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원짜리 호텔인데 생수 1병도 안 줘?” 항의했다가 놀라운 답변을 들었다 [지구, 뭐래?]

2023. 8. 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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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시원하게 물부터 마시려고 했는데, 냉장고에 생수가 하나도 없었어요.”

최근 가족과 함께 필리핀 여름 휴가를 떠난 A씨. 마음먹고 1박에 20만원이 넘는,고급 호텔에 숙박했다. 도착해 객실 냉장고를 열곤 깜짝 놀랐다. 냉장고에 생수병이 하나도 없던 것.

A씨는 “한국 관광객도 많이 찾는 유명 호텔인데, 실수로 까먹은 줄 알았다. 호텔 직원에게 물어보니 한국말로 ‘정수기’를 얘기해주더라”고 전했다.

필리핀 한 유명 고급 호텔 객실 내에 일회용 생수병 대신 유리병과 재사용컵이 놓여 있다. [A씨 제공]

이 호텔 객실 내엔 일회용 생수병 대신 유리병과 재사용컵이 있었다. 일회용품 근절 차원에서다. 생수병 대신 공용 정수기를 통해 물을 마시고 재사용컵으로 휴대할 수 있던 것.

A씨는 “처음엔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써보니 어렵지도 않고 일회용품을 줄인다는 생각에 나름 보람도 느꼈다”고 웃으며 말했다.

여름 휴가철이다. 즐거운 휴가, 행복한 추억을 안고 돌아온다. 그리고 추억 가득 담긴 관광지에 남는 건? 다름 아닌 쓰레기다. 이왕이면 더 의미 있는 추억을 위해, 그리고 그 뒤에 찾을 다음 관광객을 위해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여행은 어떨까. 이 호텔의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시도가 주는 의미다.

지난 2019년 한국으로부터 불법 쓰레기 6500톤이 필리핀으로 수출돼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당시 필리핀에서 확인된 한국발 쓰레기 사진 [그린피스 홈페이지]

필리핀은 한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이 애용하는 관광지다. 그래서 필리핀은 오래전부터 관광 쓰레기로 몸살을 앓아왔다. 섬나라인 필리핀은 더 쓰레기 문제에 취약하다. 2021년 사이언스 저널에 따르면, 필리핀은 전 세계 해양 플라스틱 오염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국가(35.1%)로도 알려졌다. 이 쓰레기 대부분이 관광에서 나온다.

필리핀 정부도 심각성을 인지, 지속적으로 플라스틱 쓰레기 감축을 시행 중이다. 한국인도 많이 찾는 필리핀 유명 관광지 보라카이의 경우 아예 6개월간 관광을 폐쇄하기도 했다. 이후 섬 내 숙박업체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필리핀 기후 변화 위원회(The Philippine Climate Change Commission)는 모든 필리핀 내에서 1회용 플라스틱 사용 금지를 권장하고 있고, 그 후 호텔들도 자발적으로 이에 동참 중이다.

필리핀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보홀섬

A씨가 방문한 호텔도 마찬가지다. 호텔 측은 헤럴드경제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2017년부터 호텔 내 ‘플라스틱 제로’를 시행하고 있다. 생수병은 물론, 어메니티(amenity)에서도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인근 다른 고급 호텔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회용 생수병 대신 재사용컵과 유리병을 제공하고 호텔 내 레스토랑에선 모두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빨대를 제공한다. 포크 등을 담는 포장재마저도 일회용품이 아닌 천으로 제작했다.

필리핀 호텔 내 레스토랑에서 포크 등에 천으로 된 포장재를 쓰고 있다. [독자 제공]
필리핀 호텔 내에서 제공하고 있는 종이 빨대 [독자 제공]

호텔 측은 “필리핀의 자연을 지키는 실천이라고 하면 손님들도 다 이해해준다”며 “휴가철은 물론 평소에도 대부분 만실이다. 만약 필리핀 호텔들이 모두 기존처럼 일회용품을 쓴다고 상상하면 정말 엄청난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유명 호텔업계도 일회용품 근절에 점차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신라호텔은 작년부터 호텔 내 비닐 식탁보, 컵, 접시, 나무젓가락 등의 일회용품 사용을 중단했다. 종이 빨대나 다회용 종이컵 등 친환경 소재용품도 도입했다. 롯데호텔은 전 객실에 무라벨 생수병을 제공하고 있으며, 욕실 내 어메니티를 대용량 디스펜서로 교체했다.

필리핀 내 유명 호텔에 플라스틱 절감 차원에서 플라스틱 생수병 대신 유리병을 제공한다는 안내 메시지 [독자 제공]

노력은 분명 있다. 그럼 필리핀 사례처럼 객실 내 일회용 생수병도 안 쓸 순 없을까. 복수의 호텔업계 관계자는 “아직 한국인 정서엔 무리”라고 평가했다.

한 호텔 관계자는 “아무래도 위생상 고객의 불만이 클 것 같다. 통상 고급 호텔에 숙박하는 건 그만큼 대우를 받고 싶은 심리인데 아직 한국 고객 정서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 호텔 관계자도 “고급 호텔의 경우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핵심”이라고 손사래 쳤다.

그럼 실제 필리핀 최고급 호텔에서 정수기를 사용했던, A씨는 어떤 생각일까.

“아이한테도 왜 이 호텔에서 정수기를 쓰는지 얘기해줬어요. 아이도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자연스레 환경 교육도 된 것 같아요. 오히려 겪어보니 호텔 경영 철학이 참 멋져보여서, 다음에도 또 이 호텔을 이용하고 싶습니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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