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중재판정 불복 결정 2주 만에 ‘론스타’까지... 고심 깊어진 법무부
‘외환카드 주가조작 유죄 판결’ 내세울 듯
“취소 사유 인정 까다로워…확실한 전략 필요”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론스타가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에 불복해 취소 소송을 제기하면서 ‘한국 대(對) 론스타 2차전’의 막이 올랐다. 앞서 2주 전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취소 소송도 개시한 만큼, 두 사건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 정부 입장에선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사무국은 지난달 29일 론스타 측이 중재판정부의 원 판정에 대한 취소 신청을 했다고 법무부에 통지했다. 우리 정부가 론스타에 약 28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중재판정에 불복한 것이다. 이는 당초 론스타 측이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의 4.6%에 해당된다.
◇”론스타 관련 의혹 사건... 2차전서 쟁점 될 수도”
우리 정부와 론스타 간 분쟁은 지난 2012년 시작됐다. 그 해 11월,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46억7950만달러(약 5조9700억원)의 손해를 봤다며 세계은행 ICSID에 국제중재를 신청했다.
론스타 측은 우리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지연시켜 국내 법령에 규정된 심사 기간을 넘기도록 만들었으며, 외환은행 매각 가격을 인하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외환은행을 당초 HSBC와 체결하려던 계약보다 불리한 조건(낮은 가격)에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론스타의 주장이었다.
판정은 중재 제기 10년 만에 나왔다. 작년 9월 중재판정부는 우리 정부가 론스타에 2억1650만달러(약 2762억원)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론스타 측 ‘일부 승소’로 끝난 것이다.
론스타가 취소 소송을 제기한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법무부도 아직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본래 청구액 중 4.6%만 인정된 원 판정에 대해 론스타가 공개적으로 실망감을 표출했던 만큼, 배상금이 지나치게 낮다는 게 불복의 이유가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대형 로펌의 국제중재 전문 변호사는 “워낙 적은 금액이 인정된 만큼, 론스타 입장에선 사실상 패소했다고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맞불 소송’을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현재 취소 사유를 구성하는 데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론스타 임원이 외환카드 주가를 조작해 유죄 판결을 받은 점이 ‘2차전’에서 법무부 측 중요 논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은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직후 외환카드를 헐값에 합병하려고 허위 감자설을 퍼뜨려 주가를 떨어뜨렸다는 게 골자다. 지난 2006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수사한 사건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소속됐던 수사팀은 이 의혹과 관련해 론스타 코리아 대표 등을 재판에 넘겼다.
당시 함께 기소됐던 외환은행 법인은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유모 론스타 코리아 대표가 주가조작 혐의로 2011년 대법원에서 징역형을 확정 받았다. 론스타와의 국제중재 원 판정에서 우리 정부는 이 사건을 언급한 바 있다. 그 당시 주가 조작 사건의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주식의 강제 매각 명령 등 론스타에 대한 처분이 달라질 수 있었던 만큼, 정부가 심사 기간을 연기한 것은 공정한 판단이었다는 게 우리 정부의 주장이었다.
결국 중재판정부는 우리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금액 4억3300만달러 가운데 절반인 2억1650만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배상액을 2억달러 이상 깎는 데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셈이다. 실제로 이 같은 논리는 중재판정에서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소수의견의 근거로 작용하기도 했다. 중재판정 당시 판정관 3명 중 1명이 이런 판단을 내놨다.
국제중재 전문 미국변호사는 “중재인 간에 이견이 있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며 “법무부는 이 부분을 강조해 2차전을 위한 논리를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감 보이는 법무부... 취소 사유 인정이 우선
법무부는 지난해 론스타 사건의 중재판정이 나온 후부터 줄곧 “(취소 소송 시) 승산이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상갑 전 법무부 법무실장은 작년 브리핑에서 “승소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고 있다”고 밝혔는데, 최근 법무부 관계자는 “판정과 관련해 입장이 (작년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취소 소송이 시작되면 ICSID는 3명으로 구성된 취소위원회를 구성해 양측이 주장하는 취소 사유가 적절한지 판단한다. 심리는 통상 1년 가량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ICSID 협약 제52조 제1항에 따르면, 취소위는 ▲판정부의 부적절한 구성 ▲판정부의 명백한 월권 ▲중재인의 부패 ▲중대한 절차규칙 위반 ▲판정 이유의 흠결 등 5개 사유에 대해서만 취소 사유를 인정한다.
다만 취소 사유에 대한 인정은 까다로운 편이다. 법무법인 율촌의 국제중재팀장을 맡고 있는 안정혜 변호사는 “국제중재 사건에서 판정이 취소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며 우리 정부에 확실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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