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직원 줄퇴사, 640조원 경제손실... 폭염이 바꾼 美 경제지도

정미하 기자 2023. 8. 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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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연일 40도가 넘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농업과 건설 근로자는 물론 공장, 창고,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등 육체 노동자의 생산성이 떨어져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산업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31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는 “기후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 중에서도 폭염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이 큰 비용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며 “기온이 섭씨 32도를 넘어서면 생산성이 32% 떨어지고, 38도를 넘어서면 생산성이 70% 떨어진다”고 보도했다.

7월 30일(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비치에 설치된 온도계가 섭씨 40도(화씨 약 105도)로 표시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각종 연구에 따르면 오는 2050년, 미국 경제가 폭염으로 입을 손실은 5000억달러(약 638조7500억원)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과 같은 폭염이 없었던 지난 2021년, 미국에선 고온으로 인해 농업과 제조, 서비스 부문 등에서 25억 시간 이상의 노동력이 손실된 것으로 추산된 바 있다. 지난 2020년 더위로 인한 경제 손실은 이미 1000억달러(약 128조원)이었다.

미국에 지어진 공장 대부분은 수십 년 전, 이상 기후가 발생하기 전 기준으로 지어졌다. 이 때문에 일부 공장에는 에어컨마저 설치돼 있지 않다. 미국 내 스쿨버스를 공급하는 IC버스 공장은 현재 1900만달러(약 243억원)를 들여 에어컨 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 공장 바닥 온도가 37도까지 오르자 내놓은 조치다. IC버스의 관리자는 “에어컨 비용만 시간당 183달러(약 23만원), 연간 27만5000~50만달러(약 3억5260만~약 6410만원)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에어컨 시스템이 직원 생산성을 향상시킬 것이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폭염이 미국 자동차 공장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일주일에 6일 이상 32도 이상이 지속될 경우 평균 8%의 생산성이 감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자들은 폭염에 대응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아마존 배송 운전기사와 창고 노동자들 84명은 지난 6월 말부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이들의 주요 요구 사항 중 하나가 폭염 속 노동 환경 개선이다. 아마존의 운전기사들은 섭씨 40도를 넘는 경우에도 하루 400건 이상의 배송 업무를 처리하도록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메트로 지역의 스코츠데일에서 27일 연속 43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자 건설 노동자가 찬물을 마시고 있다. / 로이터

지난달 미국 최대 배송업체 UPS 소속 배송 기사들은 사측과 파업 협상을 벌였다. 파업 돌입 직전 노사가 극적 타결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도 폭염 관련 대응안이 담겨있다. UPS 사측은 근무 환경 개선안에 배송 차량 에어컨 시스템 설치 의무를 포함했다.

미국 캔자스·미주리·오클라호마의 육류 포장 및 식품 가공 근로자 노조 대표인 마틴 로사스는 NYT에 “무더운 날씨로 인해 식품이 부패할 위험이 있다”며 “날씨가 극도로 더워 안전 안경에 김이 서리면서 시야가 나빠지고, 지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볼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로사스에 따르면 육류 포장 회사 ‘도지 시티 내셔널 비프’ 공장 근로자 약 2500명 중 200명이 5월 이후 더위로 인해 퇴사했다. 평소보다 퇴사율이 약 10% 높은 수준이다.

맥도날드 직원 일부도 더위를 이유로 퇴사를 결정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맥도날드 주방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지만, 무더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맥도날드에서 20년 동안 근무한 마리아 오드리게즈는 “매장 곳곳에 에어컨이 있지만, 주방 온도는 38도를 넘는다”며 “예전에도 더웠지만, 올해 여름만큼은 아니었다. 언제라도 기절할 것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근로자들은 폭염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들을 보호하는 국가 규정은 없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산업안전보건청이 근로자를 폭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첫 번째 규칙을 제안할 것이라고 발표한 상태다. NYT는 “2년이 지난 지금도 바이든 행정부는 관련 규정의 초안조차 발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미국 내 7개 주에서는 폭염과 관련한 노동 보호 제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이를 철회하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NYT는 “텍사스주는 더위와 관련한 생산성 손실 측면에서 모든 주 가운데 선두를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텍사스 주지사는 건설 노동자를 위한 휴식 의무화 규칙을 삭제하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지적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환경 및 노동 경제학자인 R.지성 박은 “인간은 온도에 매우 민감하며, 열에 노출되면 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된다”며 “폭염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방식으로 경제의 톱니바퀴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노동부 차관보를 지낸 데이비드 마이클스 조지워싱턴대 공중보건학 교수는 “기후 변화로 인해 비용이 늘어날 것이며, 해당 비용은 고용주와 소비자에게 전달될 것”이라며 “하지만 노동자들이 고통받지 않으려면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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