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과학’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3. 8. 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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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에 대한 사회적 불안은 오염수 방류와 관련된 가짜과학에서 시작됐다. 연합뉴스 제공

후쿠시마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가 우리나라 해역과 수산물에 미치는 영향을 지나치게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정부와 과학계의 일관된 주장이 좀처럼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현실이 위험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일방적으로 확률을 강조하는 ‘과학’보다 국민적 ‘신뢰’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과학계가 자체 모니터링을 강화해서 만약의 경우 일본의 방류를 중지시키겠다는 확실한 의지로 국민적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작정 ‘확률‧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우길 일이 절대 아니라는 지적이다.

● 위험사회의 진짜 현실

우리는 현대의 과학기술이 초래한 인위적 위험(risk)이 넘쳐나는 위험사회(risk society)에 살고 있다. 굳이 독일의 울리히 벡이나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일상적으로 실감하는 명백한 현실이다. 예천의 산사태나 오송의 지하차도 침수가 모두 인위적으로 발생한 인재(人災)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안전 사회’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사고’와 ‘질병’의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실제로 알프스에서 발견된 5300여 년 전의 아이스맨 외치(Oetzi)도 사냥을 위해 산에 오르던 중 추락해 왼쪽 쇠골 아래 동맥에 구멍이 뚫리는 치명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미라도 대부분 기생충 감염 등에 의한 질병으로 사망한 사체였다. 출산율이 현대보다 훨씬 높았던 때도 인구와 평균수명은 늘어나지 않았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세상이 달라졌다. 지구촌의 인구는 5배나 많아졌고, 평균수명도 2배 이상 늘어났다. 20세기에 폭발적으로 등장한 현대 과학기술 덕분에 사회의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고 보건‧의료 환경도 놀라운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된 정치‧사회적 민주화도 상당한 수준으로 달성됐다.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는 재난을 예방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능력도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했다. 폭우‧폭설‧가뭄‧폭염‧한파를 비롯한 기상 재해를 예방하는 수단인 일기예보가 가장 대표적인 예다. 오늘날의 일기예보는 1860년대 영국에서 현대적 기상관측, 전신(電信) 기술, 신문 발행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20세기에 등장한 컴퓨터와 인공위성이 본격적인 현대 과학인 기상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건강하고, 안전하고, 민주적이고 평등한 삶을 누리고 있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역사적 진실이다. 우리가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회학적 주장을 섣불리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정체

물론 오늘날 모든 사회 문제가 해결된 ‘낙원’(paradise)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21세기의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한편에서는 인구의 폭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걱정하고 있다.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기후 위기도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수준의 감염병에 의해 초래되는 고통도 여전하다.

과거에는 쉽게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위험’(risk)도 있다. 사전적으로 주어진 환경에서 죽음‧상해‧손실‧파괴 등의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말한다. 국제표준기구(ISO)에서는 ‘금전‧건강‧안전‧환경과 관련되어서 발생하는 사건‧결과‧가능성의 정보‧이해‧지식의 결핍에서 초래되는 예상과 다른 결과’를 위험이라고 정의한다.

그런 위험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기업이나 정부에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현대의 사회학이 주목하는 ‘위험’이 바로 그런 것이다.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소비자나 국민에게 위험의 ‘정체’를 정확하게 이해시키고, 엉터리 ‘괴담’에 현혹되지 않도록 설득해서 불필요한 사회적 낭비와 혼란을 제거하는 노력이다.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식품 등의 소비재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게 결정적인 가치를 발휘한다.

공정 관리 등에서의 실수‧오류로 발생한 불량의 경우에는 커뮤니케이션의 수준에 따라 기업의 존폐가 결정되기도 한다. 재난 예방과 공중 보건을 담당하는 국가의 위험 커뮤니케이션도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결정적인 수단이 된다.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위험의 실체를 분명하게 밝혀주는 ‘과학적 정보’일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과학적으로 불확실하거나 의미가 없는 ‘괴담’으로는 소비자와 국민을 안심시킬 수 없다. 현대 과학의 한계를 넘어서는 엉터리 정보도 경계해야 하지만 현대 과학으로 모든 위험을 예방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도 설 자리가 없다.

현대 사회에서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정보원’과 정보를 전달해주는 ‘중개자’(언론), 그리고 정보를 수용하는 ‘사회’로 구성된다. 효율적인 위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정보원‧중개자‧사회 사이의 ‘신뢰’(trust)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정보원과 중개자의 공감(empathy) 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공감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정보원‧중개자의 커뮤니케이션 노력은 공허한 것일 수밖에 없다. 물론 정보원의 ‘전문성’과 중개자의 ‘분별력’도 필수적이다. 

