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 위에 흐트러진 각양각색 붕대 인간들

이한나 기자(azure@mk.co.kr) 2023. 8. 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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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신진미술인 지원전
통의동 아트스페이스보안3
이유성 개인전 ‘카우보이’
이유성, ‘약사여래입상’(2023), 석고붕대 위에 소민경의 드로잉, 나무 <서울시립미술관>
조선시대 집터였던 유구가 훤히 보이는 유리 바닥 위에 컵을 들고 물을 마시는 인체상이 서 있다. 실제 사람 몸에 석고붕대로 감아 만든 이유성(34)의 ‘약사여래입상’(2023)이다.

약사여래는 질병과 번뇌를 치유하는 부처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약그릇인 약합(藥盒)을 손에 들고 앉은 형태가 흔하다.

이유성 작가는 “약물을 과신하고 오용하는 현대사회에서 약사여래는 약을 대신 먹어주지 않을까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이 작품이 특별한 것은 소민경 작가가 이 조각 표면에 자유분방한 드로잉을 더한 협업이기 때문이다. 약이 몸 안에 들어와 퍼지면서 신체 표피 아래로 감각이 선명하게 자각되는 것을 ‘약의 여행’이라 상상하며 일종의 지도처럼 표현했다.

이유성, ‘약사여래입상’의 세부 <서울시립미술관>
조각가 이유성의 개인전 ‘카우보이’가 아트스페이스 보안3(종로구 효자로 33, 지하 2층)에서 8월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우선 재료부터 눈에 들어온다. 골절상을 입었을 때 사용하는 깁스 재료인 하얀 석고붕대를 작가의 지인 등 실존 인물 다섯 명의 몸에 감아 캐스팅한 껍데기로 만든 작품이 5점 있다. 이처럼 보호장벽이나 생물학적 결손을 복구하는 재료의 원래 의미를 품고 있으면서, 데스마스크(Death Mask)를 뜨는 과정과 유사한 작업에서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유리바닥에 유구가 훤히 드러나는 스페이스보안3에서 열리고 있는 이유성 개인전 전경 <이한나 기자>
석고붕대 조각들은 안과 밖, 앞면과 뒷면이 뒤바뀐 채로 봉합되거나 속이 비어있는 이미지로 겹쳐 서 있거나 쓰러져 있다. 코로나19 상황을 경험하고 난 작가는 주변 지인들을 신체를 뜨기 위해서 몸을 내주고 밀착한 경험이 더욱 소중했다고 한다. 작가는 인체조각을 위해 도나텔로의 다비드상, 비욘세의 퍼포먼스와 의상의 움직임, 바티칸박물관의 부서진 천사상의 등골, 불교에서 약사여래상의 효능 등을 탐구하고 그 요소들을 작품에 부분적으로 반영했다고 한다. 작가 본인 몸을 캐스팅해서 알루미늄 조각과 철사로 이은 작품 ‘달걀껍데기’도 누워 있다.

전시 제목인 ‘카우보이’는 개척자 남성을 뜻하고 마초(macho)의 전형인데 전시 작품들과 연결고리가 약하니 외려 아이러니하다.

이유성 개인전에서 작가 본임 몸을 캐스팅해서 만든 알루미늄 조각들로 구성된 작품‘달걀껍데기’ <이한나 기자>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의 ‘2023 신진미술인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린다. 2008년부터 매년 전시장 대관료와 작품재료비 등을 지원해왔고 2016년부터는 유망기획자까지 지원대상을 확대했다. 올해는 SeMA벙커에서 정여름·최나욱이, SeMA창고에서 홍세진, 손수민, 박미라, 주슬아, 이주연이 6월부터 10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사들의 비평과 연계해 잇따라 개인전을 연다.
이유성의 작품 신부(2023), 석고붕대, 철사, 털실, 나무, 184x44x40cm <이한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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