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초 전 기억도 믿지 마라, 거짓 기억은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곽노필 2023. 8. 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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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 문자 실험서 확인…이전 지식의 영향인 듯
방금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거짓 기억이 형성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픽사베이

방금 전에 일어난 일도 잘못 기억될 수 있을까?

뇌에 저장된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약해진다. 오래 전에 겪거나 본 일은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거나 다른 기억과 뒤섞여 뭐가 진짜인지 혼동되기도 한다.

그런데 통념과는 달리 바로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거짓 기억이 형성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불과 1~2초 전의 일에 대한 기억조차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가 중심이 된 국제연구진은 성인 534명을 대상으로 알파벳 문자를 실제 방향과 거울 방향으로 보여준 뒤 강조 표시된 문자를 기억하도록 하는 네 가지 실험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공개학술지 ‘플로스 원’에 발표했다. 일부 참가자에겐 원래 기억을 헷갈리게 하도록 설계된 무작위 문자가 포함된 간섭 슬라이드를 보여줬다. 연구진은 단기 기억에 대한 실험 결과 전체적으로 잘못 기억할 확률은 10%였으나 일부 실험에선 오류율이 40%나 됐다고 밝혔다.

바로 직전에 본 것인데도 잘못 기억을 하는 비율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뭘까?

연구진은 인간의 뇌는 어떤 것을 보기를 기대하느냐에 따라 기억이 달라지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번 연구에 참가한 사람들은 서양 알파벳에 매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뇌는 실제 문자에 더 익숙해져 있고, 당연히 실제 문자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실제 문자 C 대신 거울에 비친 형태의 뒤집어진 Ɔ가 나타났을 때 이 거짓 문자를 실제 문자로 더 쉽게 착각했다. 문자를 본 지 1초가 지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사람들은 실제 문자(왼쪽)보다 가짜 문자(오른쪽)에 대한 잘못된 기억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류율도 높아졌다 PLOS One

✅ 사전 지식이 일으키는 착각의 효과

그러나 잘못된 기억 탓이 아니라 잘못된 추론의 결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기억이 얼마나 확실하다고 생각하는지 1~4점의 점수로 매기도록 했다. 점수를 살펴본 연구진은 추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억 자체가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참가자들은 일관되게 자신이 본 것과 다른 문자를 보고도 실제로 본 것이라고 자신했다.

연구진은 특히 ‘실제 문자를 가짜 문자로 기억’하는 경우보다 ‘가짜 문자를 실제 문자로 착각’하는 경우가 더 많은 점에 주목했다. 이는 해당 사물에 대한 사전 지식에 의해 기억 오류가 일어난 결과라고 연구진은 해석했다.

연구진은 두가지 다른 시점의 측정을 통해 애초에 인지를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를 가려내는 실험도 했다. 문자를 보여주는 시간은 0.25초였다.

애초 문자를 잘못 인지한 것이 원인이라면 문자를 본 후 0.5초와 3초 후의 오류율이 동일하게 나타날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류율이 증가했다면 이는 잘못된 기억이 형성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험 결과 0.5초 후의 오류율은 20%였으나 3초 후엔 오류율이 30%로 늘었다. 아주 짧은 단기 기억 실험이었지만 시간이 길수록 오류율도 높아졌다.

쇼핑몰 실험에서 어렸을 적 쇼핑몰 안에서 길을 잃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은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지도 않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해냈다. 픽사베이

✅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에 좌우된다

오래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선 거짓 기억이 쉽게 생성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이미 여럿 나와 있다. 예컨대 1990년대의 유명한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심리학) 박사의 ‘쇼핑몰 실험’에선 사람들이 어렸을 때 쇼핑센터에서 길을 잃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은 뒤, 자신이 경험하지도 않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해냈다.

‘퍼지 추적 이론’에 따르면 이런 거짓 장기 기억은 두 부분의 기억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실제 일어난 사건 부분(축약), 다른 하나는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는 부분(요점)이다. 연구진은 거짓 단기 기억에 대해서도 퍼지 추적 이론을 어느 정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우리의 기억은 입력되는 즉시 이전의 경험 및 기대와 합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네 가지 실험을 통해 시각적 자극이 시야에서 사라진 지 아주 짧은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경우에도 잘못된 기억이 생겨난다는 사실이 일관되게 드러났다”며 “이는 가장 최근의 일을 회상하는 것도 거짓 기억의 영향을 받기 쉽다는 걸 보여준다”고 밝혔다.

결국 단기 기억이라고 해서 방금 본 것을 항상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연구진은 기억은 우리가 ‘그럴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에 좌우되며, 이 예상은 이전에 형성된 ‘기억의 자국’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83257

Seeing Ɔ, remembering C: Illusions in short-term memory

PLOS ONE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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