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대화도?"…혹시 몰라 품은 '녹음기' 불신 넘어 공포로

최지은 기자 2023. 8. 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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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언, 성희롱 등 범죄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녹음기로 대화를 몰래 녹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흐름에 대해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화 당사자 간의 녹음의 경우 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녹음이 된다는 사실만으로 대화할 때 사람들이 위축될 수 있다"며 "(위법하지 않기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증거 수집이 문제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폐쇄회로(CC)TV, 녹음기 등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의 일상이 촘촘히 기록되는 사회가 꼭 바람직하다고 할 순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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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스1


폭언, 성희롱 등 범죄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녹음기로 대화를 몰래 녹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당사자간 대화 녹취가 합법이긴 하지만 녹취가 남용될 경우 사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웹툰 작가 주호민씨는 최근 자폐 성향을 가진 아들이 다니던 학교의 특수 교사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며 교사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주씨는 아동학대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아들의 가방에 전원이 켜진 녹음기를 넣어 등교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주씨가 이같이 수집한 녹취를 법정에 증거물로 제출한 것이 밝혀지며 처벌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씨의 행동이 적법한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녹취 내용을 자세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현행법상 대화 당사자 간 대화를 녹취한 경우는 위법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대화를 몰래 녹취한 것이라면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청취하거나 녹음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제3자가 불법으로 녹음했다 할지라도 해당 녹취를 증거물로 활용하는 것이 공익에 더 부합한다면 비교 이익형량의 원칙에 따라 법정에서 증거로 활용이 가능하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씨 사례의 경우 선생님이 주씨 자녀에게 직접 이야기 한 게 녹음된 건지, 다른 아이들에게 주씨 자녀와 관련해 이야기한 내용이 녹음된 건지 등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전자의 경우 대화 당사자 간 녹음으로 위법하지 않은 반면 후자의 경우 제3자 녹음으로 비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비록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도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할 경우 법정에서 증거물로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범죄 피해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녹음기를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1일 폭언, 성희롱 등에 시달리는 요양보호사를 보호하기 위해 신분증형 녹음기를 지급하는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신분증형 녹음기란 명찰 형태의 녹음 장비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문구가 적혀 있다. 이번 달부터 4개월간 경기 지역에서 시범 사업이 이뤄진다.

노동법률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6월 회사의 '해고 갑질'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재직 중 녹음기 사용'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직장갑질119는 "가슴에 품고 다녀야 할 것은 사직서가 아니라 녹음기"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이 같은 사회적 흐름에 대해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화 당사자 간의 녹음의 경우 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녹음이 된다는 사실만으로 대화할 때 사람들이 위축될 수 있다"며 "(위법하지 않기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증거 수집이 문제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폐쇄회로(CC)TV, 녹음기 등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의 일상이 촘촘히 기록되는 사회가 꼭 바람직하다고 할 순 없다"고 밝혔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화 당사자간 대화를 녹취하는 것이 합법일지라도 증거로는 제한적으로 사용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승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법령에 따르면 대화 당사자 간의 녹음은 합법이기 때문에 위법 수집 증거라는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며 "그러나 (녹취 내용이) 무분별하게 인정된다면 우리 사회는 불신의 사회를 넘어 공포의 사회로 변할 수 있다. 대화 당사자 간의 녹음도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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