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박찬욱 키드 아니네…잘빠진 재난물 '콘크리트 유토피아' [시네마 프리뷰]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름 성수기 개봉 영화 '빅4'의 마지막 작품,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베일을 벗었다. 류승완('밀수'), 김용화('더 문'), 김성훈('비공식작전') 등 쟁쟁한 선배 감독들의 뒤를 이어 개봉작을 선보이게 된 엄태화 감독의 어깨는 천근만근 짐을 진 듯 무거웠을 터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영화의 완성도 만큼은 앞서 개봉한 작품들에 뒤지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지난달 31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충무로 차세대 기대주의 재능을 아낌없이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어쩌면 수많은 재난 영화, 좀비 영화, 디스토피아 물 등에서 반복됐던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계 태엽처럼 잘 들어맞는 각본과 군더더기 없는 연출, 명배우의 활약이 돋보였다.
영화는 마치 원자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서울을 폐허로 만들어버린 대지진 이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그리며 시작한다. 신혼 부부인 민성(박서준 분)과 명화(박보영 분)는 서울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고 그 자리를 그대로 지켜낸 건물,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 중 한 명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지진 이후 회의를 열고,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주민 대표를 새롭게 선출하고자 한다. 투표를 통해 선출된 사람은 902호 주민 영탁(이병헌 분)이다. 영탁은 망설임 없이 화염에 휩싸인 집에 들어가 단숨에 불길을 진압한 투철한 희생정신을 지닌 인물로, 부녀회장(김선영 분)을 비롯한 사람들의 열렬한 추천으로 얼떨결에 대표 자리를 떠맡게 된다.
황궁 아파트가 당면한 첫번째 과제는 수없이 몰려드는 피난민들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주민회의를 열고 투표를 통해 외부인들을 쫓아내기로 결의한다. 온 아파트 주민들이 힘을 합쳐 '가족' 같은 아파트 주민들을 지켜내기 위해, 외부인들을 쫓아낸다. 대다수 외부인들이 황궁 아파트 근처 고급 아파트인 드림 팰리스에서 온 부자들이라 반감은 더 심했다. 외부인들을 쫓아낸 뒤에 아파트는 김영탁 대표를 중심으로 재정비 작업에 들어간다. 상하수도 시설과 전력 공급 시스템이 다 무너져 예전 같지 않은 상황 속에, 아파트 주민들은 다함께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 만의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블랙 유머가 가득한 풍자극이다. 재난의 상황에서 사람들의 부자와 가난한 사람, 더 배운 사람과 덜 배운 사람의 관계는 전복된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음식과 물, 외부 세력으로부터 지켜줄 방어력-을 제공할 수 있는 이들의 계급이 높아져 간다. 관계는 전복됐지만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현실의 아이러니다. 그 와중에도 자가와 전세 사는 사람들은 구분되며, 힘 있는 사람들이 '번데기 캔' 같은 귀한 단백질 제공 식품을 독점한다. 먹는 문제가 해결될 때는 한 식구지만, 그것이 되지 않을 때는 여기저기서 서로 다른 소리가 나오고 균열이 일어난다. 현실 사회의 축소판이 아닐 수 없다.
'친절한 금자씨'의 연출부 출신으로 시작해 '파란만장' '만신' 등으로 박찬욱 감독과 인연을 이어온 엄태화 감독은 '박찬욱 키드'라는 별칭을 붙여줘도 무리가 없는 박찬욱 감독의 후예다. 박찬욱 감독은 엄태화 감독의 첫 상업 영화 '가려진 시간'의 시나리오를 감수해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욱 키드'답게 엄태화 감독의 두 번째 상업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흥행 코드를 답습하는 한국형 재난 영화의 틀을 비껴나 있다. 일방적인 악당도, 일방적인 영웅도 없다. 그저 위기에 봉착한 착하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평범하고 복합적인 인물들이 이리저리 상황에 휘둘리며 빛을 선택하기도, 어둠을 선택하기도 하는 과정을 날카롭게 포착해 냈다.
배우 이병헌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하다. 연민이 가는 리더이면서 응큼한 악당이기도 한 복합적인 이 인물을 그가 아니라면 또 누가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목소리 큰 부녀회장 금애 역을 맡은 김선영의 연기도 눈 부시다. 여름 영화 복병의 등장이다. 러닝 타임 130분. 오는 9일 개봉.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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