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테라스’ 해발고도 높아 서늘한 기후/3000년 와인양조 역사 뛰어난 샤르도네·피노누아 생산/엘레나 월쉬 알토 아디제 와인 품질 혁신적으로 끌어 올려
샤르도네 포도밭에 앉은 작고 귀여운 새 한마리. 농부가 한해 동안 쏟아부은 정성은 아랑곳 않고 맛있게 포도의 단물을 쪽쪽 빨아 먹느라 정신이 없네요.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농부는 새를 쫓을 생각은 않고 의자에 깊숙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흐뭇한 표정으로 새의 만찬을 즐깁니다. 새의 이름은 카르델리노(Cardellino). 희한하게도 이 새는 샤르도네 포도밭에만 둥지를 튼답니다. 아하. 이제야 농부의 표정을 알것 같네요. 카르델리노가 날아들었으니 올해도 샤르도네가 아주 잘 익었다는 신호! 얼마나 맛있는 와인이 탄생할지, 벌써 기대는 높은 하늘처럼 한껏 부풀어 오릅니다. 지중해의 찬란한 태양과 알프스 만년설이 맛있는 샤르도네를 선물하는 곳, 이탈리아 최북단 와인산지 알토 아디제(Alto Adige)로 떠납니다.
◆이탈리아 알토 아디제 와인을 아십니까
알토 아디제. 아직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많이 낯선 와인일 겁니다. 와인샵은 물론, 와인바나 레스토랑에서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죠. 실제 알토 아디제 와인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작은 와인 산지로 전체 와인 생산량의 1%에 불과합니다. 2022년 기준 포도밭 면적은 5700ha, 포도재배자는 5000명, 와이너리는 274개이며 와이너리당 평균 포도밭 면적은 1ha 수준입니다.
이처럼 소규모로 생산하지만 품질이 매우 뛰어납니다. 포도밭을 좀 더 세심하게 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와이너리 274개중 협동조합은 12개로 이 조합에서 알토 아디제 와인의 70%를 생산합니다. 보통 협동조합은 포도를 일괄적으로 수매해 수익을 배분합니다. 하지만 알토 아디제는 좋은 포도를 생산한 농부에게 더 많은 점수를 배정해 더 높은 가격으로 포도를 매입합니다. 포도의 품질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죠. 생산지통제규정 DOC를 받는 와인이 98%에 달한다는 점이 알토 아디제 와인의 품질을 말해줍니다. 연간 생산량은 4000만병이며 화이트 와인 비중이 64% 더 높습니다. 샴페인과 같은 전통방식 스파클링 와인도 생산하는데 연간 45만병입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하다보면 파인 다이닝에서 쉽게 알토 아디제 와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럼에도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가격이 매우 착합니다. 한국 소비자들이 이제 알토 아디제 와인에 주목해야하는 이유랍니다. 알토 아디제 와인은 생기발랄한 산도와 짭조름한 맛이 느껴질 정도로 솔티한 미네랄이 매력입니다. 유명 평론가들이 샤르도네와 피노누아에 95점 이상을 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지도를 보면 알프스산과 인접한 최북단에 트렌티노-알토아디제 주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국경과 접한 곳으로 제1차 세계 대전 전까지만하더라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해 있었답니다. 오스트리아계 소수민족이 많아 이탈리아어와 함께 독일어가 공용어로 인정됩니다. 주의 명칭도 두개 언어로 불리는데 이탈리아어 알토 아디제는 ‘아디제 강 상류’란 뜻입니다. 독일어로는 쥐트티롤(Sudtirol)로 부르는데 ‘남부 티롤’이란 뜻입니다. 알토 아디제 바로 북쪽이 오스트리아 티롤 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매우 열정적인 이탈리아 문화와는 사뭇 달라, 사색을 즐기는 독일이니 오스트리아 문화에 좀 더 가깝습니다. 와인도 마찬가지랍니다. 보틀 디자인도 독일과 붙어있는 알자스나 독일 모젤 와인처럼 길쭉한 플루트형을 많이 사용합니다. 알토 아디제 와인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대부분 소비하며 요즘에는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답니다.