● 가짜 과학에 흔들리는 위험 커뮤니케이션

후쿠시마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에 대한 사회적 불안은 오염수 방류와 관련된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엉터리 전문가의 ‘횡설수설’에서 시작됐다. 중개자(언론)의 역량을 갖추지 못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이 엉터리 ‘가짜 과학’(fake science)을 확산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후쿠시마 괴담은 엉터리 전문가와 선정적인 황색 저널리즘이 만들어낸 재앙이라는 뜻이다.

위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위험 커뮤니케이션에서 ‘신뢰’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신뢰’가 ‘과학’을 앞설 수는 없는 일이다. 가짜 과학으로 무장한 무책임한 엉터리 과학자에 대한 신뢰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위험에 대한 국민의 인식에서는 확률을 강조하는 ‘과학’보다 국민 건강과 먹거리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부‧과학계에 대한 ‘신뢰’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고, 200여 곳에 설치해놓은 방사능 감시장치의 실측 결과를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정부가 ‘자체 모니터링’을 어떻게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후쿠시마와 우리 해역에 대한 정확한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지난 12년 동안 후쿠시마 현지의 상황은 엄중했다. 사고가 일어난 2011년부터 오염수의 본격적인 수거가 시작된 2년 동안 후쿠시마 앞바다로 엄청난 양의 방사성 핵종이 누출됐다.

누출 총량이 현재 후쿠시마 저장탱크에 들어있는 핵종의 1,000배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심각한 오염이 발생했다. 결국 수산물의 채취가 전면 금지됐다. 후쿠시마 근해에서의 조업 제한이 완전히 해제된 것은 2021년이었다.

연간 6,900만 달러 수준이었던 후쿠시마 근해의 수산업이 2018년에는 1,700만 달러로 줄어들었다. 어민들의 피해는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후쿠시마의 수산업은 여전히 2,600만 달러 수준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 미국 CNN의 보도다.

그런데도 지난 12년 동안 우리 해역과 수산물에서는 어떠한 변화도 확인되지 않았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방사능 측정 장치로 확인할 수도 없는 수준의 방사능이 장기적으로 수산물과 인체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은 명백한 가짜 과학일 수밖에 없다.

명백한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인식이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도 억지다. 지난 정부에서도 후쿠시마 오염수의 처리‧희석‧방류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었고 당시의 야당은 정반대의 입장을 밝혔었다. 정권 교체로 여와 야의 입장이 정반대로 달라진 것을 두고 정치적 성향을 따지는 것은 합리적인 지적이라고 할 수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처리‧희석‧방류에 대한 지나친 과장도 경계해야 한다. 대략 400명이 배출하는 하수의 양에 해당하는 하루 120톤의 오염수를 처리‧희석‧방류하는 계획을 ‘전례 없는 사건’이라는 지적은 지나친 것이다.

서울시도 후쿠시마 방류량의 5만 배나 되는 하루 600만 톤의 하수‧오수‧폐수를 한강으로 처리‧희석‧방류한다. 2012년까지는 매일 600만 톤이 넘는 인분‧가축분뇨‧하수 슬러지를 공해상에 투기하기도 했다.

비현실적인 ‘100% 안전’에 대한 집착도 버려야 한다. 인간의 가장 독특한 특징인 ‘이족 보행’도 100% 안전하지 않다. 돌부리에 발목을 삐기도 하고 낙상 사고도 발생한다. 자동차도 위험하고 가공식품도 위험하다. 심지어 의약품도 100%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100% 안전을 요구하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생존이 불가능하다.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독’(毒)과 ‘약’(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독성학의 제1 원칙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독성이 강한 물질이라도 충분히 희석시키면 독성을 걱정할 이유가 없고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치명적인 독이 된다. ‘용량(用量)이 독(毒)을 만든다’는 파라셀수스의 교훈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과학’이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의 안전과 정체성을 지켜주는 유일한 ‘희미한 등불’이라는 칼 세이건의 교훈은 후쿠시마 오염수의 처리‧희석‧방류에도 확실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희미한 등불일 수밖에 없는 ‘과학’을 엉터리 궤변에 지나지 않는 ‘가짜 과학’으로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 과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가짜 과학과의 ‘억지 균형’을 강조하는 언론의 억지도 바로 잡아야 한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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