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 "60년 연극해도 목말라…내 이름 건 마지막 작품"
"1963년 첫 무대 같은 느낌…연습하며 설레"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자, 날 좀 안아줘요. 어서."
"응, 그래, 그렇게…아, 좋아라…여전하네요, 여전해 당신은. 어쩌면 이렇게 부드럽고 따뜻하고 다정한지. 그리웠어요. 당신이, 당신 품이, 당신 손길이, 나지막한 당신 숨소리가."
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신시컴퍼니 연습실. 배우 손숙이 바닥에 주저앉아 나지막이 읊조린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따뜻하게 자신을 안아주고 있듯 눈을 지그시 감고 온몸으로 느낀다. 조곤조곤 독백을 이어가는 얼굴엔 그리움과 회한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다.
손숙의 데뷔 60주년 기념 공연인 연극 '토카타'가 오는 19일 개막을 앞두고 연습 현장을 공개했다.
손숙은 이날 간담회에서 "그냥 살다 보니 연극을 한지가 60년이 됐다"며 "60년을 하면서 좋은 작품도 하고 좋은 작가, 연출, 관객도 만났지만 늘 뭔가 목말랐던 느낌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예술, 연극이라는 게 끝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정상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늘 올라가고, 올라가도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는 때가 참 많았죠.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연극은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극은 계속할 거예요."
손숙은 고려대 재학 중이던 1963년 '삼각모자'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연극 인생의 첫발을 뗐다. 당시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의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게 계기가 됐다. 60년간 수많은 작품을 거쳐온 만큼 대표작을 올릴 수도 있었지만, 손숙의 선택은 새로운 창작 연극이었다.
그는 "기념 공연이라고 해서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잔치 같은 공연도 생각했지만, 의미가 없다고 봤다. 이번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첫 느낌이 너무 신선했다"고 말했다.
연습 가는 길이 지금도 너무 설렌다고 했다. "1963년, 처음 무대에 섰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고 미소 지었다.
"이번에 연습하며 새로운 걸 많이 느꼈어요. 몸은 굉장히 힘든데, 머리는 굉장히 맑아요. 아침에 연습을 가는 게 설레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작품은 지난 3월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었으나, 손숙이 예기치 못한 부상을 입으면서 연기됐다. "공연을 준비하다가 제가 뜻밖에 다치면서 폐를 끼쳤다. 3개월을 걷지 못했는데, 사실 아프고 나서 자신감이 떨어졌다"며 "하지만 작품이 연기되면서 대사를 외우고 작품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처음 작품을 마주했을 땐 황당했어요. 모노드라마와 같은데, 어떻게 외워야 하나 싶었죠. 3개월을 꼼짝 못 하고 집에 누워있으니까 매일 작품을 두 번씩 읽었어요. 딸이 녹음해줘서 잘 때는 그걸 들었죠. 이 작품이 저를 일으켜 세운 희망이었어요."
'접촉하다'·'손대다' 뜻의 이탈리아어 '토카레'에서 유래된 '토카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촉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코로나19로 인한 관계의 단절과 갑작스러운 죽음이 남겼던 충격과 슬픔 그리고 고독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연극계 연출 거장인 손진책과 '흥행 보증수표' 배삼식 작가 등이 뭉쳤다.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무대에는 세 명이 등장한다. 유일하게 곁을 지키던 늙은 개를 떠나보낸 늙은 여인은 마음 둘 곳이 없어 걷고 또 걷는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위중한 상태에 빠진 중년의 남자는 어지러운 코마의 심연 속에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삶의 어두운 심연과 찬란한 희망을 그려내는 춤추는 사람이 있다.
여자 역을 맡은 손숙은 "이 작품을 하며 내 인생을 쭉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부터 아이들을 키울 때 행복했던 시절, 남편과 아름다웠던 순간들, 키우던 개를 먼저 보내고 쓸쓸하게 남은 노인의 이야기에요. 저도 80살인데 내 인생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번엔 다 내려놨어요. 힘을 빼고 하고 있죠."
손 연출은 "손숙 배우의 연극 60년 기념이라고 했지만, 그의 80년 인생에 초점을 맞췄다"며 "존재론적인 고독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나이가 든 슬픔보다는 삶의 찬가를 듣는 듯한 느낌이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중심 이야기의 축이 없다. 세 인물이 각각 독립된 이야기와 춤으로 이어나가는 독특한 4악장의 연극이다. 1장, 2장이 아닌 1악장, 2악장이라고 한 것도 대본을 마치 악보 보듯이 하자는 것"이라며 "세 인물의 삼중주가 그려진다"고 설명했다.
배 작가는 "작품은 팬데믹 기간에 산책길의 혼자 걷던 시간에서 나왔다. 당시 위험으로 인지되고 희박해진 접촉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극의 여자와 남자도 단절과 고립 속에 끝없이 산책을 하고 있는 셈"이라며 "군더더기나 꾸밈없이 최대한 순수한 목소리로 이야기가 무대에서 들려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손숙 선생님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연은 LG아트센터 서울의 U+스테이지에서 9월10일까지 이어진다. 남자 역은 배우 김수현, 춤추는 사람 역은 안무가 겸 연출가 정영두가 맡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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