◆3000년 와인 역사
알토 아디제 와인 역사는 약 2500∼3000년으로 추정됩니다. 고대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에투리리안이 와인을 양조할 때 사용한 유물이 베르사노네(Bressanone)에서 발견됐는데 포도씨, 포도나무 가지치기농기구 등 당양합니다. 유물로 미뤄 적어도 기원전 500년 또는 그 이전부터 와인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원전 15년 로마인이 지배하기전 알토 아디제 땅의 이전 주인은 라에티아아인(Rhaetians)이었는데 그들의 와인 재배 경험과 로마의 와인양조 기술이 결합해 와인산업의 첫번째 황금기가 열립니다. 알토 아디제에 유럽의 포도가 전파된 것은 700년으로 당시 40여개에 달했던 수도원 수도사들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독일 바이레른과 슈바벤의 수도원과 귀족들이 알토 아디제의 와인 양조장을 인수해 와인을 본격 생산합니다. 1142년에 지어진 수도원에서는 아직도 와인을 만들고 있을 정도랍니다.
1850년 오스트리아 요한 폰 외스터라이히(Johann von Osterreich) 대공이 처음으로 알토 아디제에 리슬링을 심었고 대공의 지시로 보르도 주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부르고뉴 주품종 피노누아를 재배했는데 이는 토스카나보다 100년 앞선 것으로 평가됩니다. 이런 대공의 노력의 덕분에 리슬링이 알토 아디제의 주요 품종이 됐습니다. 1867년 브레너 철도와 1871년 푸스터탈 철도가 건설되면서 스위스, 독일에 알토 아디제 와인이 많이 수출돼 유럽으로 퍼져 나갔고 1893년 알토 아디제 최초의 와이너리 협동조합인 안드리아노(Andriano)가 설립돼 1896년 볼차노(Bolzano)에서 첫 와인 시음 축제가 열립니다.
◆높은 해발고도와 서늘한 기후
알토 아디제 포도밭은 해발고도 200∼1000m에 달하는 완벽한 산악지대에 조성돼 있습니다. 일조량은 보르도와 비슷한 300일, 1950시간입니다. 따라서 보르도처럼 레드 와인을 많이 만들수도 있지만 고도가 높아 서늘한 기후를 띠기에 화이트 와인에 집중합니다. 비가 좀 많이 오는 편으로 오후 1∼2시 집중적으로 내리며 연간 평균 강수량은 814㎜입니다. 농사를 지을때 비가 많이 내리면 곰팡이 질병 취약합니다. 하지만 알토 아디제 포도밭은 주로 경사가 심한 곳에 조성돼 배수가 잘되고 햇볕을 골고루 받습니다. 곰팡이 질병을 방어하는 굉장히 좋은 지리적 환경을 갖춘 셈이죠.
알프스와 인접해있지만 해발고도 4000m에 달하는 오르틀스 그룹(Ortles Group) 봉우리가 알프스의 매서운 추위를 막아줍니다. 또 가르다 호수에서 매일 오후에 불어오는 남풍 오라(Ora)가 아디제 밸리를 통해 꾸준히 유입돼 포도밭을 타고 퍼져 갑니다. 산악지대이지만 레드와인도 재배가 가능한 이유랍니다.
◆다양한 품종 골고루 재배
독일과 오스트리아 영향을 받아 1975년 이전까지 레드 많이 생산지만 이후 화이트 와인 양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메인 품종은 20개입니다. 피에몬테의 바롤로, 토스카나의 산지오베제처럼 주요산지마다 압도적인 대표 품종이 있지만 알토 아디제는 20개 품종을 골고루 키우는 것이 특징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국제품종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알토 아디제의 큰 매력입니다.
화이트는 피노 그리지오(12%), 게뷔르츠트라미너(11%), 피노블랑(10.6%), 샤도네이(10.3%)가 비슷한 규모로 생산됩니다. 소비뇽블랑(8.2%)도 비교적 비중이 크고 뮐러 트루가우, 케르너, 옐로우 머스캣, 리슬링, 실바너, 그뤼너 벨트리너 등도 조금씩 재배합니다.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스파이시한 트라민’이란 뜻입니다. 트라민(Tramin)는 고대 품종으로 바로 알토 아디제 트라민 마을이 고향입니다. 게뷔르츠트라미너의 원조가 알토 아디제 인셈이죠. 원조는 뭔가 좀 다릅니다.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장미꽃향 등 아로마가 아주 좋지만 산도가 늘 부족한 것이 흠입니다. 하지만 알토 아디제 게뷔르츠트라미너는 향이 풍부하면서도 산도까지 높은 완벽한 밸런스를 지녔습니다.
