발주한 건물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철근 누락’ 아파트에 대해 형사처벌은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설계 또는 시공 단계에서 필요한 철근이 빠졌더라도 고의성이 밝혀지지 않는 한 형사 고소·고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며 “입주민 입장에서도 설계나 시공사를 고소해서 얻을 실익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1일 경기 남양주 시내 한 신축 아파트 건설현장의 모습. 뉴스1
대신 입주자대표회의 단위로 LH나 시공사 등을 상대로 보수나 보강 방안을 협상하고 여의치 않은 경우 민사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가 철근이 누락된 아파트를 발표하면서도 재시공이 아닌 슬래브 보완 등을 보강책으로 내놓은 부분에 대해 입주민이 문제 삼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건설 전문인 민동환 변호사(법무법인 윤강)는 “무량판 구조에 대한 입주민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자체적인 조사를 나서고 이를 근거로 재시공 등을 요구할 수 있다”며 “이런 방식의 조사 결과를 LH가 신뢰하지 않는다면 결국 법원의 감정을 받으려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소송의 장기화는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다만 설계·시공의 잘못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우라면 업무상 과실치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지난해 1월 노동자 6명이 숨진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와 관련해서는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와 현장소장 등 시공사와 하청업체, 감리사 등 17명을 검찰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시공사 등 법인 3곳도 주택법 위반 혐의로 함께 기소했다.

박유빈·박세준·이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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