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창직] “할머니에게 일의 기쁨과 삶의 행복을 선물합니다”

한겨레 2023. 8. 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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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국 ‘마르코로호’ 대표 인터뷰

노인을 위한 나라는 과연 있을까? 앞으로 약 3년 뒤인 2025년,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가 된다.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 사회로 진입하기까지 불과 1년 6개월도 안 남은 시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할머니에게 행복한 일과 일상을 선물하는 브랜드 ‘마르코로호’의 이야기는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돌파하자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 할머니의 손길로 직접 만든 작은 소품으로 큰 가치를 전하는 ‘마르코로호’의 신봉국 대표를 만나봤다.

신봉국 마르코로호 대표.사진 바림

할머니들의 행복을 전하는 메신저

오늘의 이야기 주인공이자 ‘마르코로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는 바로 ‘할머니’입니다. 대표님께서 어르신, 특히 할머니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OECD 국가 중에서 노인의 빈곤율과 자살률이 우리나라가 제일 높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할머니들은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그때의 여성 노인들은 사회에 진출할 기회가 적어서 직업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은 세대였거든요. 그래서 할머니를 위한 행복한 일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이렇게 자연스럽게 할머니를 떠올린 이유는 평소에 제가 할머니와 각별한 사이여서 그랬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늘 저와 함께였던 할머니를 참 좋아라 했지요. 창업을 결심한 데에는 할머니가 저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제 마음의 고향인 경상북도 상주에 사무실을 열고 2015년부터 ‘할머니들의 행복 메신저’로 열심히 달려오고 있습니다.(웃음)

‘마르코로호’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은 할머니들이 직접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과정에 참여할 할머니들을 한 분씩 찾아다니며 설득하셨다고요? 말 그대로 ‘맨 땅에 헤딩’을 하는 심정이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할머니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안 잡히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먼저 시청에 연락을 했었어요. 그러니 할머니들이 자주 가시는 경로당 지도를 하나 주시더라고요. 바로 그곳으로 가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띄워놓고 우리가 구상하는 사업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겼어요. 사실 우리 시대 할머니들 중에는 글을 못읽거나 읽어도 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인 분들이 아직 많아요. 그래서 글을 몰라 부끄러워서 화를 내는 할머니, 아예 듣지 않으려는 할머니들도 있었어요. 그들을 위한 사업을 해보자며 뛰어든 저조차도 할머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이후로는 쉬운 말과 그림으로 할머니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할머니들이 하나둘 모여 ‘마르코로호’의 수공예 액세서리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사진 바림

팔찌와 파우치, 뜨개질 가방 등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감각적인 제품들이 ‘매듭지은이’, ‘봉제지은이’, ‘뜨개지은이’ 할머니의 손을 거쳐 어떻게 탄생하는 건지 알려주세요.

‘마르코로호’ 하면 떠오르는 대표 상품인 매듭 팔찌로 예를 들어볼게요. 먼저 제품 개발을 담당하는 매니저가 제품을 기획합니다. 요즘은 어떤 색상이 인기 있는지, 유행하는 디자인은 어떤 것인지 시장 분석을 거치죠. 그리고 제품의 재료를 가지고 가서 매듭지은이 할머니들에게 팔찌 만드는 법을 교육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아무리 예쁘고 좋은 매듭일지라도 정작 할머니가 못 하시면 아무런 의미가 없거든요. 매듭지은이로 들어오면 최소 두 달 정도의 교육을 받는데요,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할머니들은 그래도 손으로 뭔가를 하는 것이 익숙하셔서 그런지 처음에 어려워하던 할머니들도 금세 적응하시더라고요. 매듭지은이가 끈을 엮어 팔찌를 만들면, 팔찌의 끝을 불로 지져 마감해요. 할머니들에게 혹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 이 단계부터는 저희 사무실에서 담당합니다. 마감 후 예쁘게 포장해서 고객에게 배송하는 것까지가 하나의 과정입니다.

제품을 주문하면 할머니가 직접 그리신 그림, 꾹꾹 눌러쓴 듯한 손글씨 엽서를 함께 받아볼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에요. 지은이 할머니의 개성 넘치는 별명도 적혀 있고요. 이건 마치 ‘부캐’ 같은 거네요.(웃음)

맞아요. 할머니들의 얼굴과 실명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인정보 보호 목적으로 고안한 방법이에요. “할머니, 불리고 싶은 별명으로 적어주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다양한 별명이 나오더라고요. 달달둥근달 할머니, 개똥이 할머니, 매화꽃 할머니…. 재미있죠?(웃음) 이름 짓기 말고도, 이제는 할머니들이 아이디어를 직접 제안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실제로 우리랑 가장 오랫동안 함께하신 매듭지은이인 ‘달달둥근달 할머니’가 직접 제안한 제품을 출시해서 펀딩을 진행한 적도 있답니다.

