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폐허 속에 창립한 SK와 ‘6.25 전쟁 영웅’ 워커 장군家의 70년 인연

이한경 기자 2023. 8. 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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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에 걸쳐 한국 지켜낸 가족… 손자 부부 최근 내한해 워커힐 호텔 머물러
7월 말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을 방문한 '6·25 전쟁 영웅' 고(故) 워커 장군의 손자 샘 워커 2세 부부(가운데)가 워커힐 임직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SK 제공]
고(故) 월튼 해리스 워커 장군(1889~1950)은 1950년 12월 이역만리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다 사망했다. 워커 장군의 아들 샘 워커도 군인으로서 역시 6.25 전쟁에 참전했고, 훗날 대장으로 진급했다. 워커 장군의 손자인 샘 워커 2세 또한 주한미군에서 헬기 조종사로 근무했다. 대한민국은 이 같은 워커 장군가(家)의 희생 정신과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6.25 전쟁에서 승리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냈다.

한미동맹 70주년이자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올해 워커 장군가와 SK그룹의 각별한 인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SK그룹은 1953년 4월 최종건 창업회장이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직물공장을 재건하면서 시작됐다. SK 관계자는 "SK의 역사와 한미동맹의 역사는 궤를 같이한다"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굳건한 한미동맹이 있었기에 전쟁 폐허 위에서 SK와 같은 기업이 태동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미동맹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SK

6.25 전쟁 영웅인 워커 장군은 초대 주한 미8군 사령관으로 6.25전쟁 때 일명 '워커 라인'으로 불린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 인천상륙작전을 가능하게 한 주역이다. 당시 워커 장군이 남긴 외침 "지키느냐, 죽느냐(Stand or die)"는 지금도 군인 정신의 표상으로 회자된다. 한국 정부는 이런 워커 장군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아 1963년 워커힐 호텔을 개관했다. 당시 워커힐 호텔은 주한 미군 및 외교관 등을 위한 휴양 단지로 인기를 끌었다.

직물공장으로 출발한 SK그룹은 1973년 창립 20주년을 맞은 해에 워커힐 호텔을 인수했다. 워커 장군의 희생이 밑바탕이 돼 기업을 일으킬 수 있었던 SK그룹이 워커 장군을 기리는 워커힐 호텔을 인수한 것이다. SK그룹으로서는 종합섬유기업이라는 틀을 깨고 사업 다각화의 첫 발을 내딛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워커 장군의 손자인 샘 워커 2세 부부는 1981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지킨 대한민국을 처음 찾아 할아버지를 기리는 워커힐 호텔에서 휴가를 보냈다. 당시 샘 워커 2세 부부는 "서울이 찬란하게 변했다. 거대한 변혁이란 단어는 바로 한국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샘 워커 2세 역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1987년 한국 근무를 자원해 1991년 걸프전 발발 전까지 주한 미군에서 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SK그룹도 워커 장군가의 한국 사랑에 감동해 워커 장군을 비롯한 6.25참전용사들의 헌신을 기리고자 1987년 워커힐 산책로에 장군의 기념비를 세웠다. 그러자 워커 장군가는 워커 장군의 서거 70주년이 되는 2020년 워커 장군의 유품인 청동 불상을 워커힐에 기증했다. 위기 속에서도 미래를 꿈꿔온 한국 역사를 함께 기억하길 바란다는 취지였다.

고(故) 워커 장군의 손자 샘 워커 2세 부부가 조부의 애장품이던 청동불상이 전시된 것을 보고 있다. [SK 제공]
SK그룹의 한미 우호 활동은 워커 장군가와의 특별한 인연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50년대 미국 유학 시절 '인재 양성'이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임을 깨닫고, 이후 우수학생들이 미국 유수의 교육기관에서 수학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 공로로 1998년 한미친선협회 '코리아소사이어티'가 한미 관계에 공헌한 이에게 수여하는 '밴플리트상(Van Fleet award)'을 받았다. 최태원 회장은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이끌며 해외 유학 장학사업을 확대하고, 한미간 경제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2017년 같은 상을 대를 이어 수상했다. 이는 최초로 부자(父子)가 밴플리트상을 받은 기록을 세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7년 7월 미국의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 6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미간 경제 협력과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밴플리트상’을 수상했다. 1998년 최종현 선대회장이 수상한 바 있어 최초로 부자가 밴플리트상을 받은 기록을 남겼다.
밴플리트상은 워커 장군의 후임으로 미 8군사령관으로 부임한 밴 플리트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밴 플리트 장군은 중공군을 겨냥한 대규모 포격전을 수행해 전선을 38도선 위로 올린 전쟁 영웅이다. 그의 외아들도 미 공군 조종사로 6.25에 참전해 폭격기를 몰다 전사했다.

‘추모의 벽' 건립에 100만 달러 기부

2021년 5월 SK그룹은 한국전 전사자를 기리는 '추모의 벽' 건립에 100만 달러(약 13억 원)를 한국 기업 최초로 기부한 바 있다. 추모의 벽은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에 세워진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긴 조형물로, 한국정부 예산 지원과 SK그룹 등 기업과 민간 모금 등으로 건립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7월 한국전쟁 정전일을 맞아 열린 '추모의 벽' 제막식에 직접 참석해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와 추모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전쟁 기념공원 건립을 이끌었던 고(故) 윌리엄 웨버 대령의 부인 애널리 웨버 여사를 만나 희생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위로했다. 최 회장은 이날 행사 직후 취재진과 만나 100만 달러 기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추모의 벽은 한미동맹의 큰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며 "미국의 심장부인 이곳에 추억의 벽이 건립되면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계속해 남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해 7월 미국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열린 한국전 전사자 ‘추모의 벽’ 준공식에 참석해 고 윌리엄 웨버 대령의 부인을 만나 추모의 뜻을 전하고 있다. [SK 제공]
올해 SK그룹은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해 6·25 전쟁 영웅인 고 윌리엄 웨버 대령과 고 존 싱글러브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비 건립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SK는 한미동맹재단과 함께 오는 10월 경 경기 파주 평화누리공원 미국군 참전기념비 옆에 추모비를 세울 예정이다.

샘 워커 2세 부부도 7월 24일 다시 한국을 찾았다. 2013년 65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제1회 백선엽 한미동맹상 수상자로 선정된 워커 장군을 대신해 방한한 이후 2020년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는 거의 매해 한국을 찾았고, 그 때마다 워커힐을 방문했다. 샘 워커 2세 부부는 7월27일 부산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과 7월 28일 칠곡에서 열린 워커 장군 흉상 제막식에 참석한 뒤 사흘간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 머물며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워커힐 호텔 내에 조성된 워커 장군 기념비를 찾아 헌화와 함께 고인을 추모하고, 본관 로비에 전시 중인 청동불상도 관람했다.

70년 전 전쟁의 폐허 속에 창립한 SK그룹과 3대에 걸쳐 한국을 지켜낸 워커 장군가와의 인연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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