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후폭풍 속 ‘제각각’ 기업들의 속내

오종탁 기자 2023. 8. 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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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년간 무려 52.4% 올라…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줄일 것”
유통·외식·물류기업 경영에 직격탄 ‘울상’…위기 속 기회 찾는 기업도

(시사저널=오종탁 기자)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5% 인상된 시간당 9860원으로 7월19일 정해지자 기업들 입장을 대변하는 각 경제단체들은 너도나도 인건비 상승에 따른 기업 경영활동 위축을 우려하고 나섰다. 

단체별로 온도 차는 있다. 우선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을 각각 아우르는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는 절실히 원했던 동결 수준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 소공연은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7년간 최저임금을 무려 52.4% 올리는 과속 인상을 벌여왔고, 그 결과는 고용 축소로 이어졌다"면서 "이번 최저임금 인상 결정은 소상공인의 '나홀로 경영'을 더욱 심화시켜 결국 근로자의 일자리를 대폭 사라지게 하는 후폭풍을 불러일으킬 것이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수출 증대'라는 대명제에 무게중심을 두고 활동하는 한국무역협회도 "우리 수출기업의 75%가 2024년 최저임금의 동결 또는 인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이번 결정으로 우리 상품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신규 채용 축소, 해외투자 확대 및 자동화 추진 등에 따른 고용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첫 전원회의를 앞둔 5월1일 서울 시내 한 하이브리드(유인·무인 영업을 겸하는) 편의점 ⓒ연합뉴스

경제단체들 최저임금 반응 '온도 차' 

반면 대·중소기업을 아우르는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주요 대기업을 회원사로 둔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은 온건한 어투로 주로 중소·영세기업의 부담 증대 문제를 거론했다. 드러난 입장만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대기업들은 이번 최저임금 인상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하다. 대기업들이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렇다 할 의견을 표명하는 경우는 드물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최근까지 국내 주요 대기업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밝힌 최저임금 인상 관련 언급을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말 못 할 속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문서에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큰 우려가 여실히 묻어났다. 

가장 적극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토로한 기업은 역시 대규모 인력을 사용하는 유통 업종에 속한 곳들이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위해 설립된 현대지에프홀딩스 측은 7월21일 투자설명서에서 최저임금 증가 추세와 관련해 "인건비 부담이 증가할 수 있고, 특히 유통업을 영위해 근로자 수가 많은 현대백화점의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백화점, 아웃렛 등을 운영하는 이랜드리테일 측이 7월19일 게재한 증권신고서에도 "향후에도 정부 정책 또는 인플레이션 등 거시경제 변수 영향으로 명목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다. 이는 우리 회사의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유의하시기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유통기업, 공시에 강한 우려감 드러내 

앞서 롯데쇼핑(백화점, 대형마트, 슈퍼마켓 등 운영), GS리테일(편의점, 슈퍼마켓 등 운영), 이마트(대형마트, 편의점 등 운영) 등 다른 유통기업들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을 중대 리스크로 꼽았다. 롯데 계열 유통 매장이 들어선 부동산을 투자 자산으로 삼는 롯데리츠 측은 임차인인 롯데쇼핑의 최저임금 인상 리스크를 '핵심 투자 위험'으로 들었다. 롯데쇼핑의 재무 구조 악화 시 자칫 임대료 수금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롯데하이마트 측은 "가계부채 증가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은 국내 소비를 감소시킬 수 있는 요소로 판단된다"며 "이러한 소비 여력 감소는 유통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이 영업현금을 창출하기에 매우 어려운 외부 환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투자자들에게 전했다. 

급격한 시장 환경 변화 구간을 지나고 있는 식품업·외식업 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거대 변수까지 만나 휘청이는 모습이다. KG케미칼 측은 외식 프랜차이즈인 KFC를 올해 4월 매각하기 직전 "외식 업계 전반에 다양한 브랜드가 등장해 시장이 커지면서 업종별 장벽이 붕괴되고 경쟁이 심화해 왔다. 동시에 식자재 원가와 최저임금 상승과 식품 안전성 이슈가 대두하고 있다"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전략 구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신세계푸드 측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 부담이 본격화된 2018년 이후 영업수익성이 저하 추세"라면서 "특히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소비가 침체되고 인건비 부담은 지속되며 수익성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저수익 사업장 정리 등의 노력으로 2021년 수익성이 회복되는가 싶더니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닥쳐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 상승을 몰고 왔다. 이에 따라 판관비가 많이 증가해 수익성이 재차 나빠졌다고 신세계푸드 측은 전했다. 

