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기승전 한동훈’ 타령 [김지현의 정치언락]
“(한 장관은) 왜 이렇게 엷은 미소를 띠고 있나” “가볍기가 깃털 같다”(26일 박범계 의원)
“한 장관이 권력을 남용해 (이화영 전 부지사 접견을) 막고 있다”(26일 주철현 의원)
“(한 장관) 참 무례하네, 뭐라고? 말이 길다고? 너나 짧게 하시길” (26일 민형배 의원)
“한 장관은 마치 내가 매표 행위를 했다는 듯이 매도했다.” (25일 송영길 전 대표)
최근 일주일 사이 민주당 인사들로부터 쏟아져 나온 한동훈 법무부 장관 관련 발언들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한동훈 마니아 수준입니다. 입만 열면 한동훈 탓, 한동훈 타령이니 말입니다.
전선(戰線)도 다양합니다. 민주당은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구속기소 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최근 이재명 대표와 관련해 진술을 번복한 것이 “검찰 회유 탓”이라고 합니다. 법무부가 민주당 의원들의 이 전 부지사 접견을 불허하는 배후에도 한 장관이 있다는 거죠. 민주당 의원들은 24일 수원지검을 항의 방문해 바닥에 앉아 시위를 벌였습니다.
“북한에 수십억 뒷돈을 준 범죄혐의를 밝혀내서 기소했고 재판이 빨리 진행된 부분은 이미 유죄판결이 났다. 현재는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 등 추가 관련자가 있는지 수사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자기편에 불리한 진술을 뒤집어 보려고 검찰청에 몰려가서 드러눕고, 영치금 보내기 운동도 하고, 성명서를 내고, 가족을 접촉하고 면회해서 진술을 번복하라고 압박하는 행태다. 이건 권력을 악용한 최악의 사법 방해이자 스토킹에 가까운 행태다.”
‘사법 방해’, ‘스토킹’ 등의 발언에 민주당 의원들은 발끈했습니다. 민형배 의원은 페이스북에 “정신 나갔네~”라고 썼다가 “말이 좀 거칠었다면 바꿉니다. 정신 좀 차리시지~”라고 적었습니다. 박주민 의원은 28일 CBS 라디오에서 “(농성에서) 드러누운 사람이 없었다. 국회의원들에 대한 모욕적 표현”이라고 했다가 진행자인 진중권 교수로부터 “연좌 농성이었는데 드러누운 거랑 앉아있는 거랑 뭔 차이가 있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장관께서 왜 이렇게 엷은 미소를 띠고 있습니까.” (박)
“제 표정까지 관리하십니까.” (한)
“제가 관리한다고 관리됩니까?” (박)
“그러니까요. (최 씨) 사안은 사법 시스템에 따라 진행된 것이고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입니다. 지금 민주당처럼 이화영 전 지사의 진술을 번복하기 위해 사법 시스템에 개입하려는 시도는 재판 내내 전혀 없었습니다.” (한)
“역시 동문서답이네요. 이화영 이 자도 안 물었는데, 최 씨를 물었는데 이 씨로 대답하네요. 좀 무겁게 법무부 장관답게 하세요.”(박)
“그러고 있습니다. 소리 지르지 마시고요.”(한)
(중략)
“장관의 말이 하도 기가 막혀서 하는 얘기예요. 제가 그동안 소리 질렀습니까?”(박)
“많이 지르셨죠. 말씀하세요.”(한)
“가볍기가 참 깃털 같아요.”(박)
“제가 훈계 들으러 온 것은 아니고요.”(한)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개인 박범계가 아니잖소, 그렇지 않습니까”(박)
“반말은 하지 말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한)
“뭐뭐 하였소가 반말이라고 할 수 없지만 좀 무겁게 답을 해보세요.”(박)
“고속도로 게이트, 어떻게 생각해요.” (박)
“국토부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한)
“원희룡 장관의 국토부 설명이 납득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박)
“위원님 댁 앞으로 고속도로가 갑자기 바뀌면 위원님을 수사해야 합니까. 위원님이 어떤 압력을 가했다거나, 양심선언이나, 이런 비슷한 정도의 단서가 있어야 수사를 하지 않습니까.”(한)
이 외에도 도처에서 한동훈 이름 석 자를 외치는 중입니다. 송영길 전 대표는 25일 자신이 연루된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과 관련해 “한 장관이 매표 행위로 매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18일 KBS라디오에서 한 장관이 내년 총선 때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마포을로 나왔으면 좋겠다면서 “나도 대선주자 한번 이겨보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나”라고 하더군요.
이런 민주당 내 ‘기승전 한동훈’의 배경엔 호불호를 떠나 어쨌든 윤석열 정부 최대 화제 인물인 한 장관을 이용해 각자 자기 장사를 하려는 목적이 깔려 있을 겁니다. 한 야권 관계자는 “좋든 싫든 일단 한동훈과 엮이면 무조건 이슈가 되고 기사로 나오니 너나 할 것 없이 한동훈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서운 정치인들이 일단 한동훈 카드를 꺼내 드는 거란 해석이죠. 돌이켜보면 김남국 의원의 이름을 전국구로 알린 이른바 ‘이모’ 사건도 지난해 한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 나왔네요.
한 장관 특유의 날 선 단어 사용과, 흡사 싸움닭 같은 모습에 이미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보수의 책사’라 불리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한 장관과 박 의원 간의 설전을 두고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고 훌륭한 경력을 쌓은 분들이 저런 수준의 상스러운 얘기를 주고받으면 국민들이 뭐라고 그러겠냐”고 비판했습니다. 민주당 내 ‘미스터 쓴소리’인 이원욱 의원조차 한 장관이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스토킹’이라 표현한 것에 대해 “완전히 정치인으로서 할 발언이고 그런 발언을 계속하고 싶으면 장관을 그만두고 나와서 정치인이 돼서 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도 BBS라디오에서 “듣는 데 솔직히 불편하다. 상임위 내에서 장관과 의원이 그것도 (박범계 의원이) 다선 의원 아니냐. 장관하셨던 분 아니냐. 이렇게 대화를 오고 가는 것은 지금 청취자분들이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실까요"라고 했습니다.
김지현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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