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아래 일터' 잔인한 여름…ATM기기방은 '꿀맛 피서지'
폭염 속 '땸 샤워' 일상…"그늘서 물 한모금에 하루 버텨요"
(부산=뉴스1) 조아서 기자 = 기온이 33.2도까지 치솟은 1일 낮 12시48분께 부산 해운대구 한 거리 위. 태양열을 받아 한껏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에는 단 1평 그늘에 기대 더위를 피하는 이동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잠깐만 밖에 있어도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의 땡볕에도 긴팔 옷과 모자로 중무장한 백서정씨(57)는 일명 '요구르트 아줌마'다. 요구르트 카트 매니저인 백 씨의 일터는 말 그대로 ‘'거리'다. 이날도 아침 7시부터 정기 배달을 한 뒤, 빵집 옆 그늘을 찾아 카트를 주차했다.
백 씨는 "보통 정기 배송은 60여 가구에 달한다. 그 외에 10~12시간은 거리에서 보낸다"며 "프리랜서라 얼만큼 일할지는 자유지만 제품 반품이 어려워 재고를 털어내려면 종일 몇 시간이고 거리에서 보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근 카페나 관공서에서 잠시라도 열을 식힐 순 없냐는 질문에 “언제 손님이 찾을지 모르는데 카트를 기준으로 반경 50m 안에는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며 연신 부채질을 했다.
이 거리에서 만난 또다른 이동 노동자 서정우씨(50)는 한번에 계란을 6판(180개)을 들고 종종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이날 총 400판의 계란을 모두 배송해야 한다. 서 씨가 목에 두른 수건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서 씨는 "계란은 상하면 안 되니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주고, 난 그냥 창문 열고 다닌다. 계란이 상전"이라며 "시간 내에 배송을 완료해야 하니 일하는 중 휴식은 꿈도 못 꾼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바로 옆 20L 생수통(정수기용)을 하차하던 생수 배달 기사 A씨 역시 시간에 쫒기긴 마찬가지다. A씨가 트럭에서 생수통 4개를 연달아 내리며 허리를 굽혔다 펴는 사이 이마에 맺혀 있던 땀은 비 오듯 땅으로 뚝뚝 떨어졌다. 트럭에 가득 쌓인 생수통 80여개뿐만 아니라 조수석을 꽉 채운 500ml와 2L 생수 수십병까지, A씨는 오늘 이 작업을 수십번 반복해야 한다.
A씨는 "물을 배달하느라 물 한 모금 못 마실 때가 태반"이라며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짜리 상가를 오를 때면 한 번에 옮길 수 없어 몇 번이고 오르락 내리락 하게 되는데 "정말 딱 '죽겠다'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살인' 더위라는 말이 딱이다"라고 말했다.
폭염이라는 재난에 그늘 한점 없이 속수무책으로 노출되는 건 배달 노동자뿐만이 아니다. 이날도 주택가 곳곳을 돌아다닌 가스 검침원 김 모씨(50대)는 계단에서 잠깐 숨을 돌렸다.
김 씨는 "주택가 안쪽이나 수십가구가 있는 아파트 단지를 방문할 때면 쉴 곳이 마땅치 않아 계단에서 잠시 앉아 있는다"면서도 "날씨가 30도까지 오르는 날이면 건물 밖이나 안이나 뜨겁게 달궈져 후덥지근하긴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날 김 씨가 의지할 곳은 집에서 챙겨온 물 한통이 전부였다.
이날 부산진구 서면에서 만난 한 배달 라이더는 건물 사이 바람이 불자 마스크와 헬멧을 급히 벗어던졌다. 땀으로 세수를 한 모습의 그는 "최근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려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끼고 일한다"며 "잠깐만 움직여도 마스크 안이 땀으로 축축해지지만 코로나19에 걸리면 며칠 일을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인근에 이동노동자 쉼터가 있었지만 그는 뙤약볕에 달궈진 헬멧이 채 식기도 전에 떠날 채비를 했다. 그는 "하루 중 가장 더운 낮 12시부터 오후 2시가 가장 피크 시간이라 쉼터를 찾아 쉬고 있을 시간이 없다"며 "한가로울 때 이용하고 싶어도 많지 않으니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ATM기기 은행지점이나 셀프 빨래방에 잠깐 들어가 있기도 한다. 부산 곳곳에 편히 들릴 수 있는 쉼터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시 이동·플랫폼노동자지원센터 도담도담에 따르면 올해 쉼터 이용자는 한달 평균 4633명이다. 상반기 총 이용객은 2만7798명에 달하지만 진구, 해운대구, 사상구 단 3곳 뿐이다.
특히 이용객의 97.9%가 대리운전 기사, 배달라이더 등으로 일부 직종에 이용객이 몰려 방과후 강사, 보험설계사, 프리랜서 등과 같은 다양한 이동 노동자의 이용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혹한기, 혹서기, 폭염 등 극한 날씨에 실질적으로 야외 노동자들에 대한 업무중지가 이뤄져야 하는데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보니 재난 수준과 맞먹는 폭염에도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며 "이들의 경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경우도 많아 보호의 밖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후 위기로 급변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이와 관련된 규정이 각 노동자들의 현실에 맞게 세부적으로 법제화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가정을 방문하는 요양보호사, 가스 검침원 등 다양한 형태의 이동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적재적소에 쉼터가 마련될 수 있도록 지자체 자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폭염은 사회적 재난으로 혹서기 동안만이라도 간이 쉼터를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ase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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