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진 16강’ 최강 독일 상대로 전패·무득점 깨려는 벨호 배수진 “절대 우리를 쉽게 이기지 못하도록”
“남들은 ‘안 봐도 되는 경기’라고 하지만 작아도 일단 (산술적으로)희망이 있다.”
지난달 30일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모로코전에서 후반 43분 교체로 월드컵 데뷔전을 치른 2002년생 공격수 천가람(화천 KSPO)은 작은 가능성에 더 무게를 뒀다.
조별리그 2차전에서 1승을 목표로 했던 상대 모로코에 0-1로 진 한국은 2연패로 사실상 16강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천가람은 모로코전을 떠올리면서 “다들 초조하고 급한 마음이 느껴졌다. 충분히 우리 축구를 보여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독님이)희망을 잃지 말자고 하셨다. 그걸 쫓아가겠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걸 쫓는다고?’라고 생각하겠지만, 남은 기간 ‘정말 미쳐보자’고 다짐했다”며 독기를 품었다.
H조 최하위로 추락한 벨호의 16강 진출을 위한 ‘경우의 수’에는 일단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먼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5골 차 승리를 거둬야 한다. 그리고 모로코가 콜롬비아에 패해야 우리가 조 2위로 올라설 수 있다. 그러나 대표팀이 3일 마주할 상대는 FIFA 랭킹 2위인 우승후보 독일이다. 게다가 조별리그 2차전에서 콜롬비아에 1-2로 일격을 당한 독일도 자력으로 16강에 오르기 위해서는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라 파상공세가 예상된다. 객관적인 전력상 승리도 쉽지 않은 경기지만, 2경기에서 무득점이라는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준 대표팀은 ‘이변’을 다짐하며 최종전을 준비하고 있다.
1995년 제2회 스웨덴 여자월드컵부터 출전한 한국 여자축구가 이전까지 본선에 오른건 4차례, 조별리그를 통과한 최고 성적은 2015년 캐나다 대회 16강이다. 전체적으로 대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여자월드컵 본선 통산 전적은 1승1무10패, 2015년 프랑스와 16강전부터 현재 6연패 중이다. 지난 6경기에서는 1골(2019년 조별리그 노르웨이전 1-2 패)밖에 넣지 못했다. 독일전에 지면 2개 대회 연속 전패(6전전패), 골까지 넣지 못하면 사상 처음으로 조별리그 전패·무득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귀국길에 올라야 한다.
앞선 2경기에서 활약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베테랑 지소연(수원FC), 박은선(서울시청), 조소현(토트넘), 김정미(현대제철), 김혜리(현대제철) 등의 노련함과 투지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30대 중·후반에 들어선 이들은 이번 대회가 마지막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독일전을 앞두고 조소현은 “누가 봐도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면서도 “이 경기에서도 뭘 보여주지 못한다면 문제가 크다”고 독한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좀처럼 제자리 걸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를 향한 걱정과 책임감이 결의에 녹았다. 조소현은 “그나마 (다음 세대를 위한) 희망이라도 남기도록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절대 우리를 쉽게 이기지 못하게 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미드필더 이영주(마드리드 CFF)도 남자 대표팀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2패 뒤 독일을 2-0으로 꺾었던 ‘카잔의 기적’을 떠올리며 ‘브리스번의 기적’을 다짐했다. 부상 후유증으로 아직 그라운드를 밟지 못한 이영주는 출전 욕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전날 일본이 유럽의 강호 스페인을 4-0으로 꺾은 경기 결과와 함께 “더 희망이 생겼다. 일본이 했는데 우리가 못할까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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