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바람 앞에 흔들리는 'K-반도체' [視리즈]

고준영 기자 2023. 8. 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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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視리즈] 반도체 한파 그 후➊
동틀녘 기다리는 K-반도체
삼성전자 2분기 연속 적자
중국 리오프닝 기대했지만
되레 피크차이나론 대두해
급부상한 AI 반도체도 문제
메모리 강한 K-반도체지만
AI 반도체는 경험 부족해
기존 반도체 산업의 판도를 뒤바꿀 만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반도체 한파는 언제쯤 누그러질까. 시장의 관심은 반도체 업황이 언제 반등할지에 쏠려 있다. 사실 당연하다. 그동안 반도체 강국인 우리나라의 앞길을 가로막는 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침체뿐이었다.

#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우리가 굳건한 뿌리를 내려왔던 반도체 산업의 지형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어서다. 그 때문에 우리의 강점이 흐려지고 약점이 두드러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 부는 변화의 바람에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더스쿠프 視리즈 '반도체 한파 후' 첫번째 편이다.

반도체 한파가 여전히 거세다. 올해 들어 세계 시장에서 팔린 반도체는 1978억 달러(1~5월 누적) 규모에 그쳤다(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 자료). 지난해 같은 기간에 판매된 반도체(2522억 달러)와 비교하면 21.6%나 적다. 판매량이 가파르게 줄면서 창고엔 재고만 쌓였다. 지난 4월 기준 국내 반도체 재고는 전년 동기 대비 80.8% 증가했고, 제조업 재고율은 130.1%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기업 실적도 신통찮다. 지난 1분기 14년 만에 영업손실을 냈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는 2분기도 적자를 기록했다. 1분기에 이어 2분기 손실 규모도 4조원대에 달했다. SK하이닉스와 미국 인텔도 지난 1분기 역대 최대 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고개를 떨궜다.

물론 경기침체가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건 아니다.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도 나오게 마련이다. 통상 반도체 시장에서 침체의 주기가 2년가량 이어졌다는 걸 감안하면 내년께엔 업황이 회복세로 접어들 거라고 예측해볼 수도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지난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4조원대 적자를 기록했다.[사진=뉴시스]

실제로 최근 시장 안팎에선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찍었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참고: 반도체 바닥론을 단정 지을 만한 명확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메모리 반도체 고정거래가격의 선행지표로 통하는 현물가의 하락세가 주춤하고 있다는 점,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감소폭이 증권가의 당초 전망치보다는 양호하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따져봐야 할 건 반도체 업황의 회복 시점만이 아니다. 반도체 침체기가 끝나고 시장이 활기를 되찾더라도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달콤한 열매를 기대하지 못할 수 있어서다. 이유는 간단하다. 반도체 산업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서다.

■ 변수➊ 중국 리스크 = 가장 먼저 살펴볼 변화는 중국 시장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가장 큰 시장은 중국이다. 지난해 기준 반도체 전체 수출액 가운데 대중對中 수출액이 차지한 비중은 무려 40.3%다. 메모리 반도체만으로 범위를 좁히면 중국 시장 비중은 51.4%까지 높아진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중국 시장이 회복하지 않으면 국내 반도체 업계도 살아나기 힘들다는 거다.

문제는 중국 시장의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디다는 점이다. 그동안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빗장을 걸어 잠갔던 중국은 지난해 12월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 소식을 알렸다. 중국이 경제활동을 재개하면 위축된 반도체 시장에도 반등의 단초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현실은 달랐다. 중국의 경제 회복 속도는 예상을 밑돌았다. 최근 발표한 중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시장 전망보다 1%포인트 낮은 6.3%에 그쳤고, 6월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21.3%를 기록했다.

여기에 국제통화기금(IMF)은 2024년(4.5%)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5.2%)보다 더 떨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내놨다.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는커녕 중국의 성장세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으로 접어들었다는 '피크차이나(Peak China)'론에 되레 힘이 실렸다.

실제로 중국 시장을 발판 삼아 반등을 기대했던 국내 반도체 업계도 별다른 효과를 보진 못했다. 올 상반기 우리나라의 반도체 대중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9.8%(메모리 반도체는 50.1%) 감소했다. 여기에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 조치까지 강화하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회복 속도는 더 더뎌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변수➋ AI 전성시대 = 대비해야 할 건 중국 시장 리스크만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의 지형 변화도 예민하게 살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무게추가 이미 모바일에서 인공지능(AI)으로 옮겨가고 있어서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인 AI와 관련한 투자와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면서 "수요가 부진한 모바일용 제품 대신 AI 반도체가 반도체 산업의 반등을 견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AI가 새 반도체 시대를 열어젖힐 거란 건데, 이는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숱한 반도체 기업들이 불황에 허덕이는 가운데서도 AI 반도체 분야를 이끄는 기업들은 승승장구했다.

대표적인 게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다. 엔비디아가 만드는 그래픽처리장치(GPU·Graphic Processing Unit)가 AI 개발을 위한 핵심 제품으로 꼽히면서 이 기업의 주가도 치솟았다.

올해 초 140달러대에 그쳤던 엔비디아의 주가는 지난 5월 400달러대를 돌파하며, 반도체 기업 중 최초로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주가만 폭등한 게 아니다. 엔비디아는 지난 1분기 67억3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전분기 대비 두자릿수 성장률(13.5%)을 기록했다.

AI 특수를 누리는 건 엔비디아와 같은 '설계' 전문기업(팹리스·Fabless)만이 아니다. 반도체 '생산'을 전담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Foundry) 기업 TSMC도 AI 덕을 톡톡히 봤다.

중국의 경제 성장 속도가 예상을 밑돌면서 '피크차이나'론이 주목을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TSMC는 엔비디아의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곳으로 지난 2분기 2019억5800만 대만달러(약 8조254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전분기 대비 영업이익이 12.7% 감소하긴 했지만, 현 반도체 시장 상황과 2분기가 반도체 비수기로 꼽힌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 선방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성전자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이 이야기는 視리즈 '반도체 한파 후' 두번째 편에서 이어나가보자.

고준영 더스쿠프 경영전문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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