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연구소] 로마인이 냉방 장치로 쓴 그늘, 기후변화 맞은 현대 도시에 다시 필요한 이유

장윤서 기자 2023. 8. 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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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그늘은 더운 도시 위한 필수 솔루션” 주목
지난 7월22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로마 시내의 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그늘진 곳을 걷고 있다. 이탈리아 전역의 많은 도시에서 섭씨 40도에 가까운 기온을 기록하는 폭염이 이탈리아에 도달했다. /AP=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LA) 인근 도시 버뱅크의 한 주택 수영장에 야생 곰이 나타났다. 30도가 넘는 무더위를 피해 수영장에 뛰어든 곰 때문에 현지 경찰이 출동한 것이다. 한 달째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미국에서는 열대 식물인 선인장까지 말라죽고 있다.

최근 미국은 전국적으로 폭염으로 고통받고 있다. 미 전역에서 38~43도의 뜨거운 공기가 머무르는 ‘열돔 현상’이 계속되면서 전체 인구 3억4000만명의 절반이 넘은 1억7500만명이 열돔 영향권에 놓이게 됐다.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에 걸쳐있는 협곡이자 지상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 중 하나로 꼽히는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는 이달 연일 5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며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시는 43.3도를 찍으며 역대 최장인 30일 연속 40도를 웃돌았다.

이 가운데 가장 뜨거운 도시 중 하나인 피닉스는 최근 도시 곳곳에 폭염에 대비한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태양빛을 잘 반사하고 열흡수를 줄이는 ‘쿨코팅’ 기술로 도로와 지붕을 덮는 기술과 함께 도입되는 한편 버스 정류장을 비롯해 공공 구역에 그늘 구조물을 세우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극심한 무더위를 버텨내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도시 곳곳에 ‘그늘막’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상기후로 유례가 없는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지만, 도시에서 폭염 저감 역할을 하는 ‘그늘막’은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내 버스정류장의 4분의 1만 그늘 대피소가 설치돼 있다.

서울 전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진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마련된 그늘막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다. /연합뉴스

켈리 터너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도시계획부 부교수와 아리안 미델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미술·미디어 부교수 등은 26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폭염으로부터 시민들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그늘막’을 설치하는 것인데 이러한 중요성이 종종 도시 계획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다”면서 “지자체는 도시 계획을 세울 때 그늘막 강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늘을 통해 햇빛 노출을 자제하는 것은 실외에서 폭염으로 인한 건강 악화를 막는 가장 효율적이고 비용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터너 부교수는 “대부분 도시의 포장 도로, 버스정류장, 직장, 학교 놀이 공간에 그늘이 없다”면서 “열 부담을 줄이고 야외에서 인간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그늘이 부족한 도시는 일명 ‘그늘 사막’은 열로 인한 건강 불균형을 초래한다”고 꼬집었다.

그늘은 들끓는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주요 대안책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미국국립암연구소는 미국 성인의 거의 40%가 야외에서 그늘을 찾는다고 보고 있다. 그늘은 폭염과 같은 환경에서 인간의 열 쾌적성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인 자외선·가시광선 등 태양의 단파 복사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때문에 냉각에 효과적이다. 뜨거운 표면과 표면에서 방출되는 열로부터 신체를 보호한다. 그늘은 공기 온도, 대기 습도, 풍속 및 총 복사 노출을 줄여 인간의 총 환경적 열 부담을 줄일 있다.

미국, 헝가리,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포함해 여러 국가의 기후학자들이 2019년부터 발표한 기온과 그늘의 효과에 대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건조한 온·열대 지방은 그늘막을 설치할 경우 햇빛에 노출된 인근의 다른 지역보다 섭씨 20도에서 40도까지 열 차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대기온도가 35도에 육박한 날 야외에서 햇빛을 쬔 사람이 체감한 온도는 80도쯤 된다. 그늘막을 설치하면 이러한 체감 온도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수세기 동안 그늘은 도시 디자인의 필수 고려사항었다. 미델 부교수는 “로마인들은 그늘이 있는 안뜰과 냉방 효과를 가진 분수가 있는 집을 설계했다”면서 “더운 지역의 건물은 일반적으로 안뜰과 돌출부를 통합했고 일부 도시에서는 거리가 태양을 차단하도록 방향이 지정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반면 현대사회에서는 에어컨 등장, 값싼 전기료, (보행보다는) 자동차 의존도 증가로 그늘막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면서 “그늘의 분포와 범위, 시간 경과에 따른 변화, 그늘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명시적으로 관리하는 도시가 없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각 시의 당국이 폭염 등으로 인한 공중 보건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그늘을 적절하게 계획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의견이다. 도시에는 열을 가두는 아스팔트 설치로 인해 흙이 있는 시골 지역보다 더 덥다. 이에 아테네, 뉴델리, 피닉스, 로스앤젤레스 등 일부 도시는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지 않고 빠르게 다시 방사하는 재료를 포함하거나 흰색으로 칠한 ‘시원한 루프(지붕)’와 도로 표면을 도입하고 있다.

이에 대해 터너 부교수는 “이러한 조치는 표면 온도를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지만 늦은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반사되는 추가 에너지는 기온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수준이다. 오히려 인체가 겪는 열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면서 “도시 계획을 할 때 대기 온도나 인프라 시설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시민이 겪는 체감온도에 근거한 그늘 시설도 설치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1990년대부터 미국과 호주 등 공중보건 당국은 자외선으로 인한 피부암을 예방하기 위한 계획에 음영 감사를 통합할 것을 요구해 왔다. 이에 캐나다 토론토시, 호주의 퀸즐랜드주 및 뉴질랜드 전체를 포함해 소수의 공중 보건 단체가 그늘 계획 및 디자인에 대한 지침을 발표다. 예를 들어 호주 환경 건강 연구소(Australian Institute of Environmental Health)는 2007년부터 ‘그늘 만들기 정책’을 마련해 자전거 도로, 공원·놀이터·야외 식사 공간에 나무와 지붕 및 그늘 구조물을 사용해 그늘을 제공할 것을 권장한다.

통상 그늘막이라고 하면 ‘나무 심기’ 전략을 떠올리기 쉽다. 미국 피닉스는 2010년 처음으로 열에 취약한 지역 사회를 대상으로 나무 캐노피를 25% 증가시키는 안을 내놓은 최초의 도시다. 미국 주요 도시 지자체는 도시 계획 시 ‘그늘 전략’의 75%를 나무 설치에 중점을 뒀다.

그러나 나무 설치 외에도 다양한 도시 맞춤형 그늘막 기술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미국 애리조나주 템피시는 태양 에너지를 활용해 전기를 생성하는 ‘태양열 패널’을 설치하면서 자동차와 사람을 동시에 보호하는 그늘막 기능도 추가했다.

교수팀은 “도시의 보행자가 이동하는 경로에 최소 20%의 그늘이 있어야 뜨거운 여름 오후의 90% 20분 동안 걷는 사람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다”면서 “각 도시의 인프라, 햇빛 강도 등 도시 상황에 맞는 실행 가능한 그늘막 인프라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3) DOI: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3-02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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