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침해가 늘어났다?
해외서도 교권침해 심각…학부모 등 악성 민원 시달려
'인권교육 받은 학생일수록 교사 권위·교육권 존중' 실증 연구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우혜림 인턴기자 =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과 학생, 학부모의 교사 폭행 사건들로 인해 공분을 사고 있는 교권침해 문제가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찬반 논란으로 번진 모습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교원 간담회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급격하게 추락했으며 공교육이 붕괴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수업 중 잠자는 학생을 깨우는 것이 곤란하고 학생 간 사소한 다툼 해결도 나서기 어려워지는 등 교사의 적극적 생활지도가 크게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빈발하는 교권침해 사건과 교사 권위 하락의 주된 원인이 10여년 전부터 일부 시·도에서 제정·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에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체벌을 금지하고 사생활과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렇다면 실제로 학생인권조례를 교권침해 사건들과 공교육 붕괴의 원인으로 볼 수 있을까?
사실 교권 침해 사례는 그 이전부터 자녀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지속적으로 사회 문제가 됐다.
과거 언론 보도를 검색해 보면 1970년대부터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사건이 사회 주목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0년 '치맛바람'을 소재로 한 동화를 자신의 얘기로 오해한 학부모가 저자인 국민학교(초등학교) 교사를 수업 중에 불러내 폭행한 사건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가 하면, 1975년 국민학생 딸의 성적을 낮게 줬다는 이유로 교내에서 담임교사의 머리채를 잡고 폭행한 학부모 사건이 보도됐다. 당시도 교권 경시 풍조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일부 특권층의 일탈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공교육 교권 위기의 사회적 배경과 양상'(박상은 2020년)을 비롯한 학계 논문들을 살펴보면 교육개혁이 단행된 1990년대부터 교권의 위기가 가속화됐음을 알 수 있다. 1994년 여고생 딸을 체벌한 데 불만을 품은 학부모가 학교로 찾아가 수업 중인 교사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린 사건이 물의를 일으켰다. 1998년에는 학생을 체벌한 여고교사가 학생의 신고로 수업 중 연행되자 국무총리가 재발 방지 대책을 지시하기도 했다. 2014년 논문 '기본권으로서 교권에 대한 논의'(김언순)에선 1990년대 '교실 붕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면서 교권추락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들어선 교육개혁에 따른 갈등과 대립이 심화하면서 교사에 대한 욕설, 폭행, 성추행 등 다양한 교권침해 사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2004년 학생 체벌로 경찰조사를 받던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2006년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들 앞에 무릎을 꿇은 사건이 알려지자 "인내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섰다"는 교육부총리의 발언이 나왔다.
교권침해 사건의 증가세는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연도별 교권침해 현황 자료에 따르면 1970년대는 연평균 10건에 그쳤던 교권침해 건수가 1990년대 들어 연평균 50건 이상으로 5배로 늘고, 2000년대는 연평균 160건, 2010년대는 430건으로 증가했다.
