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 가장 완벽한 팀”…‘나데시코 재팬’의 정상을 향한 질주

박강수 2023. 8. 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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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여자 월드컵]조별리그 3전 전승 11득점·무실점
12년 만의 월드컵 정상 탈환 포부
일본 여자 축구대표팀의 공격수 우에키 리코(오른쪽)가 7월31일(한국시각) 뉴질랜드 웰링턴 리저널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월드컵 조별리그 C조 3차전 스페인과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팀 동료와 포옹하고 있다. 웰링턴/신화 연합뉴스

일본은 자국 여자 축구대표팀을 ‘나데시코 재팬’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나데시코’(なでしこ)는 패랭이꽃을 뜻하는 단어로, 과거 일본 사회가 이상으로 여겼던 여성성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조신, 순결, 헌신, 청순, 가련과 같은 특징들이 그 여성성의 요체를 이룬다. 기본적으로 성차별적인 함의가 스며 있는 표현이지만, 어디까지나 단어가 그렇다는 말이다. 이미 12년 전부터 나데시코 재팬은 이 별칭의 의미를 재창조해왔다.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 출전한 일본의 질주가 찬란하다. C조에 속한 일본은 조별리그에서 잠비아(5-0), 코스타리카(2-0), 스페인(4-0)을 차례로 완파하고 3승으로 16강에 올랐다. 11득점 최다 득점에 무실점. 지난 여덟 번의 월드컵에 개근했던 일본 여자축구 역사에서도 가장 완벽한 페이스다. 결과뿐 아니라 경기 내용도 마찬가지다. 빼어난 조직력에 유연한 전술 대응력으로 일단 기선을 잡고 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지난달 31일(한국시각) 뉴질랜드 웰링턴 리저널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전은 그 백미였다. 이미 16강행을 결정지은 두 팀 사이 1위 결정전을 바라보는 세간의 전망은 스페인의 근소 우위였다. 피파 랭킹도 스페인(6위)이 일본(11위)보다 다섯 계단 높았고, 지난해 11월 맞대결에서 1-0 승리를 거둔 전력도 있었다. 이른바 ‘티키타카’와 ‘스시타카’(일본식 티키타카)가 정면으로 붙으면 원조가 한 수 위일 것이라는 단견은 그러나, 킥오프 12분 만에 박살났다.

일본은 전반전에만 세 골을 몰아치며 사실상 경기를 끝냈다. 일본은 첫 45분 동안 스페인 진영의 페널티 박스 안에 세 번 진입했고, 세 번 모두 골로 연결했다. 이날 일본의 볼 점유율은 21%(스페인 68%). 여자월드컵에서 측정을 시작한 2011년 이후 최저 점유율 승리였다. 일본은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에서도 남자팀이 조별리그 3차전 스페인을 상대로 역사상 최저 점유율(18%) 승리(2-1)를 거둔 바 있다. 1년 새 무적함대를 월드컵에서 두 번 격침한 것이다.

일본은 스페인전에서 슈팅 숫자 8-10으로 대등하게 맞섰고 유효슛에서는 6-2로 크게 앞섰다. 앞서 잠비아전에서는 26-0, 코스타리카전에서는 25-6으로 압도적인 슈팅 우위를 점했고, 11골 중 9골이 유기적인 빌드업으로 빚어낸 필드골이었다. 스포츠전문매체 ‘디애슬레틱’은 “일본만큼 자신들의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팀은 없다”라며 전술 완성도를 극찬했고, 전 잉글랜드 국가대표 에니올라 알루코는 “모든 면에서 이번 월드컵 최고의 팀”이라고 추켜세웠다.

일본의 포부는 12년 만의 정상 탈환이다. 일본은 2011년 독일 대회에서 ‘디펜딩챔피언’ 독일과 우승 후보 미국 등 강호를 줄줄이 꺾고 월드컵 우승컵을 들었다. 당연히 일본의 여자 축구사는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여자축구 인프라가 확장됐고 월드컵 드라마를 지켜본 유망한 인재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현 대표팀 에이스 하세가와 유이(맨체스터 시티), 이번 대회 득점 선두 미야자와 히나타(미나비 센다이) 등 다수가 그 시절 꿈을 키운 월드컵 키즈다.

일본 여자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스페인전 승리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웰링턴/EPA 연합뉴스

2011년 우승은 그해 봄 동일본 대지진으로 실의에 빠졌던 일본 사회를 치유하는 역할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승 팀 멤버로 활약했던 마루야마 카리나는 “나데시코는 공동체라는 의미다. 이를 통해 모두가 강해진다”라고 말했고, 그와 함께 뛰었던 미야마 아야 역시 “나데시코는 (일본인) 모두가 알고, 또 모두에게 사랑받는 별명”이라고 했다. 여자축구 부흥을 위한 브랜딩의 의미에서 채택됐던 낡은 단어는 이제 사회 통합과 강력한 월드컵 우승 후보를 아우르는 고유명사가 됐다.

나데시코 재팬은 5일 노르웨이와 16강전에서 우승 도전을 이어간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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