오크 숙성한 샤르도네는 블라인드 테이스팅하면 정말 부르고뉴 샤르도네로 착각합니다. 발효때 포도즙을 저어주는 바토나주를 많이해 효모 풍미가 많이 나오도록 하고 부르고뉴, 특히 뫼르소를 만드는 오크를 많이 사용합니다.
레드품종은 스키아바(10.2%), 피노누아(9.3%), 라그레인(9.1%)이 주요 품종이고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카베르네 소비뇽, 레드 머스캣도 소량 키웁니다. 스키아바(Schiava)는 피노누아 처럼 옅은 컬러를 지녔고 두 가지 스타일로 마십니다. 보통 화이트 와인 온도로 아주 차갑게 칠링해 마십니다. 낮시간에 가볍고 편하게 마시기 좋은 품종입니다. 하지만 상온에서 천천히 향을 음미하며 마시는 고품질 스키아바도 생산됩니다. 라그레인은 말벡이나 진판델처럼 농축미가 느껴집니다. 색이 진하고 말린 베리류, 홍차 플레이버, 과일향이 풍부하며 묵직한 스타일 와인으로 빚어집니다. 피노누아는 요즘 알토 아디제에서 떠오르는 품종으로 향후 10년안에 이탈리아에서 피노누아를 가장 잘 만드는 지역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납니다.
◆알토 아디제 DOC
알토 아디제 DOC는 2개입니다. 일반 DOC인 라고 디 칼다로(Lago di Caldaro)와 마을이름이 붙는 ‘빌라쥐 DOC’가 있습니다.
라고 디 칼다로는 아피아노(Appiano), 테르메노(Termeno), 코르타치아(Cortaccia), 바데나(Vadena), 에그나(Egna), 몬타냐(Montagna), 오라(Ora), 브란졸로(Branzollo) 등 9개 행정구역에서 생산된 포도를 섞어서 만들며 ‘클라시코(Classico·Klassisch)’와 ‘알토 아디제’ 명칭을 모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품질 와인은 ‘수퍼리오레(Superiore)’ 명칭을 붙일 수 있습니다. 스키아바는 보통 가볍게 칠링해서 먹는 와인이지만 이곳의 스키아바는 따뜻한 호수 공기 덕분에 깜짝 놀랄 정도로 색도 진하고 탄닌도 풍성한 파워풀한 와인이 탄생합니다.
빌라쥐 DOC는 6개 마을로 발레 이사르코(Valle Isarco), 산타 마달레나(Santa Maddalena), 테를라노(Terlano), 메라네즈(Meranese), 발 베노스타(Val Venosta), 콜리 디 볼차노(Coli di Bolzano)입니다.
발레 이사르코는 해발고도 900~1000m로 발 베노스타와 함께 고도가 가장 높아 서늘한 기후를 보입니다. 두곳서 그뤼너 벨트리너, 뮐러 트르가우, 리슬링 등 독일과 오스트리아 품종을 많이 재배합니다. 발레 이사르코는 거의 70~80도 급경사에 조성된 계단 형태 포도밭이 특징입니다. 산도 높은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며 실바너, 그리너 벨트리너, 피노 그리지오, 리슬링 뮐러 트루가우, 케르너, 게뷔르츠트라미너가 허용됩니다. 특히 이곳의 실바너가 굉장히 뛰어납니다. 알자스보다 굉장히 아로마틱하고 산도와 미네랄도 뛰어납니다. 발 베노스타는 가장 최근에 지정된 DOC로 뒤에는 반드시 포도 품종이 표기됩니다.