학계에서는 이 같은 교권침해 사건의 증가와 교권의 추락이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기치로 내건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을 계기로 가속화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1995년 5월 31일 발표된 이 교육개혁 방안은 국가 중심의 권위주의적인 기존 공교육에 경쟁 위주의 시장의 원리를 도입한 것이 골자다. 기존의 '교육법'을 지금의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체제로 개편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를 교사와 동등한 교육당사자로 규정해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수요자로 거듭나고 교사는 수요자의 필요와 요구에 맞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공급자로 자리매김했다. 5·31 교육개혁은 교육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고 학교장 중심의 수직적인 교육행정을 민주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경쟁과 효율을 앞세움으로써 전인교육을 목표로 해야 할 공교육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학교운영에 대한 학부모의 지나친 간섭을 불러와 교권을 약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논문 '관계적권리에서 본 교권의 재검토'(하윤수)에선 5·31 교육개혁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와 요구가 확대됐지만 교사는 책임과 의무만 늘리고 달라진 교육환경에서 학생을 지도할 법적 권한을 주지 않는 제도상의 불균형이 교권침해로 귀결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00년부터 교권침해를 막기 위한 '교사 안전망' 구축에 나선 정부는 2006년 안전망 강화 대책에 이어 2012년 '교권보호 종합대책'을 내놨다. 1991년 제정한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교육지위법)을 2016년 대대적으로 개정해 각종 교권 보호 방안을 마련했으나 여전히 강제할 수단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2019년 교원지위법을 다시 개정해 교권보호위원회에서 교권침해 학생에게 봉사, 특별교육·심리치료,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 등의 조치를 하고, 특별교육·심리치료에 학부모 참여를 강제할 수 있게 했다. 이어 2022년 12월 초·중등교육법 개정으로 일선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처음 법제화하면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지도할 명확한 법적 근거를 비로소 갖게 됐다. 정부는 이번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건으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아동학대 면책권 부여 등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강화하기 위한 추가적인 법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교권침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참여하는 교육정책네트워크의 '2022년 해외교육동향' 보고서 등을 보면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도 교권침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대책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강력한 교권으로 유명한 독일도 2020년 교육보육협회 조사 결과 지난 5년간 교사에 대한 폭력이 모든 영역에서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영국 여성교원노조의 2019년 설문조사 결과 교사의 24%가 학생으로부터 매주 물리적 폭력에 시달리며 교직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네덜란드 교육협회는 2005년 초등학교 교사 4명 중 1명이 학부모로부터 심한 욕설이나 폭력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2000년대 후반 홍콩에선 교사에게 악성 민원을 일삼는 학부모가 '괴물 부모'로 불리며 사회 문제가 됐다. 지난 5월 열린 '교육활동 보호 국회포럼' 발표자료에 소개된 당시 홍콩 현지 언론의 분석을 보면 ▲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사회적 가치의 변화 ▲ 부모들의 교육 수준과 고임금 직업의 증가 ▲ 교사에 대한 존경심 부족과 교육 불신 증가 ▲ 한 자녀 가족의 증가와 부모들의 지나친 걱정 ▲ 극단적 개인주의와 소비주의 ▲ 학력·능력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교권침해의 사회적 배경으로 거론됐다.
공교육의 위기가 교육을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삼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05년 논문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과 교육 공공성 위기'(장일순)에선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근간으로 자리 잡은 5·31 교육개혁을 시장경제의 경쟁 원리를 교육에 도입할 것을 제안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에서 비롯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일환으로 파악하면서, 1980년대 미국, 영국을 필두로 세계 각국에 도입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공교육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논했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10월 경기도를 시작으로 광주(2012년 1월), 서울(2012년 1월), 전북(2013년 7월)에서 시행됐다. 최근 충남(2020년 7월), 제주(2021년 1월), 인천(2021년 9월)도 가세해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7개 시도에서 현재 시행 중이다.
교총의 통계로 보면 1990년대부터 꾸준히 늘어나던 교권침해 건수는 2016년(572건)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뒤 400~500건대에 머물러 있다.
교육부는 2000년대 후반부터 교총과 별도로 시도별 교권침해 현황을 집계해 왔는데 국회에 제출된 통계치를 취합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교권침해 건수는 2009년 1천570건에서 2010년 2천226건(전년 대비 증가율 42%), 2011년 4천801건(116%), 2012년 7천971건(66%)으로 늘어나다 2013년 5천562건(-30%), 2014년 4천9건(-28%), 2015년 3천458건(-14%), 2016년 2천616건(-24%), 2017년 2천566건(-2%), 2018년 2천454건(-4%), 2019년 2천662건(8.5%)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코로나19 사태로 등교가 중단된 2020년 1천197건(-55%)까지 줄었다 2021년 2천269건(90%), 2022년 3천35건(34%)으로 반등했다.
[표] 교육부 집계 시도별 교권침해 현황
[자료=교육부가 국회 제출한 '시도별 교권침해 현황 자료' 취합]
이에 비춰보면 학생인권조례 시행으로 교권이 급격히 추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교육부 통계로 보면 인구 비중이 큰 경기와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2010~12년 전체 교권침해 건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지만, 시도별 추이를 살펴보면 학생인권조례와 직접 연관짓기는 어려워 보인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았던 부산, 대구, 인천, 대전, 울산, 강원, 충북, 전남, 경북, 경남, 제주에서도 2011~2012년 교권침해가 크게 늘었다 감소하는 등 전국적으로 유사한 흐름이 나타났다. 전북은 학생인권조례가 제정·시행된 2013년부터 교권침해 건수가 오히려 감소했다.
