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화가 임군홍이 우리 미술사에 남긴 터치…'정전 70주년 기념전'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30~40년대 화가 임군홍은 우리 미술사에 서양화를 도입한 주역입니다.
[김방은/예화랑 대표 : 작품들이 지금 1930년~40년대 작품들인데요. 이때는 동양화가 위주였던 우리의 미술 시대였는데 이렇게 서양화로 인물에 대한 인상 표현을 잘하셨던 분은 정말 흔치 않았던 분이세요.]
1930년대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다양한 풍경화를 남기는 등 화가 임군홍은 우리 미술사에서 서양화의 위상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FunFun 문화현장]
<앵커>
1930~40년대 화가 임군홍은 우리 미술사에 서양화를 도입한 주역입니다. 월북 화가로 분류되며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그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이주상 기자입니다.
<기자>
[정전 70주년 기념전 : 화가 임군홍 / 9월 26일까지 / 예화랑]
개량 한복에 검은색 구두, 다리를 꼰 채 라이프 잡지를 손에 들고 앉아 있는 여인, 1930년대 신여성의 모습입니다.
당시에는 쉽지 않았던 누드화까지 임군홍은 우리 서양화의 선구자였습니다.
보랏빛 바탕에 중국풍의 푸른 원피스와 흰 꽃은 후기 인상주의의 강렬한 터치감을 보여줍니다.
[김방은/예화랑 대표 : 작품들이 지금 1930년~40년대 작품들인데요. 이때는 동양화가 위주였던 우리의 미술 시대였는데 이렇게 서양화로 인물에 대한 인상 표현을 잘하셨던 분은 정말 흔치 않았던 분이세요.]
한국 전쟁 당시 남한에서 마지막으로 그린 '가족'에서도 다양한 기법의 실험을 계속합니다.
그림 속 어머니 품에 안겨 있던 둘째 아들 임덕진 씨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임덕진/임군홍 작가 차남 : 뱃속의 여동생까지 네 명이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이 안에 몇 미터 안에 포함돼서 있는 대가족을 그린 겁니다.]
임군홍이 북으로 간 뒤 남한에 남은 가족들은 130여 점에 이르는 유화작품들을 소중하게 보관했습니다.
[임덕진/임군홍 작가 차남 : 훌륭했던 근대 미술을 했던 분들을 우리 다 같이 조명을 해보고, 임군홍의 그림을 가지고 그분들도 다 같이 우리 근대 미술을 화려하게 다시 이렇게 하는 그런 향기로운 그림으로 한 번 생각해 보자.]
1930년대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다양한 풍경화를 남기는 등 화가 임군홍은 우리 미술사에서 서양화의 위상을 명확히 했습니다.
(영상편집 : 정용화, VJ : 오세관)
이주상 기자 joosang@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폰 만지다 급정거 "취향 찾더라"…택시 내부에 '경악'
- "절대 하지 마"…월 375만 원 '탕후루 알바' 시끌, 왜?
- 오픈런 뭐길래 말뚝도 생겼다…거리까지 바꾼 대전 빵집
- "육포 때문에 일본 공항서 조사받았다…한국 돌아갈 뻔"
- 트럭 사고 나자 몰려온 사람들…소고기 2만kg 훔쳐 갔다
- 훌쩍이는 8살 머그샷까지…5년 전 영상 국내서 재조명
- 문 열자 누워있는 남성…"전신은 1천만 원" 그 가게 정체
- "월요일 신림역서 남성 20명" 살인 예고 글, 또 올라왔다
- 최루가스 맞고도 망치로 쾅쾅…"다 털렸다" 순간 벌인 일
- 154개 기둥 전체 철근 누락도 나왔다…"부실 모두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