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 하루키 "韓징용해법, 외교 피해 회피 조치…현실적 방안"
"현 국면은 일본의 과거 반성 부족보단 북한 대응 논의할 때"
'한국전쟁 전사' 한국어판 출간 계기 방한…무력통일 지향한 대결과정 분석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한반도 및 한일관계 전문가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받을 위자료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대신 내게 한 한국 정부 결정이 "외교적으로 너무 큰 피해를 회피하기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한국전쟁 전사'(全史) 한국어 번역판 출간을 계기로 방한한 와다 명예 교수는 1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일본이 너무 완고했기 때문에 현실적인 방안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일본 기업의 참여 여부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부터 그런 의견이 나왔으므로 그것은 하나의 안(案)이었다"면서 "위기를 피하기 위해 지혜를 낸 해결책"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와다 명예교수는 한국 정부의 결정을 "긍정하지만, 문제는 그에 대한 일본 기업의 응답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강제 노동한 중국인에 대해 일본 기업은 사죄하고 돈을 냈다"며 일본 측의 행동을 촉구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 측에서 뭔가 대응책이 나오기를 당연히 기대했을 것이지만 기시다 총리가 '마음이 아프다'고 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한국 측이) 인제 와서 그만둔다고 할 수는 없다"며 "딱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피해자가 고령이고 별로 시간은 없다"면서도 "지금 해결을 요구해도 어려울 것이다. 긴 안목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한일 양국 외교장관 사이에서 이뤄진 '위안부 합의'에 관한 문재인 정부의 후속 대응에는 아쉬움을 표명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다는 뜻을 표명하고 일본 정부가 10억엔(약 90억원, 당시 환율 기준 약 97억원)을 내기로 하는 등 당시 합의가 무라야마 정권 시절인 1995년 설립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 방식을 넘어서는 성과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후 아베 총리가 '그것으로 다 해결됐고 더 이상 한국에 머리를 숙일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 문제였고 한국 내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일본이 낸 돈을 한국 정부 예산으로 대체하겠다고 한 것은 "문재인 정권의 치명적인 잘못"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기시다 (당시) 외무상이 전한 아베 총리의 사죄를 (한국 측이) 문서(편지)로 달라고 했음에도 일본 정부는 이미 끝났다고 했고 이는 말도 안 되는 태도이므로 한국이 화를 내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일본 정부가 하기로 한 일을 수용하고 남은 돈으로 위안부 문제 연구소를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지금은)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을 깊게 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며 "현 국면에서는 일본의 과거 반성이 부족하다는 문제보다는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도 "함께 북한을 압박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북한 정권이 아무리 이상한 생각을 가지더라도 무력 통일하려는 생각은 이미 없다고 본다"면서 북한은 남한이 아닌 미군이 공격해 올 수 있다고 보고 핵 무기 개발과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는 만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남북 관계와 별개로 북미 관계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심리에 대해서는 "한국에 줄곧 뒤처진 것처럼 돼 있으니 그로 인해서 초조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추정했다.
아울러 "북한은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속국'이라 생각하고 '우리는 과거에는 중국이나 소련에 의존했지만 이제 우리 무기로 우리는 지킨다. 자주국방의 상징은 핵무기'라는 생각을 지닌 것 같다"고 분석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북한이 지닌 이런 시각이 일종의 '프라이드'(자존심)라고 규정하고서 "이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는 것은 북한과의 대화에서 좋지 않다. 프라이드를 인정하고 대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북한의 태세는 대외적인 위협을 전제로 한다"면서 고르바초프가 미국을 파트너라고 인정할 무렵 소련이 붕괴한 것처럼 북한이 그런 태도를 지니면 무너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와다 명예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대화하기 매우 어려운 나라"라며 "대립하면서도 서서히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의 변화, 혹은 한반도 평화 확립을 위해 일본이 공헌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북일 수교를 꼽았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 북한은 핵무기 보유 및 일본과의 수교로 위기에서 탈출하려고 했는데, 결론적으로 북일 수교가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만약 수교하면 북한은 무역으로 경제 발전을 꾀할 것이며 이는 "한 때 중국이 취했던 노선"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와다 명예교수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미국과 소련이 조선을 분할 점령했으므로 "일본은 (한반도 분단과 위기에) 책임이 있다"며 "한국이 일본에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현재의 정세로 볼 때 이런 움직임을 가까운 시기에 기대하기는 어렵고 "긴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와다 명예교수는 일본에서 2002년 펴낸 '한국전쟁 전사'(全史)가 최근 한국어로 번역 출간(청아출판사, 남상구·조윤수 옮김)된 것을 계기로 전날 한국을 찾았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어,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자료를 해독할 수 있는 연구자로서의 장점을 십분 발휘했다.
브루스 커밍스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을 비롯한 각국 학자의 선행 연구와 1990년대에 출간된 중국 장군들의 회고록, 러시아 측이 1990년대 후반에 공개한 소련 문서 등 한국,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책을 써냈다.
책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난 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된 한반도 남쪽과 북쪽에 각각 탄생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서로 대립하며 "무력통일이라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쟁의 근원을 추적했다.
또 한국전쟁의 발단을 둘러싸고 양측은 상대방이 먼저 공격했다고 주장했지만, 선제공격한 것은 북한이었고 남한은 이를 역이용해 미군과 함께 북진 무력 통일을 도모하기도 했다고 소개한다.
책은 한국 전쟁이 "동북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끌어들인 동북아시아 전쟁"이었다고 규정하며 이로 인해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결정적인 단계로 진입해 초강대국의 군사 대치라는 냉전 체제가 본격화됐다고 풀이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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