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에 빠진 K바이오, 신약임상 포기 속출…선택과 집중?
"자금난 여전, 그래도 성과내는 기업은 투자유치"
국내 바이오사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일부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 개발을 포기하고 있다. 지난달 자진 취하 결정이 난 임상만 총 6건이다. 작년부터 이어진 '바이오 투자 경색'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이러한 양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되레 긍정적으로 보는 모습이다.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해선 불가피한 과정이란 이유에서다.
1일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기업 고바이오랩은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로 개발하던 KBL697의 한국 및 국내 임상 2a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2021년 7월 미국 FDA(식품의약국)로부터 계획을 승인받은 뒤 총 30명의 대상자를 모집해왔던 임상이다. 고바이오랩 측은 "초기 단계인 해당 파이프라인을 정리해 매몰 비용을 최소화하고, 최소 50억원 이상의 미래 개발비를 절감해 파이프라인 강화를 위한 재원을 확보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즉 비용을 절감해 파이프라인 선택과 집중에 나선 것이다.
면역항암제 개발기업 네오이뮨텍도 지난달 진행하던 14건의 임상 중 3건을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NIT-109(위암) 2상, NIT-106(고위험 피부암) 1b/2a상, NIT-104(교모세포종) 1상이다. 네오이뮨텍은 "다른 적응증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 해당 임상을 중도 중단하는 것으로 의사결정했다"고 밝혔다.
같은 달 뉴클레오사이드 신약개발 전문기업 퓨쳐메디신은 국책과제로 선정돼 개발해오던 녹내장 치료제 후보물질 FM101의 임상을 중단하기로 했다. 퓨쳐메디신은 "내부자금 문제로 환자 모집에 어려움이 있다"며 "연구비 정산을 통해 민간부담금을 환급받고자 과제 중단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세포치료제 개발기업 지씨셀도 판상형 건선 치료제로 개발하던 CT303 1상을 중단했다. 지씨셀은 "전사적 개발 역량의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사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임상을 조기 종료한다"고 했다.
업계에선 이러한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바이오 산업 투자가 경색된 상황이어서다. 신약 개발은 당장 돈을 벌지 못하면서 연구비를 쏟아부어야 하는 특성을 지녀 외부 투자 유치가 중요하다. 하지만 작년부터 자본시장에선 회수 불확실성, 오랜 불신 등 요인으로 국내 바이오를 외면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작년 국내 바이오·의료 부문 투자액은 1조1058억원으로 전년대비 34% 줄었고, 올 1분기엔 152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62% 감소했다.
한 신약개발 바이오사 대표도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전임상, 임상에 소요되는 비용 부담이 커졌다. 후속 투자 유치가 필요한 상황인데 과거 불신 탓인지 쉽지 않다"며 "다른 대표들도 만나면 투자 유치가 쉽지 않다고들 토로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현욱 현앤파트너스 대표는 "기술성 평가, IPO(기업공개), R&D(연구개발) 등에서 성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으면 올 하반기에도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에 따라 앞으로도 임상 중단 케이스는 더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올 하반기 주식시장에서 순환매매적인 손바뀜은 가능할 수 있지만 회사, 업종 자체가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2025년 될 기업, 안될 기업이 나눠지고 2030년이 되면 지금 바이오사의 70%가 사라지는 옥석가리기가 완성될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국내 바이오사들은 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현재 국내 비상장 바이오사들은 자금난, 상장 바이오사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은 맞다. 하지만 여전히 효율적인 R&D 계획을 갖고 성과를 내는 바이오사들은 투자 유치에 성공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며 "단순히 시장의 침체 때문에 투자 유치가 안 되는 것인지, 시장만 좋아지면 될 지에 대해 경영진과 투자자들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내의 경우 여전히 신약개발 바이오사에 대한 (투자)수요가 많이 있다고 보여진"며 "이러한 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본업이 신약개발이든, 진단이든, 헬스케어든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고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투자자들에 관심을 받는 것은 당연하고 시장 상황과도 무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바이오사들의 임상 중단, 회사 매각 등 결정에 대해서도 "어려운 시기일수록 R&D, 인력, 자금 등 모든 분야에서 새롭게 정립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어떤 경우든 자금을 확보해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지금도 병렬식으로 R&D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회사의 근본적인 개발 전략에 대해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플랫폼 기술이라면 1~2개 파이프라인으로 PoC(실증)를 입증한 뒤 다음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박미리 기자 mil0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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