이는 교권침해 건수가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라 2011년 3월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된 정부의 체벌금지 정책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언론보도에선 체벌금지 때문에 교권침해 사례가 급증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2013년 논문 '학생인권과 교권의 관계 연구'(정기원)도 교권침해 증가가 학생인권조례보다 직접체벌 금지와 연결될 개연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교사의 체벌은 과거 수업을 방해하거나 교사나 다른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불량 학생들을 제재하는 수단이 돼왔다. 이 때문에 대안 없는 체벌금지는 교권 약화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컸다. 일부 학생은 체벌금지를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
체벌금지 직후 교권침해 사례의 증가는 우려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교육부 통계는 우려와 달리 일시적 현상에 그쳤음을 보여준다.
체벌금지는 학생인권조례에 포함돼 있지만 시행 과정이 다르고 정부의 입장도 차이가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건 10여년 전이지만 학생인권 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표면화된 건 이보다 훨씬 앞서 1991년 우리 정부가 18세 미만 아동(어린이·청소년)의 기본권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법인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서명하면서다. 2017년 논문 '토픽모델링을 활용한 학생인권조례의 사회적 이슈 분석'(박현정 등) 등에 따르면 이후 야간 강제자율학습 반대 소송(1995년), 두발 자유화를 위한 학생인권보장 서명운동(2000년),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학생인권 침해 논란(2001년), 사립학교 종교자유 논란(2004년) 등으로 학생인권 보호에 대한 요구가 지속해서 확산됐으나 학교의 자발적 노력은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일부 진보 성향 교육감 주도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서 정치 쟁점화됐다.
학생인권의 핵심인 체벌금지 문제도 일찍 부각됐다. 정부는 1996년 체벌금지 방침을 밝혔다가 반발이 일자 1999년 제한적인 체벌 허용으로 물러서면서 논란이 지속됐다. 그러다 2010년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학생을 가혹하게 폭행한 '오장풍 교사 사건'으로 체벌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그해 11월 서울시교육청 주도로 서울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체벌이 금지됐다. 뒤이어 2011년 3월 정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31조)을 개정해 도구나 신체 등을 이용한 체벌을 전면 금지함으로써 체벌금지가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당초 정부는 학칙에 근거한 간접체벌은 허용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체벌금지는 사회문화로 자리 잡았다. 2021년 민법 개정으로 부모의 자녀 체벌 근거로 여겨진 조항이 삭제되면서 학교와 가정 내 체벌이 모두 금지됐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교권침해의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하면서도 체벌 부활로는 갈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체벌이 더 이상 학생 통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데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듯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체벌을 뺀 나머지 학생인권에 대해서는 과거 체벌금지 반대 주장처럼 교권침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일부 학생이 학생인권을 오해하거나 학생인권을 존중하는 학내 분위기를 악용할 소지는 있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대립적인 게 아니라 보완적 관계라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실증 연구도 있다.
2014년 논문 '학생의 인권보장 정도와 교권 존중과의 관련성'(구정화)에 따르면 광주 지역 초·중·고등학생 1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질문지 조사를 통해 인권보장 수준이 높고 인권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일수록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교사의 권위 인정과 교육권 존중에 적극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학생들이 인권을 더 많이 누리거나 더 많이 알게 된다고 해서 교사의 권위를 무시하거나 교육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뒷받침한다. 이 논문은 학생들이 교사의 정상적인 교육에 대해 '내 권리를 침해했다'고 오인하지 않도록 실제적인 인권 교육을 더욱 보장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전제상 공주교육대학교 교수는 '교육활동 보호 국회포럼' 주제발표에서 "교사들이 교육활동 중에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 학생들 역시 교사들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표] 교육부 집계 연도별 교권침해 현황
[자료=교육부가 국회 제출한 연도별 교권침해 현황 자료 취합]
[표] 교총 집계 연도별 교권침해 현황
[자료=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연도별 교권침해 현황 자료 취합]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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