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극단적 선택'이란 말
'자살 사건'에 대한 기사를 쓸 때마다 표현 때문에 고심한다. '극단적 선택' 또는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등으로 우회하며 가급적 완곡한 표현을 찾으려고 애쓴다. 이는 보건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지키기 위해서다. 권고기준은 자살 관련 보도를 자제하고, 기사 제목에 자살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방자살 등을 막자는 취지다. 자살 대신 '극단적 선택'을 권고하지는 않았지만, 언론들이 자주 사용하면서 '극단적 선택'이 자살을 의미하는 용어로 굳어졌다.
하지만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이란 책으로 알려진 나종호 미국 예일대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는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자살을 하나의 선택지로 받아들이게 할 뿐 아니라 유가족에게 '선택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갖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살이라는 용어가 자살률을 높인다는 근거도 없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미국도 2005년 앨버타 정신건강회의에서 '자살을 저지르다(commit suicide)'라는 부정적인 표현 대신 '자살로 사망하다(die by suicide)'라는 중립적인 표현으로 수정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8년째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2021년 한국에서 자살한 사람은 1만3352명으로, 하루 36.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은 26.3명, 10대 자살률은 1년 새 10%나 증가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자살을 정확히 호명하지 못하고 용어만 순화한 채 자살 문제를 외면하고 회피해온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최근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도 언론이 자살사건을 보도할 때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자살이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용어 수정으로 자살 문제를 정면 응시하는 것을 넘어 자살과 우울증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 사회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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