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7월이 남긴 이야기

2023. 8. 1. 17: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폭우의 장맛비와 무더위로 얼룩진 칠월도 엊그제 떠났다. 전국 곳곳에 상처를 남기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2023년의 칠월은 이육사가 노래한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의 그 '청포도' 시절이 아니었다. 폭우의 장맛비로 전국 170여 곳의 제방이 무너지고 50여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낸 가슴 아픈 시절이었다.

평균기온이 32.4도로 길거리가 사우나가 된 찜통더위에 시달려야 했고 생활물가지수는 전년에 비해 2.3%가 오르고 식품비는 4.7%나 뛰어 삼계탕 한 그릇 먹기도 가슴 졸이고 버거운 계절이다. 2023년의 7월은 그렇게 아픔으로 오고 아픔으로 갔다.

그러나 수해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우리 정치권은 '내로남불'이니 '적반하장'이니 '후안무치'니 하는, 이미 정치용어가 되어버린 언어들로 변함없이 치고받는 난타전의 모습이었다. 또 '과하지욕(跨下之辱)'이니 선녀의 옷에는 바느질한 자리가 없다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니 하는 신소재 고사성어까지 개발돼 물난리 속에서도 한문 공부를 해야 했다.

중학교 때던가 어렴풋하지만 '초한지'를 읽었다. 한나라의 대장군 한신이 별 볼 일 없는 야인 시절 외나무다리에서 동네 건달과 마주쳤다. 건달이 한신에게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고 했다. 한신은 말없이 가랑이 밑을 기었다. 훗날 대장군이 된 한신에게 누군가 "천하의 대장군이 어찌 건달의 가랑이 밑을 기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대장군 한신은 "내가 그때 그 가랑이 밑을 기지 않았다면 살아서 천하를 호령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뉴스에서 '과하지욕'이 한신의 이야기라고 해서 생각이 났다.

시대는 흐르고 변했다. 하지만 초한시대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백성의 마음이 하나 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세를 낮추고 안정감을 주는 편안한 정치, 정치인을 마음에 두고 지지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정치는 아직도 백성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이제 우리 정치도 국민의 마음을 바르게 알고 묵묵히 실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수해가 급박한 상황에서 서로 먼저 협력하고 나중에 네 탓을 따질 수는 없었는지, 아쉬운 칠월이었다. 더는 큰돈 들여 만든 댐을 큰돈 들여 부수는 혈세 낭비의 치수는 없어야 한다는 게 칠월의 홍수가 남긴 교훈이다. 만들 때도 부술 때도 오직, 백년대계를 위한 오차 없는 치수가 필요하다. 더는 인재로 인한 수재는 없어야 한다. 칠월은 아팠지만 교훈을 남기고 갔다.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한다.

장마도 걷혔다. 이제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을 다시 맞이해야겠다. 그리고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노래한 허연의 '칠월'처럼 아팠지만 사랑했던 그 여름을 빨리 회복해야겠다. 그랬으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일까 해서.

[신대남 한국대중문화예술평론가회 회장]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