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화이부동] 윤석열·김건희, 왜 직언을 탄압하는가
리투아니아 매체 “스타일 아이콘 김건희, 쇼핑 안 빼먹어”
민주당 “김건희, 호객 행위로 5개 매장서 예정 없던 쇼핑? 대통령실 입장 밝혀라”
박지원 “김건희 여사 명품점 ‘호객’ 행위? 닭 머리 가진 자도 이런 말 못해”
김건희 명품 쇼핑에 “문화 탐방… 하나의 외교” 국힘 쪽 망언
김건희 여사 쇼핑의 또 다른 논란, ‘과잉 경호’
진중권 “영부인 쇼핑, 막는 사람 없던 게 문제의 본질”
영부인 명품샵 방문 논란에, 빛바랜 세일즈 외교
우크라까지 다녀왔지만… 尹 지지율 4%P↓, 명품쇼핑 악재 된 듯
지난 7월14일에서 20일까지 일주일 사이에 나온 기사 제목들이다. 처음엔 이 명품 쇼핑 논란을 믿기 어려웠다. 인간이 어리석어도 그렇게까지 어리석을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의 ‘김건희 스토킹’이 워낙 심해서 나온 오보이거나 뭔가 크게 과장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간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언행을 해왔던 김건희는 이번에도 결국 일관성의 미덕을 보여주고 말았다.
약 1년 전 민주당 의원 우상호가 “저희 입장에서는 특별감찰관 없이 김건희 여사가 계속 사고 치는 게 더 재미있다”고 말했듯이,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 사건을 재미있게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그럴 순 없었던가 보다. 아니 분노하면서 속이 쓰렸던 지지자들도 꽤 있었던 것 같다. 작가 전여옥이 쓴 글에 달렸다는 다음 댓글은 그런 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건희 여사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4차원적 좌충우돌에 속이 타는 건 우파입니다. 모두 양평 건과 후쿠시마 건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 도대체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지금 뭐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리투아니아는 접전지인 벨라루스와 붙어 있어요. 우크라이나 저 비극적인 지역에 가서 명품이 눈에 들어옵니까? 정신이 나가서 눈이 돌아가지 않은 다음에야 명품숍을 들락거릴 생각을 어떻게 합니까. 구경만 했다고요? 차라리 꼭 필요한 게 있어서 사러 갔다고 하는 편이 낫죠. 정신머리가 어떻게 된 거예요? … ‘내돈내산’(내 돈 내고 내가 산다)? 좋아하십니다. 해외순방 시 여사님한테 들어가는 하루 일비가 얼마인지 아세요? 16명의 수행원은 여사님이 월급 주나요? 왕복항공료 본인이 내셨어요? 공무원들은 해외출장 가는 길에 자기 돈으로 1박을 더 연장해도 징계를 받습니다. 도대체 주변에 따라다니는 수행원들은 뭐 하는 사람들입니까. 정신 나간 사람 하나 케어 못하고.”
국민의힘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약 19개월 전인 2021년 12월26일 김건희가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발표한 입장문 한 대목이라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김건희를 이해하는 게 어렵다 못해 곤혹스럽다는 생각을 했음직하다. 그날 김건희는 울먹이면서 “남편이 저 때문에 너무 어려운 입장이 돼 정말 괴롭습니다.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 때문에 제 남편이 비난받는 현실에 가슴이 무너진다”며 “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겠다”고 했다. 그는 “잘못한 저 김건희를 욕하더라도 너무나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온 남편에 대한 마음만큼은 거두지 말아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말로 사과를 마쳤다.
두 사람 말릴 주변인 없는 게 본질
이렇게까지 눈물로 호소하는데 믿어야지 어쩌겠는가. 자신이 대통령 부인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저지른 과거 다른 사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말마따나 “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한다면, 윤석열에 대한 평가는 별도로 하겠다는 유권자들이 많았을 게다.
문제는 2022년 3월9일 대선에서 승리해 윤석열 정권이 출범한 5월10일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김건희는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고, 윤석열은 배우자 전담조직인 제2부속실을 폐지했다. 이 약속의 이행 여부를 두고 내내 논란이 빚어졌고, 이와 더불어 김건희의 공사(公私) 구분 의식이 박약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곤 했다.
