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훔친 숟가락, 72년 만에 돌려드립니다”
“평생 마음의 짐”…“많은 이 위로받을 수 있도록 전시할 것"
“이제야 돌려 드립니다. 정말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망백(望百)의 어르신이 까까머리 소년시절이었던 한국전쟁 중 양평의 한 사철에서 훔친 숟가락을 택배로 보낸 사연이 뒤늦게 알려져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무려 72년 만이다.
올해 아흔 한살인 이규호 어르신의 얘기다.
어르신은 최근 양평군 옥천면 백운동 기슭에 위치한 사나사의 중천 스님에게 택배로 자필 손편지와 함께 숟가락 세트(숟가락 1벌과 젓가락 1벌씩 총 4벌)를 보냈다.
그러면서 “숟가락을 훔친 뒤 평생 동안 양심의 가책으로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았는데, 이제 그 무거웠던 짐을 마침내 벗을 수 있어 후련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6·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인 1950년 6월 중학교 5학년이었던 어르신은 그해 여름 학도의용군으로 유격부대에 입대했고, 유격부대는 국군이 북진할 때 양평 역전의 양평국민학교에 주둔했다.
이후 용문산 아래 사나사에 서울여성동맹원, 서울경기 인민위원장 등이 밤에 요사채에서 자고 새벽에는 밥을 해 먹고 간다는 첩보를 접수하고 새벽 4시 급습했다고 한다.
어르신은 그랬던 당시를 1950년 여름 무렵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르신은 “이불 속에는 온기가 있었고, 부엌에는 솔가리가 타면서 아궁이 밖으로 불길이 나오고 있었다. 부엌 문 뒤에 있던 밭에는 직전 누군가 볼일을 본 듯 대변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며 “절 뒤 바위에는 10대 여성 동맹원이 맨발로 필사의 도주를 하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사나사 법당 아래 지하실에는 솥과 단지 등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고, 방 안에는 조폐공사에서 찍은 돈이 한가마니 있었으며, 지하실은 칠흑같이 어두웠는데 누가 숨어 있는 것 같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 상황에서도 숟가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부엌에서 숟가락을 훔쳤다”고 고백했다.
이어 “숟가락을 가져온 게 늘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남아 있었다”며 “72년 만에 사나사 중천스님께 뒤늦게 돌려드리니 부디 용서해달라”고 호소했다.
중천 스님은 “다른 이의 물건을 훔치고도 마음의 가책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돌아온 숟가락이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며 “사람들이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용사가 돌려준 이 숟가락을 전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나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산하로 대한민국 전통사찰 제48호이며 신라 경명왕 7년(923년) 창건됐다. 경내에는 원증국사탑과 원증국사석종비 등이 있다.
황선주 기자 hsj@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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