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60년 손숙 “다 내려놓고 하겠다”
대표작 아닌 실험적 신작 도전
고독·삶의 찬가 동시에 담아
“당신 품에 안겨서, 이렇게 당신 품에 안겨, 눈을 감고 누워서, 나는 가벼워져요. 낱낱이, 샅샅이, 당신은 내 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지고 나는 내 몸을 잊어버려요. 거북의 목, 굳은 어깨, 굽은 등, 어긋난 허리, 처진 가슴, 흘러내리는 배, 늘어진 엉덩이….”
배우 손숙(79)의 말은 탄식과 한숨을 닮아 있었다. 깡마른 손으로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만졌다. 허공을 바라보며 쓸쓸히 웃기도 하고 중얼거리며 허탈하게 주저앉기도 했다. 손숙은 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신시컴퍼니 연습실에서 열린 연극 <토카타> 기자간담회 전에 ‘1악장’의 한 장면을 시연했다.
<토카타>는 연극계 ‘대모’로 불리는 배우 손숙의 연기 인생 60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배우의 대표작을 기념공연으로 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실험적인 신작을 무대에 올렸다.
손숙은 “기념공연이라고 해서 달달한 로맨스 같은 걸 기대했는데 작품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웃었다. “이 작품을 하면서 내 인생을 쭉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쓸쓸하게 혼자 남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노인의 이야기를 보면서 ‘내 인생의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벗으라면 벗고, 입으라면 입고, 다 내려놓고 하고 싶어요. 기운 다 빼고.”
<토카타>는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서울에서 이달 19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공연된다. 오래 키우던 개를 떠나보낸 늙은 여성(손숙)과 바이러스에 감염돼 혼수상태에 빠진 중년 남성(김수현)이 각각 독백하면서 진행된다. 무용수(정영두)가 피아노 선율 속에서 춤을 추기도 한다. 극단 ‘미추’ 대표인 손진책이 연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창작과 교수인 배삼식이 대본을 썼다. 제목은 ‘접촉하다’라는 의미인 이탈리아어 ‘토카레’에서 가져왔다.
손진책 연출은 “코로나19 때문에 접촉이 단절된 시간이 있었는데 이 작품은 거기에서 나왔다”며 “존재론적인 고독에 대한 이야기지만 삶에 대한 찬가를 듣는 느낌이 나길 바랐다”고 말했다. 배삼식 작가는 “연극적 장치를 최대한 배제하고 순수한 목소리가 무대에서 들리기를 원했다”며 “이 이야기는 손숙 선생님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손숙은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에서 다섯 차례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유일한 배우다. 고려대 사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3년 연극 <삼각모자> 주인공으로 데뷔했다. 이후 수십 편의 연극, 영화, 드라마에서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더 글로리>에 빌라 집주인 역으로 출연했다.
손숙은 “그냥 살다 보니까 60년이 됐다”며 “이번에 연습하면서 1963년 첫 무대에 섰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60년 연극을 하면서 좋은 작품도 만났지만 늘 뭔가 목마른 느낌도 있었어요. 연극은 정상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는지’ ‘여기가 어딘지’ 몰랐던 적이 많았죠. 제 이름을 걸고 하는 연극이 마지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에요.”
<토카타>는 독백극처럼 대사가 많다. 원래 지난 3월 개막 예정이었지만 1월 손숙이 넘어져 부상을 당하면서 미뤄졌다. 손숙은 “<토카타>가 나를 일으켜 세우는 희망이었던 것 같다”며 “어떤 면으로는 개막이 연기된 것이 작품 완성도에 도움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3개월 동안 거의 못 걸었어요. 하지만 거의 매일 하루에 두 번씩 대본을 봤고, 우리 딸이 대본을 녹음해줘서 잘 때도 들었죠.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지만 ‘빨리 일어나야지’ 생각했어요. 제 불찰로 너무 많은 분께 폐를 끼쳤는데 두고두고 은혜를 갚아야 할 것 같아요.”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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