지은이 할머니들은 일주일에 두 번 출근, 총 여덟 시간 근무하며, 손길이 담긴 공예 제품을 한 땀 한 땀 만들고 있다. 또한, 할머니들의 활발한 사회 참여와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다양한 문화 체험과 교육도 이루어진다.자료 제공 마르코로호

누군가를 위해 진심을 다해 제품을 만든 할머니에게도, 그 마음을 전해 받은 소비자에게도 특별한 기억이 될 것 같아요.

맞아요. 상품 후기를 보면 특이하게도 ‘선물 받았다’는 표현이 눈에 자주 띄어요. 특히 지금 ‘마르코로호’ 고객들에게 가장 사랑받고있는 ‘탄생화 팔찌’의 경우 “꼭 할머니에게 생일선물 받는 기분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웃음) 이런 반응들을 모아서 할머니들에게도 ‘댓글북’을 만들어 보여드렸더니, 아이처럼 좋아하시면서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개인 SNS를 개설하신 할머니도 계실 정도예요. 또, 어떤 할머니는 “원래 나의 삶은 매일같이 혼자 일어나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동네를 잠깐 걷다가, TV 보며 잠드는 것의 연속이었는데 동료들과 같이 이 일을 하면서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씀해주시는 거예요. 그런 말씀을 들을 때면 저도 덩달아 행복해져요.

우리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

‘마르코로호’처럼 어르신들의 손글씨나 손그림 등으로 제작하는 굿즈를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이 점점 생겨나고 있어요.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를 겨냥해서 여러 기업에서도 실버 세대와 협업해 마케팅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조금씩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제야 이런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어르신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기업이나 비영리단체가 많이 등장해서 이 판을 같이 키워나가는 것을 항상 꿈꿔왔어요. 저는 우리 회사의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나도, 우리도 모두 언젠가 노인이 된다’고요. 지금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류에서 밀려났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거든요. 그럴 때 ‘나중에 60대, 70대가 되면 얼마나 쓸쓸해질까’라는 고민을 해요. 이것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그리고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문제가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나중에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르코로호’처럼 어르신들을 위한 브랜드가 열심히 사업을 벌이는 것과는 별개로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겠죠. 여러분도 따뜻한 관심과 함께 긍정적인시선을 가지면 참 좋을 것 같아요.

‘할매니얼 감성’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마르코로호’의 다음 발걸음은 어디로 향할까요?

다가오는 초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마르코로호 3.0’ 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정이에요. 더 많은 할머니가 행복한 일상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의 활동과 사업을 확대하려고 해요. 현재 ‘마르코로호’에는 매듭지은이, 봉제지은이, 뜨개지은이 할머니들이 함께하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문구지은이’ 할머니들과 같이 만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출시를 앞두고 있답니다. 지금까지는 아무래도 제품을 제작하려면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허리 힘, 손재주, 그리고 좋은 시력까지 갖춰야 해서 85세가 넘는 고령의 할머니들은 참여하시는 데 한계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할머니의 글과 문장을 문구 소품에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했어요.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어르신을 위해 문해 교육도 같이 실시하면서 문맹률 완화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또, 제품 제작뿐만 아니라 포장, 발송, 그 외 여러 부가적인 업무를 할 때도 할머니들을 채용해서 ‘행복한 일자리’를 다양화하려고 해요. ‘할머니를 위한 브랜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진정성 있는 ‘마르코로호’가 되는 것이 저희의 최종 목표입니다.

마르코로호 제품 구매 시 기부하고 싶은 곳을 선택하면 수익금 일부가 기부된다. 누적해서 1억5000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 어르신들과 유기동물 보호, 소방관 복지를 위해 전달되었다. 앞으로 개선되는 마르코로호 3.0에서는 할머니들을 위한 기부 시스템을 더욱 활성화할 예정이다.자료 제공 마르코로호brbr

대표님처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앞길을 개척하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지금 당장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오랫동안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직업이 뭘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소명의식은 사실 인생의 ‘속도’라기보다 ‘방향’이에요. 보통 우리가 잘 알 만한 유명인들, 한 분야에서 뚜렷한 결실을 맺은 사람들을 보면 소명의식 없이는 결코 그 자리까지 가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소명의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채로운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추천하는 방법은 ‘다독’입니다. 하지만 책을 그저 많이 읽기보다는 그보다 더 값진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런 인생을 사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었구나’, ‘이렇게도 삶을 살 수 있구나’라는 관점으로 접근해보는 건 어떨까요? 내 인생의 ‘경험치’를 늘린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펼쳐보길 바라요.

이은주 MODU매거진 기자 silver@modu1318.com

글 이은주 · 사진 바림 · 자료 제공 마르코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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