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 안하면 재설계 압박까지"… 곪아터진 LH 이권카르텔
매년 "전관 차단" 발표하지만
수의계약·일감 몰아주기 관행
국정감사 지적 받아도 못고쳐
'철근누락' 15곳 감리업체 중
8개 회사서 LH 퇴직직원 채용
與 "文정부 잘못 … 국정조사"
윤석열 대통령이 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아파트 단지의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 사태를 '이권 카르텔'로 규정하면서 그간 LH의 고질병이었던 '전관예우'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오르고 있다. LH는 매해 혁신 방안을 발표하며 전관예우 기준을 높여 나가고 있으나, 이번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여전히 LH 전관들의 전방위적인 영향력 행사는 지속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를 '문재인 정권의 산물'이라고 규정하며 국정조사를 실시할 뜻을 밝혔다.
LH의 전관예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새로운 사장이 취임할 때마다 LH 혁신 방안으로 전관예우 차단을 내세웠으나,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등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선 LH가 최근 7년간(2016~2022년 6월 말 기준) 2급 이상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와 8051억원(150건)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음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기도 했다. 2급 이상 퇴직자는 2021년 6월 혁신 방안을 통해 LH가 재취업 제한 기준을 높인 직급이다.
이한준 사장 역시 취임 직후인 지난해 12월 '국민신뢰 회복을 위한 LH 혁신 선포식'을 열고 '전관예우 차단'을 8개 세부 추진 과제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의지가 무색하게도 이번에 부실시공이 드러난 15개 LH 공공아파트 단지 중 8개 단지의 감리 업체는 LH 퇴직 직원이 재취업한 '전관 업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3개 단지 감리를 담당한 한 업체에 LH는 최근 5년 동안 730억원이 넘는 계약을 몰아주기도 했다.
이 사장은 지난달 31일 이번 무량판 구조 점검 결과를 발표하면서 "매년 수백 명씩 퇴직을 하는데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이 건설사, 설계사, 감리사 등밖에 없다"며 "전관예우는 뭘 하더라도 나오게 돼 있다"고 말했다. 퇴직자들의 관련 업체 재취업이 매우 보편화돼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대학 건축학부 교수는 "설계 공모에서 당선되면 설계 디자인뿐 아니라 구조·기계·전기 분야도 외주를 줘야 하는데, 이 같은 외주 업체들이 다 LH 출신들이 가 있는 전관업체들"이라며 "당선 업체가 만약 전관업체가 아닌 다른 업체에 외주를 주면 LH가 재설계를 요구한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 역시 "LH 전관이 설계사무소를 차리거나 영업직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관이 있는 설계사무소가 LH 사업을 따내면 시공사가 설계사에게 감히 의견을 내지 못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실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검단신도시 안단테(GS건설 시공) 역시 LH가 전관업체에 설계와 감리 등의 용역사업을 중점적으로 몰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의 강력한 이권 카르텔 혁파 지시에 여당은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문재인 정권의 이권 카르텔을 국정조사로 모두 파헤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강 수석대변인은 "무엇보다 이러한 총체적 부실이 모두 문재인 정권에서 일어났다. 자신들은 다주택의 내로남불을 시전하면서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짓밟고 임대주택으로 내몰더니, 그마저도 엉터리 부실 공사였던 것"이라고 말하며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전 정부에 돌렸다.
한편 LH는 아직 입주민들에게 정확한 상황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30일 긴급안전점검 회의에서 지하주차장 무량판 구조 안전점검 결과를 발표한 지 이틀이 지났으나 입주민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상세한 점검 결과와 후속조치 방안을 안내한 것은 15개 단지 중 파주운정 A34블록(초롱꽃마을3단지·임대아파트)이 유일하다.
LH 관계자는 "아직 일정이 잡히지 않았으나 조만간 다른 단지들도 설명회를 열고 주민들에게 사과하는 자리를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15개 단지 중 공사가 완료돼 주민들이 입주(준공 완료)한 곳은 △초롱꽃마을3단지(파주운정A34) △서수원한라비발디3단지(수원당수A3) △내포신도시 한울마을 2단지(충남도청이전신도시 RH11) △디아크리온 강남(수서역세권 A3) △LH행복주택(오산세교2 A6) △별내퍼스트포레(남양주별내 A25) △금석주공아파트(음성금석 A2) △월송행복주택아파트(공주월송 A4) △아산탕정LH14단지(아산탕정 2-A14) 등 9곳이다.
이날 남양주 별내퍼스트포레 단지에서 만난 한 입주민은 "아직 LH로부터 점검 결과에 대해 전해 들은 바가 없다"며 "뉴스를 통해 사실을 접하고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에 부착된 공고문을 통해 철근 누락 사실을 알게 됐다는 또 다른 입주민은 "국가가 지은 공공분양 아파트인데 철근이 누락됐다는 게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입주민들은 계약 취소와 분양대금 반납을 요구하기도 했다. 마이너스 옵션으로 분양을 받은 한 30대 남성은 "LH가 계약을 전면 취소해줘야 한다"며 "입주하면서 직접 꾸민 인테리어 비용까지 전부 보상해줘야 한다"고 의견을 말했다.
[연규욱 기자 / 이석희 기자 / 이희수 기자 / 신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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