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 붕괴' 후 멀리한 무량판 재부각…"준비 안된채 아파트에"
공사비 절감·내부 공간 활용 장점에 다시 주목…벽식 아파트 단점 보완
LH·건설업계 퇴직자가 감리…"벽식 구조 주로 다뤄 무량판 이해 떨어져"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김치연 기자 = 이번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의 중심에는 '무량판'이라는 구조가 있다.
무량판은 보 없이 기둥이 바로 슬래브(콘크리트 천장)를 지지하는 구조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돼 왔지만 국내에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오명으로 그동안 아파트 등의 주거 건물에는 사용을 꺼려 왔다.
그러다 2010년대 중반부터 공사비 절감과 내부 공간 활용이라는 무량판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지하 주차장을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허약한 우리 건설 시스템은 정밀한 설계·시공·감리가 뒤따라야 하는 이 구조를 떠받치지 못했고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
상품 붕괴 이후 주택엔 잘 적용 안해…백화점·상가 위주 채택
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파트는 기둥 없이 내력벽으로 천장을 받치는 벽식 구조로 돼 있다.
벽식 구조는 벽이 하중을 지탱하기 때문에 한 번 짓고 나면 내부 구조를 바꾸기 어렵고 바닥을 구성하는 콘크리트 층이 얇아 층간소음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기둥식은 주상복합아파트에 주로 적용하는 구조인데 수평 기둥인 '보'가 천장을 받치고 하중을 견딘다. 벽을 철거하고 자유롭게 내부 공간을 새로 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량판은 보 없이 기둥이 바로 슬래브(콘크리트 천장)를 지지하는 구조다. 기둥과 맞닿는 부분에 하중이 집중되기 때문에 슬래브가 뚫리는 것을 막으려면 기둥 주변에 철근(전단보강근)을 여러 겹 감아줘야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15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련 철근 누락 단지는 바로 이 철근을 빠뜨렸다.
무량판은 다른 나라에서는 널리 사용되는 구조다. 미국에선 아파트에 주로 이 구조를 적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1995년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 주택에 적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백화점 등 상가 건물이나 전시 시설들이 내부가 탁 트인 '오픈 스페이스'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무량판 구조를 써왔다.
공사비 절감·내부 공간 활용 장점 부각…무량판 아파트 증가
무량판 적용 아파트 단지는 2010년부터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내부 구조를 바꾸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건설 공사에선 터 파기에 상당한 비용이 드는데 무량판은 보를 두지 않아 층고를 낮출 수 있다. 즉, 땅을 덜 파도 된다. 암반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 특성상 비용 절약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또 지하주차장 내부를 좀 더 넓게 쓸 수 있어 주차 공간이 늘어나니 주민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
이한준 LH 사장은 "무량판은 벽식 구조에 비해 인건비가 적게 들고, 층고가 낮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2017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내부 리모델링이 어려운 벽식 아파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 몇 년 사이엔 주거동에도 무량판 구조를 적용하는 아파트가 늘었다.
세대와 세대 사이에는 내력벽을 두되, 세대 내에선 벽을 가변형으로 쓸 수 있도록 무량판을 채택하는 절충형이다.
지난해 1월 붕괴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가 이런 절충 구조를 적용된 곳이다.
2004년 입주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 삼성도 무량판 구조를 택했다. 이 아파트는 2013년 삼성동 헬기 추락사고 당시 헬기가 25층에 부딪혀 외벽이 일부 무너졌지만, 건물 구조에는 손상이 없었다.
그러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선 무량판 구조가 기존에 익숙한 벽식과는 다른 구조라는 점이 문제가 됐다.
설계·시공·감리 전문성 떨어지면 더 취약…"구조 이해도 떨어져"
무량판 구조는 설계나 시공상의 문제가 있으면 붕괴에 취약한데 이 구조에 대한 설계·시공·감리 전반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정부·LH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상가 등 고급 빌딩은 공사 단가가 높아 무량판 구조 설계·시공·감리가 비교적 꼼꼼하게 이뤄졌겠지만, 원가 절감을 최우선시하는 아파트에서 탈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검단 신축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의 사고조사위원장을 맡았던 홍건호 호서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건설 체계가 발전하고 있는 다양한 구조 공법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법 발전을 고려해 먼저 설계 단계부터 구조 전문가들이 더 많이 참여하는 길을 열어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건축법 23조는 건축물 설계는 건축사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돼 있는데, 여기에 구조기술사가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후의 보루'인 감리 역시 현행법상 건축사만 할 수 있게 돼 있고, 감리 담당자들이 무량판 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감리에 LH나 건설업계 퇴직자들이 가는 경우가 많다"며 "벽식 구조를 주로 다뤘던 이들이 새로운 구조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대부분 외국인이다 보니 기술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 역시 상존하고 있다.
최용화 한국건설안전협회 기술연구원장은 "무량판 구조는 정밀한 설계와 철저한 시공을 거쳐야 하는데, 현장에서 암묵적으로 간과하고 그냥 지나치는 관행이 쌓인 게 문제가 됐다"고 진단했다.
최 원장은 "건설 경기가 어렵다 보니 건설사들이 최저가를 선호해 사고 난 현장에 가보면 최저가로 입찰에 들어온 업체를 협력업체로 선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건설사들이 적정 단가를 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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