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도 정치도 망칠 ‘당원 행세 기자’[시평]
‘슬리퍼 기자’와 ‘건배사 기자’
언론윤리 파탄의 상징적 행태
특정 정당의 선전도구로 전락
정치권과 협업해 괴담도 유포
政·言 공동체 땐 공론장 붕괴
언론 기능 정상화할 노력 절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기자회견장에 세 줄무늬 슬리퍼를 끌고 나와 팔짱을 낀 채 노리다가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성 고함을 날리고, 비서관과 거친 설전을 교환한 어떤 용감한 기자가 출현했다. 이 사건 이후 대통령의 정례적 도어스테핑은 중단되었고, 해당 기자는 소속 언론사로부터 다른 기자들에게 모범이 된 ‘공적’을 인정받아 우수기자상을 받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최근 한 야당의 비공개 출입기자단 오찬 모임에서, 주최 측 고위인사들이 “(여기 모인 출입기자들은) 입당 원서만 안 썼지 (우리 당) 당원이나 마찬가지”며 “우리 당 중앙위원급으로 모셔야 한다”면서 “기자들과 우리 당은 공동운명체”라고 연설했다고 한다. 이 행사에서 답례차 건배사를 맡은 한 기자가 “경제는 ○○당! ○○당을 위하여!”라고 선창하자, 다수의 참석 기자는 술잔을 높이 들고 구호를 따라 외치며 화답했다는 숨은 이야기가 보도된 바 있다.
두 장면은 구체적 양상에선 다르지만, 한국 일부 언론의 고질화하고 깊게 뿌리내린 왜곡된 직업윤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첫째 장면은, 일부 언론인이 자신들의 정치 신념과 배치되는 정당 또는 정치세력과는 대놓고 맞짱 뜨면서, 이들을 정복과 분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용맹스러운 정치 투사적 기자상이 본보기로 널리 인정되고 격려받는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둘째 장면은, 일부 언론인이 자신의 정치 이념과 부합하는 정당과는 능동적으로 하나가 되어 동맹 관계를 형성하고 결사옹위하는 임무를 당위로 받아들이는 직업적 소명의식과 가치체계를 상징한다.
언론계가 현실 정치 세계와 극단적으로 대립하거나 밀착되면,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제4부로서의 독립 언론은 불가피하게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그 결과, 언론은 현실 정치 밖에서 객관적·독립적·자율적으로 정치를 비판하고 조정해 낼 수 있는, 이른바 공론장(公論場)의 역할을 버리고 정치 세계의 한 분파로 편입되고 만다. 정치의 중심에 자발적으로 통합되고 동참하면서 정치에 식민화된 ‘제1부’로서의 언론은 이제 특정 정당의 선전선동 수단으로 변질한다. 일부 언론인은 자신이 정치에 진입해 정치를 주도하고, ‘당(黨)에 충성하는 언론’ ‘대의에 복무하는 언론’을 만드는 것이 사회악(惡)을 척결하고 국가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그와 정반대로, 정치도 언론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언론인이 ‘기자’를 스스로 저버린 채 ‘용감한 당원’이 되고, 언론사가 특정 정당과 공동운명체가 되면, 국가 사회적 주요 현안들은 합리적 토론의 영역에서 쫓겨나, 막가파식 정쟁(政爭)의 영역으로 내몰리게 된다. 정치 중립지대에서 민주적 토론마당을 제공해야 할 독립적인 제4부가 사라지고 언론 자체가 정당의 부속기관으로 스스로 전향하면, 국가 운영과 직결된 수많은 긴급 정책 사안은 정쟁의 회오리에 흡인되어 정치적 합의와 해결을 맞이할 기회를 상실한다. 실제로 오늘날 한국 정치가 당면하고 있는 중요한 정책 사안들은 해결되지 못하고 속절없이 누적만 되고 있다.
언론은 언론대로 정당의 선전기구로 변질하면서 객관 보도와 사실 보도는 위축되고 정파적 편향 보도나 왜곡 보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심지어 언론이 정치권과 협업하여 가짜뉴스와 괴담뉴스를 조직적으로 생산하고 퍼뜨리는 사례까지 빈번히 발견되고 있다. 1인 미디어와 생성형 AI 발전은 가짜언론의 범람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이처럼 정치는 정치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함께 부패하고 있다. 언론인에게 정치는 투쟁과 분쇄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되고, 반대로 자발적 동조나 예속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제 우리 언론은 스스로 정치로부터 분립해 제4부로서의 독립성을 회복할 때 언론도, 정치도, 국가도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인정해야 한다.
한국 언론은 ‘슬리퍼 기자’나 ‘건배사 기자’처럼 자신의 정치 신념을 구현해 내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이라는 공적 자원을 도구화하려는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4부로서의 독립적인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직업적 소명의식에 헌신하는 새로운 직업윤리의 정착이 우리 언론에 긴급히 요구된다.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외신 “역대 최대 폭염 美, 탈출법이 한국에 있다”
- 한채영, 결혼 17년 현실 민낯… “훈남 남편? 이제 없다”
- 17세 女아이돌, 갑작스럽게 사망…활동 기간 4개월
- [속보] ‘철근 누락’ LH 아파트, 서울 수서·파주 운정·남양주 별내 등…15곳 공개
- 61세 양자경, 77세 페라리 前CEO와 신혼일상 공개
- 톱가수, 공연 중 술 뿌린 관객에 분노하며 마이크 던져
- 한국 위협했던 푸틴 최측근 메드베데프 “우크라 대반격 성공하면 핵 사용해야”
- 소라 “가정폭력에 이혼…소송 변호사비만 2억원”
- 52억에 낙찰된 우주에서 온 ‘블랙 다이아몬드’, 1조원대 코인 사기꾼이 구매
- “한국 여성 나이 많을수록 피임 안해…주된 피임법은 콘돔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