테를라노는 이곳에서 생산된 화이트 와인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별도 품종 표기가 없다면 피노블랑 또는 샤르도네가 50% 이상 포함된 와인입니다. 두가지 스타일로 만듭니다. 화산암 토양에서 자란 포도는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해 묵직하고 석회질 토양에선 미네랄티가 높고 우아한 와인이 빚어집니다.
메라네즈는 스키아바를 메인 품종으로 빚으며 지역내에서 생산된 다른 레드품종을 최대 15%까지 섞을 수 있습니다. 가볍게 칠링해서 편하게 마시는 스키아바가 바로 이 지역 와인입니다.
산타 마델레나는 포도밭이 전부 남향이라 일조량이 뛰어나, 스키아바를 사용한 클래식한 레드 와인을 굉장히 잘 만듭니다. 지역내 다른 레드 품종을 15%까지 섞을 수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은 거의 오크 숙성을 합니다. 화이트 품종은 제대로 익지 않아 과일향이 적은데도 오크 숙성을 오래하면 나무향만 강하게 납니다. 하지만 이곳의 화이트 품종은 아주 잘 익어 오크 숙성을 많이 해도 잘 어우러집니다. 따라서 화이트는 주로 리치한 스트일로 만들어집니다. 산타 마델레나, S.주스티나,(S.Guistiana) 렌시오(Rencio), 코스테(Coste), 산 피에트로(San Pietro) 마을에서 생산된 경우 클라시코를 추가 명칭으로 적을 수 있습니다. 콜리 디 볼차노는 도심과 가까운 메인 지역입니다. 스키아바 품종으로 지역내 포도를 최대 15% 블렌딩해 만듭니다.
◆알토 아디제 와인 명성을 만든 엘레나 월쉬
엘레나 월쉬(Elena Walch)는 이런 알토 아디제의 품질을 혁신으로 끌어 올린 선두 주자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한국을 찾은 엘레나, 딸 줄리아(Julia)와 함께 대표 와인들을 매력을 따라갑니다. 현재 두 딸 줄리아와 카롤리나(Carolina)가 가세해 엘레나 월쉬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엘레나 월쉬 와인은 BK트레이딩에서 단독 수입합니다.
엘레나 월쉬 카르델리노 샤도네이는 샤르도네 100% 와인입니다. 샤르도네를 너무 좋아해 샤르도네 밭에만 둥지를 트는 작은새 카르델리노를 와인 레이블에 담아 잘 익은 샤르도네로 만드는 점을 강조합니다. 라임과 오렌지 껍질의 시트러스향으로 시작해 모과, 복숭아도 어우러지집니다. 솔티한 미네랄이 두드러지고 온도가 좀 오르면 오크향과 크리미한 향들이 피어나며 우아한 피니시는 길게 이어져 엘레나 월시 와인 스타일을 잘 보여줍니다. 15%는 배럴에서부터 발효해 오크향과 과일향이 잘 어우러지고 죽은 효모와 함께 6개월 숙성해 효모향도 잘 이끌어냈습니다.
엘레나 월쉬 샤르도네는 기본급으로 죽은효모와 함께 수개월 숙성해 효모 풍미를 잘 살렸습니다. 잘 익은 사과향이 지배적이고 이국적인 열대과일향도 가벼운 꽃향기도 곁들여집니다. 해발고도 300∼400m의 라임스톤 토양에서 자란 샤르도네로 만들어 솔티한 미네랄이 뛰어납니다.
엘레나 월시 비욘드 더 클라우드(Beyond The Clouds)는 엘레나 월시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시그니처 와인입니다. 2000년에 첫 출시했으며 샤르도네 80%에 4가지 품종을 블렌딩하는데 어떤 품종인지는 절대 비밀이라는군요. 게뷔르츠트라미너, 리슬링, 피노 비앙코, 피노 그리지오, 소비뇽 블랑 등 5개 품종 중 4가지를 선택하는데 매년 포도가 달라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모든 품종을 한꺼번에서 섞어서 양조하는 점도 독특합니다. 품종별로 숙성 기간 다른데도 같이 숙성하기 때문에 거친 결과물이 나올수 있어서 11개월동안 숙성합니다. 품종별로 구획된 빈야드에서 선별된 포도를 블렌딩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와인으로 제임스 서클링, 와인스펙테이터 톱100, 감베로로쏘 트리 비키에리에 여러차례 선정됐습니다.
