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빠진 아파트] 시공오류로 빠진 전단보강근… “고의로 누락했을 가능성도”
원자잿값 절감 효과는 비교적 적어… 하청업체가 누락했을 수도
시공사의 관리·감독 허술… “책임 못 피할 것”
최근 철근이 누락된 채로 시공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15곳이 줄줄이 적발됐다. 일각에서는 단순 누락이 아니라, 하청업체 등이 공사비를 아껴 이윤을 남기기 위해 고의적으로 철근을 누락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31일 국토교통부와 LH 등은 공사 과정에서 철근을 누락한 공공아파트 15곳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 중 10곳은 설계오류로, 3곳은 시공오류로 철근이 누락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2곳은 아직 전수조사 단계다.
이번에 문제가 된 부분은 ‘무량판 구조’에 들어가야 할 전단보강근이다. 무량판 구조는 말 그대로 대들보(梁)가 없다(無)는 의미로, 보 없이 기둥이 직접 슬래브(평판 구조물)를 지지하는 것이다. 무량판 구조는 기존에 사용하던 공법인 ‘라멘 구조’보다 비교적 시공 속도가 빠르고 공간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대신 기둥에 주 철근과 함께 전단보강근이 필수로 들어간다.
전단보강근 누락 이유는 설계오류와 시공오류로 나뉘어진다. 설계오류로 인한 철근 누락 원인은 설계를 담당한 건축사사무소의 과실이나 전문성 부족 등으로 비교적 간단하다. 시공사와 감리업체가 이를 잡아내지 못했다는 문제도 있지만, 1차적으로는 설계 담당의 책임이 크다. 이번 조사에서도 아예 전단보강근이 안 들어 간 곳도 나왔는데, 설계 오류에 해당했다.
문제는 시공오류로 철근이 누락된 경우다. 업계에서는 설계도면에 정상적으로 반영된 전단보강근이 시공 과정에서 빠진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철근 가격이 치솟아 공사비가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국내 시공능력평가순위 1위인 삼성물산의 정기보고서에 따르면 전단보강근으로 사용되는 SD400(고장력)철근 10~13mm의 톤당 가격은 2021년 66만7000원, 지난해 84만7000원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최근 한국응용통계연구원에 따르면 고장력철근의 가격은 톤당 100만원까지 치솟았다.
한 정비업계 견적 분야 관계자에 따르면 철근값은 전체 건축공사비에서 10% 내외로 책정된다. 이는 콘크리트(약 11% 내외)와 더불어 건축공사비 내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자재에 해당한다. 여기에 철근 가공이나 조립 등에 관한 비용도 추가되기 때문에 철근 가격이 오르면 시공사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LH의 사업을 주로 수주하는 중소형 건설사들이 조금이라도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전단보강근을 누락한 채 시공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전단보강근을 아껴 유의미한 원가 절감 효과를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시공사 차원에서 고의적으로 누락시켰을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하청업체인 전문건축업체의 경우 얘기가 다르다. 시공사는 통상 철근을 전문적으로 배근하는 업체에 하청을 맡긴다. 시공사가 하청업체에 원자잿값, 인건비, 가공비 등이 포함된 대금을 지불하면 해당 업체가 철근 구매부터 배근까지 하는 구조다. 이 때 해당 업체가 시공사가 지급한 대금보다 적은 양의 철근을 구매한 뒤 조금이라도 이윤을 남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시공사가 하청업체를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하지만, 이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사업비를 줄여야 하는 LH가 발주하는 사업의 경우 시공사에게 돌아가는 이윤은 5%도 되지 않는다. 시공사는 현장에 투입되는 인건비 등을 절감하기 위해 전문가 대신 시공 경험이 적은 인원을 파견하거나, 타 건설현장에 비해 적은 인력을 배치하기도 한다. 그만큼 관리·감독이 허술해져 하청업체의 고의적 철근 누락을 잡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건설 분야 전문가는 “그간 아파트에는 철근을 비교적 적게 사용하는 라멘구조가 적용됐기 때문에, 무량판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시공 담당자들이 철근을 누락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그러나 매출이 크지 않은 철근 배근 담당 업체가 이윤을 남기기 위해 고의적으로 전단보강근을 누락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밝혔다.
그는 “이 경우 1차적인 책임은 하청업체에 있지만, 이를 철저히 감독해야 하는 시공사가 소홀했다는 것은 공범인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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