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돈 쏟아붓는다…'슈퍼 엘니뇨'에 남미 국가들 '비명'
美다트머스대 분석 "총 손실 4481조"
페루 GDP 1.7%↓, 에콰도르 1.6%↓ 전망
"인플레이션 가속화에 통화당국 부담 ↑"
4년 만에 전 지구를 덮친 ‘슈퍼 엘니뇨’로 남미 경제에 3000억달러(약 384조원)에 달하는 충격이 가해질 것으로 추산된다. 이 지역 국가들은 농산물 수출 의존도가 높아 이상 기후로 인한 작황 악화에 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엘니뇨가 이 지역 내 국가들의 인플레이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요인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피해액 8% 남미에 집중
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다트머스대의 저스틴 맨킨 지리학과 교수와 크리스포터 캘러한 연구원이 이끄는 연구팀은 올해 발생한 엘니뇨로 전 세계 경제에 3조5000억달러(약 4481조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과거 슈퍼 엘니뇨가 발생했던 1982~1982년(4조1000억달러), 1997~1998년(5조7000억달러)과 비교하면 낮지만, 추정치를 웃도는 수준이다.
전체 피해액 중 약 8%인 3000억달러가 남미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 국가들의 기간산업인 농어업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콜롬비아의 금융회사 코르피콜롬비아나는 올해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의 경제 성장률이 각각 1.7%, 1.6%, 0.6% 하락할 거란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엘니뇨란 적도 지역 태평양 동쪽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 대비 0.5도 이상 높은 채로 5개월 이상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온도 상승 폭이 1.5도를 넘어가면 ‘강한 엘니뇨’, 2도를 넘어갈 경우 ‘슈퍼 엘니뇨’로 분류한다. 세계기상기구(MWO)는 지난 6일(현지시간) 엘니뇨가 4년 만에 재발했음을 공식 확인했다.
엘니뇨는 일차적으로 어부들에게 치명적이다. 남극에서 출발, 남미 대륙 서쪽 앞바다를 타고 적도 방향으로 흐르는 ‘훔볼트 해류’에는 영양분이 풍부해 멸치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어류가 서식한다. 덕분에 연안 국가인 페루는 전 세계 멸치 공급의 20%를 책임지는 수산업 강국이 됐다.
온도가 차갑게 유지되던 훔볼트 해류가 엘니뇨로 인해 따뜻한 해류에 밀리면 어획량에 직접적인 타격이 가해진다. 실제로 페루 생산부는 올해 첫 멸치잡이 시즌을 취소했다. 페루의 컨설팅회사인 손앤어소시에이츠는 이로 인해 페루의 올해 어획량이 전년 대비 19.3%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했다.
에콰도르에선 가뭄으로 인한 식재료 수급 위기가 우려된다. 5만㏊(헥타르·1㏊=1만㎡)에 달하는 바나나 농장에서 작황이 악화된 가운데 사탕수수 수확도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콜롬비아는 1997~1998년 엘니뇨 당시 300명의 인명 피해와 30억달러 규모의 경제 손실을 봤던 나라다.
콜롬비아에선 에너지 위기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 국가의 전력 생산 시스템은 수력 발전에 70%를 의존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엘니뇨로 인한 가뭄으로 저수지에 저장해 둔 물의 양이 전체 용량의 65%에서 44%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콜롬비아의 비영리 연구단체인 페데사로요는 이로 인해 에너지 요금이 50~100%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남미 최대 경제국인 브라질에선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산불이 더욱 잦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브라질 연구를 담당하는 에리카 베렝게르는 “건기에 다른 지역 대비 온도가 2.5도 높고, 강수량이 30% 적은 부분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엘니뇨가 겹친 셈”이라며 “산불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110%를 넘는 물가 상승률에 시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선 2022~2023년 대두(콩) 수확량이 전년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가뭄으로 콩 수출수익이 180억달러 넘게 쪼그라들었다고 발표했다. 우루과이와 함께 일시적으로 강우량이 늘면서 작황이 다소 개선되리란 관측도 제기된다. 그러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일부 지역에 비가 집중되면 작황에 미칠 영향은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온난화 책임 적지만 큰 비용 부담”
식료품과 에너지 부문을 중심으로 남미 지역 인플레이션은 한층 악화할 전망이다. 골드만삭스의 남미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 알베르토 라모스는 “엘니뇨로 인플레이션이 다시 가속화하면 긴축적 통화 정책을 중립으로 전환해 안정적 경제 성장을 유도하려던 중앙은행의 여력을 방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미 정부들은 ‘엘니뇨 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페루 정부는 엘니뇨 대응에만 11억달러(약 1조4000억원)를 쓰겠다고 밝혔다. 콜롬비아 정부는 관련 정책에 2억6600만달러(약 3409억원)를 할당했다.
이들 국가는 지구 온난화에 기여한 바가 비교적 적지만, 그 어떤 국가들보다 큰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맨킨 교수는 “기후 문제에 관한 책임이 가장 적은 국가들이 엘니뇨로 초래된 비용을 불균형적으로 많이 부담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 클래식과 미술의 모든 것 '아르떼'에서 확인하세요
▶ 한국경제신문과 WSJ, 모바일한경으로 보세요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5달 연속 오른 증시 향방…마이크 윌슨 "더 오를 수 있지만"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 WTI 한달새 16% 급등…1년 반만에 최대 상승 [오늘의 유가]
- 中, 내수 경기 부양 총력전…"유급 휴가·탄력 근무 장려"
- 마이크론 이어 AMD도 "인도에 투자"
- 英의 '녹색 후퇴'…산업계 탄소배출량 허용치 대폭 늘려줘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 "주병진, 불화 때문에 하차" 허위 제보자, 2000만원 배상 판결
- 法 "피프티 피프티·소속사 합의점 찾아라" 조정회부
- "내가 잠재적 아동학대범?"…주호민 사건에 씁쓸한 교사들
- "미래 짧은 분들" 후폭풍…민주당 '노인비하' 발언 줄소환
- 홍콩 초고층 빌딩 오르던 男 창문 두드렸지만 '추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