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불안에 떠는 철근 누락 아파트…"계속 살아야 하나요"

노승혁 2023. 8. 1. 11: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보강공사 진행에도 주민들 분통·불안감 확산
입주 앞둔 아파트 당첨자는 "입주해야 할지 고민"

(파주·양주=연합뉴스) 노승혁 심민규 기자 = "보강 공사를 한다고 해도 입주민들의 불안한 마음이 금방 사라지겠어요? 한숨만 나옵니다."

1일 오전 경기 파주시 '초롱꽃 마을 3단지(파주 운정 A34)에서 만난 입주민 김 모(79) 할아버지는 "전문가들이 내놓은 보강 공사 공법이 신뢰가 전혀 안 간다"며 "철근으로 기둥을 덧대 보강한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하중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전문가들이 그런 집에서 한번 살아보라"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 "아파트를 지지하는 기둥이 애당초 철근과 시멘트랑 잘 버무려져 한 몸이 돼야 하는 것이 누가 봐도 정상인데 처음부터 빠졌다면 누구의 책임이냐"며 "건설사, 설계사, LH, 관계 공무원들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입주민 김모(46) 씨는 "입주한 지 1년이 다 돼가는데 이제야 조사하고 보강 공사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아이와 함께 있다가 지하주차장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천막으로 둘러쳐진 주차장 [촬영 노승혁]

작년 8월 입주가 시작된 1448가구 규모의 공공임대 아파트인 이 단지는 국토부 조사에서 지하 주차장 기둥 331곳 가운데 12곳에 보강 철근이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이날 지하 주차장의 온도는 31도까지 올랐다.

주차장 2곳에는 파란 천막과 함께 '위험'이라는 테이프가 둘러쳐져 있었다. 천막 안에서는 보강공사를 위해 근로자들이 콘크리트 벽체에 드릴로 구멍을 뚫는 작업으로 먼지가 일었다.

천막 위에는 '페인트 도색 보수 작업을 진행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철근 보강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철근 누락 LH 아파트 명단과 해당 아파트 설계·시공·감리사를 공개했다.

발표 후 철근 누락 사실이 드러난 15개 단지 입주민과 입주 예정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기둥 보강공사 [촬영 노승혁]

정부는 "이번에 적발된 현장은 지하주차장 위에 건물이 없어 주거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주민들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지하주차장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며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운정지역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날 "파주에서 골프장 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버는 그룹이 운정신도시에 두 개 단지나 '순살 아파트'를 짓거나 짓고 있네요. 입주민들만 손해네요"라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파주보다 양주지역은 상황이 더 안 좋다.

행복주택으로 지어지는 양주회천 A15블록 아파트는 대학생, 청년, 신혼부부 등 880세대가 내년 2월 입주할 예정이다.

작년 12월 이 아파트의 44A형 신혼부부 행복주택에 당첨된 입주예정자는 "아파트에 당첨돼 너무 기뻤고, 내년 입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아무리 행복주택이라고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 불안해서 입주해야 할지 고민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다른 입주예정자는 "보강 공사를 한다고 해도 입주 후에 주차하거나 거주할 때 항상 불안에 떨 거 같다"며 "입주가 늦어지더라도 안전하게 보강 작업을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사 현장에서 만난 근로자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구조기술사가 문제없다고 확인한 도면을 시공사인 저희에게 넘기면 도면대로 공사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무량판 구조로 만들어진 이 아파트는 기둥 154개 중 154개 전부가 설계 단계에서 철근이 누락됐다.

하지만 철근 없이 건축된 아파트의 현장은 공사가 이미 충분히 진행된 상태였다.

이 현장도 건물 내부 작업은 거의 끝났으며, 근로자들은 이날 아파트 단지 내 도로포장과 조경작업을 하고 있었다.

전날 정부의 발표 후 다시 보강작업을 진행하라는 지시에 근로자들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공사장 근로자는 물론, 진입 트럭은 모두 막아 세워 내부 진입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양주회천 A15블록 아파트 [촬영 심민규]

현장 입구를 지키는 한 근로자는 "(국토부가) 어제 명단을 공개해서 LH 차원에서 외부인 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지시가 내려왔다"며 "특히 지하 주차장으로는 인부들도 쉽게 진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철근이 빠진 지하 주차장 기둥은 철판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보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준공이 끝난 남양주시 별내동 남양주 별내 A25 블록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남양주 별내 아파트는 다른 층 도면으로 철근을 설치해 전체 기둥의 42%인 126개 기둥에 철근이 빠졌다.

작년 4월 입주한 입주민은 "갑자기 뉴스가 나오고 아파트 측에서 보강 공사를 한다고 하는데, 이 아파트에 계속 살아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 일부에는 천장이 붕괴하지 않도록 임시보강 구조물(잭서포트)이 설치됐다.

wildboar@yna.co.kr

nsh@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