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미디어의 미래] '기후환경 일타강사' 현인아의 리포트, 이래서 특별하다
[인터뷰] 현인아 MBC 기후환경팀 기자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높은 수온은 태풍의 에너지죠. 태풍은 마치 지능이 있는 생명체처럼, 먹이가 가장 풍부한 곳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지난해 8월 태풍 힌남노를 소개한 MBC 뉴스 리포트는 유튜브 조회수 538만 회를 기록했다. “지구과학 수업을 다시 듣는 기분”, “걱정만 주기보다 원인을 분석해 알려주는 게 좋았다”는 호평이 댓글 곳곳에 보였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후·환경 보도를 하고 싶습니다.” 현인아 MBC 기후환경팀 기자의 '다짐'은 리포트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의 리포트는 이해하기 쉽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의 기온은 1.1도 상승했습니다. 기온이 1도 상승하면 수증기는 7% 늘어납니다. 수증기 7%는 얼마나 되는 양일까요? 무게로 환산하면 8900억 톤이 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댐인 싼샤댐이 393억 톤 정도니까요. 싼샤댐 22개가 터진 것과 같은 물이 대기에 풀린 겁니다.”(7월15일)
현인아 기자의 기후환경 리포트는 친절하면서 세밀하고, 무엇보다 흥미롭다. “유엔기후변화보고서는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제곱미터당 2.72와트의 열기가 더해졌다고 분석했습니다. 60와트 백열등으로 환산하면 이해가 쉬운데요. 뜨거운 백열등을 한반도 면적에 100억 개를 켠 상태가 되는 거고요. 지구 전체로 생각해보면 지구 전체에 23조 개를 켠 것과 같습니다. 생각만 해도 뜨거울 것 같지 않나요?”(7월24일)
현 기자는 2018년 지상파 기후환경 보도에서 처음 '터치스크린' 전자칠판을 사용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허공을 바라보며 해야 할까.” 지구과학 '인강'을 즐겨 듣는 현 기자는 누구보다 '똑같은 그림'을 싫어했다. 인강처럼 리포트에 동그라미도 치면서 효과적인 전달을 원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가 20년간 기상캐스터로 살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러웠다. 그는 지상파 최초 기상캐스터 출신 기자이자 지상파 최초 '여성 기상팀장'이었다.
기상캐스터는 기자PD출연자라는 3인의 정체성을 쏟아부어야 완성되는 직업이다. 그는 1997년 기상캐스터로 MBC에 입사해 20년간 기후를 들여다봤다. 1998년 지리산 폭우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심각한 기후 변화의 현장을 목격해왔다. 과거에는 '지구온난화 결과로 추정된다'고 전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2018년 기자가 된 뒤 기상캐스터로서 훈련된 그만의 강점과 경험을 살린 것이 시청자와 통했다.
신문방송학과 출신의 현 기자는 스스로를 '후천적 이과'로 소개한다. 기상캐스터 초기에는 지구과학을 잘 몰라서, '모르는 것을 전달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고 했다. 현재 그에겐 “모르는 건 말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모르는 걸 아는 척 보도하면 시청자들이 공감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모른다는 걸 창피하다고 생각하면 질문이 없어진다”고 생각한 현 기자는 계속 물었다. 자연스럽게 보도자료보다 기상청 예보관과의 통화가 편해졌다. 박사급 취재원들과 익숙해지는 데에 20년 커리어의 대부분을 썼다. 그 결과 자칫 통계적으로만 다가올 수 있는 기후환경 이슈를 정확하게, 쉽고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을 체화할 수 있었다.
현 기자는 지난달 28일 만남에서 자신의 힘이 '취재원'이라고 했다. “특히 최신 상황을 연구하는 젊은 박사들을 만나 이야기할 때 쾌감이 있다”고 했다. 현 기자는 “기자는 답안지를 들고 가는 게 위험하다. 현장에서 만난 분들, 또는 전문가들로부터 들은 한마디가 기사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대책을 담는 순간 지루해진다. 대책이 정말 대책일까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좋은 전문가를 찾으려고 많이 노력한다”고 했다. 그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힘은 시청자다. “전문적인 댓글이 많다. 댓글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울 때도 많다”고 했다.
오늘날 기후환경 담당 기자는 쉴 틈이 없다. 장마가 끝나니 폭염이다. 현 기자는 폭염을 “침묵의 살인자”라고 표현한 뒤 “극단적 재난 상황이, 예전에는 겪지 않았던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예보관들은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기후환경은 살고 죽는 문제다. MBC 기후환경팀엔 현재 기자가 3명”이라며 “기후 위기에 진심인 기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부처를 뛰어넘어 기후 위기를 접목하는 리포트가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오는 10월 미국의 기후 위기 현장을 담아올 예정이다.
올해 초 'RE100' 대표를 인터뷰했던 현 기자는 “똑같은 메시지를 전해도 우리나라 전문가가 말하면 그 순간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게 현실”이라며 “기후환경 이슈가 정쟁 이슈로 흐르다 끝나는 게 안타깝다”고 밝혔다. 기후 위기에 관심 많은 언론계 후배들을 향해서는 “예전에는 과학이라는 허들이 높고 막막해 보였다면 지금 기후 보도는 세상의 큰 흐름이다. 전 세계에 좋은 기후 위기 관련 기사가 쏟아진다. 그걸 참고해 내 분야와 접목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으며, 무엇보다 “오래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현인아 기자는 8월24~25일 이틀 동안 진행되는 2023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 '판이 바뀐다: AI와 미디어 패러다임의 전환'에 출연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 편집자 주)
2023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 '판이 바뀐다: AI와 미디어 패러다임의 전환' → https://www.mediafutu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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