망고, 파인애플, 달콤한 리치 등 잘 익은 과일향이 지배적이고 장미꽃 같은 매혹적이고 복합미가 넘치는 아로마가 어우러집니다. 뛰어난 산도 덕분에 밸런스가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오크 숙성에 얻은 적당한 바닐라, 견과류향이 피어 올라 바디감도 느껴집니다. 젖산발효인 말로라틱을 거쳐 프렌치 새오크에서 죽은 효모와 함게 10개월 숙성하며 병입후 다시 6개월을 더 숙성시켜 출시됩니다.
엘레나 월시 뮐러 투르가우는 풍부한 미네랄이 느껴지는 우아한 와인입니다.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어주는 허브향과 꽃향, 육두구, 살구향이 돋보이고 스파이시 노트와 미네랄도 느껴집니다. 뮐러 투르가우는 지역 특색을 가장 잘 표현하는 품종입니다. 따뜻한 기후이지만 알프스 끝단 자락 산기슭에 있어 산에서 내려오는 찬 기운들이 밤에 포도를 식혀 좋은 산도를 지니게 합니다. 엘레나 월시 와인들은 레이블에 산과 태양을 표기했는데 알토 아디제 떼루아의 특징을 잘 담았습니다.
엘레나 월시는 화이트 와인만큼 레드 와인도 우아하게 잘 만듭니다. 엘레나 월쉬 피노네로는 레드체리, 라즈베리 등 신선한 붉은 과일향을 시작해 화이트 페퍼가 따라옵니다. 오크숙성과 스틸탱크 숙성을 절반씩한 뒤 섞어 오크향이 과하지 않게 밸런스를 잘 맞췄습니다. 해발고도 500m에 자라는 볼륨감이 있는 피노네로와 900∼1000m 포도밭에 자라는 프레시하고 퓨어하며 우아한 피노네로를 섞어 이상적인 바디감을 선사합니다. 피노네로는 피노누아와 같은 품종입니다.
엘레나 월쉬 메를로는 산도, 탄닌, 당도의 밸런스가 뛰어납니다. 검붉은 체리, 허브향이 어우러지고 잔을 흔들면 초쿌릿향도 조화롭게 피어납니다. 알토 아디제 남서쪽 해발고도 300m의 따뜻한 지역에 자란 메를로를 사용해 둥굴둥굴한 볼륨감을 살렸습니다.
현지에선 ‘발크’로 발음하는 월쉬 가문의 역사는 150년으로 5대째 와인을 빚고 있습니다. 사실 엘레나는 결혼 전까지만 해도 와인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티롤 전통이 깊은 지역 출신이지만 엘레나는 대도시인 밀라노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베니스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28세 알토 아디제의 수도 볼자노에 그녀의 건축 스튜디오를 설립했는데 7년 후인 1985년 그녀의 삶은 크게 바뀝니다. 17세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성의 복원 사업을 맡았는데 50에이커에 달하는 계단식 포도밭으로 둘러쌓이고 1마일이 넘는 멋진 칼다라 호수 뷰를 지닌 성을 보고 단숨에 반해 버립니다. 그 성의 소유주는 바로 지금의 남편 베르너 월쉬(Werner Walch)랍니다.
그는 테르메노 근처에 있는 빈헬름 발크 와이너리의 4세대 소유주였고 프로젝트가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합니다. 그때만해도 알토 아디제는 스키아바 품종의 저가 레드와인을 주로 생산했고 프리미엄 와인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녀는 1980년 자신의 이름을 건 와이너리 엘레나 월시를 설립하고 포도밭을 구획별로 정비합니다. 대량 생산에 맞춰 포도나무를 높이 키우는 퍼골라 방식을 버리고 생산량을 쉽게 조절할 수 있는 기요방식으로 전환합니다. 포도나무당 수확량을 낮춰 품질 좋은 포도를 생산하면서 알토 아디제 와인 양조에 혁신을 불러 일으킵니다.
●최현태 기자는…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등을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알자스와 이탈리아, 호주, 체코, 스위스,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