물류산업군에 속한 한진, CJ대한통운, 동원산업(동원로엑스) 등도 유통기업 못지않게 많은 인력을 운용한다. 이들 기업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인건비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 가중'을 우려했다. 물류업은 육상 운송, 항만 하역, 택배 등 각 사업 부문별로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건비성(도급비 등 위탁작업료) 원가가 비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진 측은 "앞으로도 정부 정책과 경기 상황에 따른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원가 상승 리스크를 해소하고자 인프라와 시스템 자동화를 확대 중"이라고 했다. 이 밖에 삼성물산, 티와이홀딩스 등 레저 사업을 벌이는 기업들도 지속적인 최저임금 인상 흐름을 경계했다. 

2024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7월1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 모니터에 표결 결과가 게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키오스크·밀키트 등 사업엔 호재"

모든 기업이 최저임금 인상에 우려를 표한 건 아니다. 키오스크(무인 주문 기계) 사업을 하는 인바이오젠, 효성(효성티앤에스) 등은 최저임금 상승 추세 속에 키오스크가 인건비 절감을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상황을 호재로 인식했다. HD현대 측은 "최저임금 상승, 주52시간 근무, 언택트(un+contact·비대면) 문화 확산 등 사회 변화와 맞물려 로봇 기반의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면서 "37년간의 로봇 사업을 통해 축적한 자동화 노하우를 기반으로 스마트 자동화 기술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SK 측은 보안 관련 계열사인 SK쉴더스의 무인주차 사업에 대해 "도심 지역의 인구 밀집화,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인한 주차 사업주의 비용 부담 증가 등의 이유로 최근 급격한 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풀무원 측은 "최저임금 인상 등 인건비 상승으로 (밀키트 같은) 전처리 식자재에 대한 니즈가 확대되고 있어 해당 사업의 양적·질적 성장이 예상된다"고 밝혀 여타 식품기업과 다른 관점을 내비쳤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인건비 상승 리스크를 극복하거나 위기를 (신사업) 기회로 바꾸는 역량이 기업들에 핵심적으로 요구되는 시대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대다수 기업에 아주 힘겨운 과제"라며 "글로벌 경기 침체와 산업 재편기까지 지나고 있는 가운데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세가 자칫 기업 경영에 족쇄로 작용하지 않도록 살피는 제도적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 노동계·경영계 "최저임금 제도 개선 필요" 한목소리 

최저임금 결정을 두고 올해도 사회적 갈등이 재연됐다. 이에 노동계·경영계 모두에서 피로감을 호소하며 제도 개선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 개선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두고는 또다시 입장 차를 내비쳤다. 

양대 노총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7월19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적용된 이후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최악의 최저임금 수준과 함께 산적한 제도 개선 논의는 기약 없이 미뤄져 해마다 반복되는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논의를 반복하게 만든다"면서 "노동자와 시민의 생존과 생계를 위한 임금과 공공성, 복지 강화를 위한 투쟁과 함께 하반기 최저임금 제도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국노총은 노동자위원 브리핑에서 "근본적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국민 경제의 건강한 발전이라는) 최저임금 제도 취지를 확립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경제단체들 역시 최저임금 결정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전경련, 경총, 중기중앙회, 소공연 등은 업종별 차등 필요성을 제시했다. 최저임금의 구분 적용을 도입해 숙박·음식업 등 임금 지급 능력이 부족한 업종에는 최저임금을 낮게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이 같은 구분 적용은 최저임금 제도의 목적과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노총은 "업종별 구분 적용 주장과 함께 해마다 반복되는 사용자 측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위기와 일자리 감소 등 괴담에 가까운 주장은 결국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 저임금 노동자를 대립·반목시키며 근본적 문제와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을과 을의 경쟁과 갈등을 조장·심화시킨다"고 비판했다. 앞서 최저임금위원회가 7월22일 내년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할지를 놓고 투표한 결과는 반대 15표, 찬성 11표로 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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