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팩 이상급등에... 금융당국 일각선 400% 가격제한폭 미적용 검토
상장일 주가 상승 폭을 400%로 확대한 후 휘몰아쳤던 공모주 투자 열풍이 다소 잠잠해졌다. 그러나 신규 상장 공모주 중에서도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은 상장 당일 주가가 공모가 대비 크게 올랐다가 이후 추락하는 ‘이상’ 현상이 반복 발생하고 있다.
스팩은 껍데기뿐인 회사라 다른 기업과 합병하기 전까지 주가가 공모가 수준에서 움직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신규 상장주의 상장일 가격 제한 폭을 늘리는 제도 시행 후, 스팩의 원래 목적과 관계없이 단기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단타족이 몰리면서 스팩 주가가 크게 출렁인 것으로 풀이된다. 스팩을 일반적인 주식으로 생각하고 공모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산 투자자라면,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금융 감독 당국이 가격 급등락으로 인한 투자 손실 위험을 경고해도 일부 투자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팩 투자에 새로 뛰어드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금융 당국 일각에선 이런 부작용을 감안해 공모주 상장일 주가가 공모가의 400%까지 오를 수 있게 한 현재 규정에서 스팩을 제외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최근인 7월 27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공모주 3개 중 스팩을 제외한 나머지 두 종목은 상장 당일에 공모가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가 끝났다. 신약 개발 기업 파로스아이바이오는 이날 공모가(1만4000원)보다 37.64%(5270원) 하락한 8730원으로 마감했다. 이날 함께 상장한 비메모리 반도체 후공정 기업 에이엘티도 공모가(2만5000원) 대비 9.80%(2450원) 내린 2만2550원으로 마감했다.
이날 유일하게 스팩 공모주인 유안타제14호스팩만 공모가(2000원) 대비 8.75%(175원) 오른 2175원으로 마감했다. 유안타제14호스팩 주가는 하루 동안 급변했다. 장 중 공모가 대비 193.5% 오른 5870원까지 치솟았다가 뚝 떨어졌다. 유안타제14호스팩은 28일엔 2220원까지 올랐다가 전날 종가 대비 4.83% 하락한 2070원으로 거래가 끝났다. 거래 사흘째인 31일엔 0.48% 하락한 2060원으로 마감했다.
스팩 주가 급등락은 약 한 달 전 공모주 따따블(공모가 대비 400% 상승)이 가능해진 후부터 극심해졌다. 한국거래소는 6월 26일부터 신규 상장 주식의 상장일 가격 변동 폭을 공모가 대비 최고 260%에서 400%로 확대했다. 따따블 기대로 공모주 시장으로 자금이 급격히 몰렸다. 이후 일반 공모주는 거품이 차츰 빠지는 양상을 보였지만, 스팩은 주가 급등을 보고 추격 매수하는 현상이 여전한 상황이다.
금융 감독 당국은 스팩 주식의 본질을 모르는 상태에서 최근 공모주 광풍 속에 스팩 주가가 오른 것만 보고 뒤늦게 따라 샀다가 낭패를 보는 투자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본다. 스팩은 비상장사와의 합병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증권사가 설립해 상장시키는 페이퍼 컴퍼니(명목 회사)다. 아무런 사업을 하지 않는다. 스팩이 우량 기업을 찾아 합병하면, 합병 대상 기업은 증시에 우회 상장할 수 있다. 스팩은 상장 후 3년 안에 다른 법인과 합병을 하지 못하면 청산된다. 합병할 때도, 합병에 실패해 스팩이 청산될 때도, 스팩 가치는 공모가 수준만 인정받는다.
대개 합병이 이뤄지기 전까지 스팩 주가는 공모가 수준에서 유지되는 게 보통인데, 최근엔 이례적으로 상당수 스팩이 상장 직후 수백 퍼센트씩 올랐다. 스팩 시가총액은 100억 원대 안팎으로 크지 않고 발행 주식 대비 유통 물량이 적다. 또 기존 주주가 없기 때문에 상장일 개인투자자 위주로 매매된다. 이 때문에 매수세가 조금만 붙어도 주가가 확 오르고, 반대로 주가가 확 떨어지기도 한다. 공모주 상장일 가격 변동 폭 확대로 단타족이 단기 수익을 내고 빠져나가기 더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게 금융 투자업계의 해석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7일 ‘신규 상장 스팩의 상장일 주가 급등 관련 투자자 유의사항’이란 제목의 자료를 내고 “공모가 대비 주가가 높은 스팩에 투자할 경우 손실 발생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투자 주의보를 내렸다. 스팩 주가가 급등해 내재 가치(공모가 수준)보다 고평가된 상태일 때 스팩을 사면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싼 가격에 사는 건 비합리적 투자라는 얘기다.
금감원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7월 21일까지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18개 스팩 중 상반기(1~6월) 데뷔한 스팩 15개의 상장일 주가는 공모가 대비 평균 4.5% 올랐다. 반면 따따블 제도 시행 직후인 7월 1일부터 21일까지 상장한 스팩 3개(교보14호스팩, DB금융스팩11호, 에스케이증권제9호스팩)의 상장일 주가는 공모가 대비 평균 151.8% 상승했다. 상장 이후 주가 변동 폭도 컸다. 7월 상장한 3개 스팩은 상장 7거래일 후 주가가 상장일 종가 대비 평균 46.5% 하락했다. 스팩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보다 크게 오른 상태에서 스팩을 산 투자자는 평가 손실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스팩은 적정 가격이 공모가 수준에 불과한데, 최근 스팩 주가가 다른 일반 주식처럼 급등하니까 스팩의 특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무작정 따라서 사는 투자자가 많다”며 “공모가보다 높은 가격에 스팩을 샀다가 빠져나오고 싶어도 매도 주문을 받아줄 매수자가 없어 결국 합병이나 청산 전까지 물려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진다”고 했다.
감독 당국 일각에선 공모주의 상장일 가격 변동 규정 변경 당시 스팩 공모주 가격 급변동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 제도 시행 후 상장한 스팩 4개의 매매 움직임을 보면서 당국이 뒤늦게 문제를 인지했다는 것이다. 스팩엔 예외를 둬 새 가격 제한 폭을 적용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제도 변경 주체인 한국거래소 측은 새 제도를 시행한 지 겨우 한 달이 지났기 때문에 제도 변경 효과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스팩 가격도 새 제도에 따라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시장이 제도를 이해하고 소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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