취임 100일이 채 지나지 않은 8월2일 김건희가 운영했던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이자,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선거대책본부 네트워크본부의 고문이었던 ‘건진법사’ 전모씨가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을 시도했단 의혹이 불거졌다. 또 같은 날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김건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가 주최한 전시회의 후원사로 이름을 올린 회사가 대통령 관저 공사를 수주한 사실도 드러났다. 8월 중하순엔 3개월 전 대통령 취임식의 초청 인사 명단이 논란이 되었다. 그 명단엔 대통령 관저 리모델링사 대표, 윤석열 장모·김건희 수사 경찰관 등이 포함되었으니 영 이상하지 않은가. “‘여사님 초청’ 명단은 비밀?… 오락가락 꼬이는 취임식 해명”이라는 한겨레 기사(8월30일자) 제목이 말해주듯이,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는 ‘여사님 초청’ 명단을 감추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 1년간 김건희는 큰 사건은 없었을망정 대부분 이런저런 부정적인 의혹과 가십의 주인공으로 소비되었다. 민주당의 ‘김건희 스토킹’에 그 원인을 돌릴 수도 있겠지만 김건희가 이제 더 이상 “제가 없어져도 좋아”라고 울먹이던 시절의 김건희가 아니라는 점, 그게 가장 큰 이유인 것처럼 보였다. 아니 어쩌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김건희가 뉴스 시장에서 잘 팔려나가는 상품이 되었다는 시장 논리로 설명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직언 저주는 ‘권력의 패망’ 공식
검색 빈도를 비교해주는 ‘네이버 트렌드’에 따르면, 대통령 취임일인 5월10일부터 6월16일까지 38일간 검색 빈도를 합하면 ‘김건희’가 ‘윤석열’보다 28% 정도 더 많았다. 추석 연휴기간인 9월9~11일 ‘김건희’의 평균 검색량은 73.3으로 ‘이재명’(38.3)의 두 배에 육박했다. 김건희 입장에선 결코 반길 일은 아니었다. 그의 이름이 많이 거론될수록 윤석열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취임 첫 주 지지율은 52%(부정 37%)였지만, 그는 취임 한 달 만에 지지율이 떨어진 첫 대통령이 되었고 6월 하순엔 ‘부정’(47.7%)이 ‘긍정’(46.6%)을 앞지른 데드크로스를 거쳐, 취임 두 달 만인 7월 초순에 30%대로 추락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윤석열이 “나를 안 만났으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는데 나를 만나서 굉장히 고생했다”며 김건희를 향한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을 갖고 있고 그걸 가끔 표현한다는 건 좋거니와 아름다운 일이다. 단, 사인(私人)일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그가 사인의 정과 의리에만 충실하고자 했다면 아예 대통령 출마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사적인 정과 의리를 앞세워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김건희를 ‘암묵적 금기어’로 만들어 성역시하던 관행을 계속 유지하겠다면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가?
애주가인 윤석열이 술에 흔들릴 수 있듯이 명품 애호가인 김건희가 명품에 흔들릴 수 있다. 측근은 두었다가 무엇에 쓰는가? 김건희·윤석열 부부는 “그러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을 옆에 두고 있는가? 그간 보여준 것으로 봐선 그들 곁엔 그런 사람이 없다. 이게 바로 윤석열 정권의 본질일 수 있다. 대통령 부부에게 직언을 할 수 없는, 아니 직언을 했다간 무서운 탄압이 가해지는, 그래서 직언을 저주하는, 그러다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는 ‘권력의 패망 공식’을 너무나도 실감 나게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윤 정권은 국민의힘 지지자들만의 정권이 아니다. 야권엔 윤석열 퇴진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들이 국가와 국민보다는 당파적 이익을 더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윤 정권 실패는 윤석열 개인이나 국민의힘이라는 집단의 실패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문재인 정권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가 미래를 위협할 정도로 ‘증오·혐오 정치’가 창궐한 건 박근혜 정권의 실패 후유증이다. 윤석열·김건희가 그런 심각한 문제의식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다면, 직언을 탄압하지 말라. 자신의 성격을 극한으로 발휘해 대통령 자리엔 오를 수 있었을망정 그를 ‘성공 공식’으로 삼아 대통령직마저 수행하겠다고 들면 그건 재앙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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