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LG생건 어디까지 추락하나
● 머나먼 옛이야기 된 ‘황제주’ 영광
● 中 소비 성향 변화 + 日·佛 약진 ‘진퇴양난’
● 예견된 위기, 양날 검 中 시장
● 대체 시장 뚫고, 경영진 바꾸고… 생존 위해 몸부림
이젠 두 회사 모두 과거 영광을 찾기엔 너무 멀리 온 듯 보인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리오프닝'에 기대를 건 것도 잠시, 올해 들어 6월 말까지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29%, LG생활건강 주가는 36.4% 하락했다. 특히 LG생활건강은 6월 말부터 52주 신저가 기록을 잇고 있다.
황제주 시절을 까마득한 추억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은 사드 사태와 코로나19 등 외부 환경의 갑작스러운 변화지만 모든 걸 '남 탓'으로 돌리긴 어렵다. 사실 이전부터 높은 중국 시장 의존도에 대한 경고등은 계속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두 회사는 예전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中 "韓 화장품은 명품"이라던 시절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처럼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은 한층 더 적극적으로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모델 기용부터 제품 기획, 유통망까지 중국 시장에 맞췄다. 화장품산업은 전형적인 내수산업에서 효자 수출산업으로 탈바꿈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2년 라네즈, 2005년 마몽드로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중국 법인 매출이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연평균 25% 이상 성장했다. 그 뒤로는 상승 곡선이 더 가팔라졌다. 2009년 중국 매출은 1176억 원에 달한다. 전년 대비 55%나 증가한 수치다.
LG생활건강은 한발 더 빨랐다. 1995년 국내 화장품 회사 가운데 처음으로 중국에 진출했다. 당시 부유층·젊은 층 소비자를 상대로 고가 마케팅을 펼치면서 'LG생활건강 화장품은 명품'이라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했다. 이 시기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며 부유층이 대거 양산됐다. 이에 따라 비싸고 고급스러운 화장품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는데, LG생활건강엔 절호의 기회가 됐다.
두 회사의 제품 인기는 2010년대 중후반까진 말 그대로 '열풍'과도 같았다. 주가 역시 중국발(發) 훈풍에 힘입어 나날이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업계에서도 한국 화장품의 성공 비결을 분석하는 자료가 쏟아져 나왔다. 당시 나온 분석을 살펴보면 비결은 크게 △기존 글로벌 화장품에서 볼 수 없었던 아시아인 맞춤형 상품 △빠르게 바뀌는 유행에 대한 재빠른 대응 등이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큰 요인은 단연 품질 경쟁력이다. 막대한 자금력이 밑거름이 됐다. 제품 기획·개발, 홍보·마케팅, 포장까지 어느 것 하나 떨어지는 게 없었다. 물론 한류 열풍을 계기로 시작된 호실적인 만큼 한류가 사라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다. 2014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한 "초도 구매는 광고나 유행에 의해 이뤄지지만 재구매는 구매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에서 당시 한국 화장품업계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소비자 변하고, 일본·프랑스 세지고
KOTRA(코트라)에 따르면 2015~2021년 중국 화장품 시장의 연평균 복합성장률(CAGR)은 10.3%에 달한다. 이는 전 세계 2.7%, 미국 2.0%, 일본 2.8% 대비 약 4배에 달하는 수치다. 시장규모 역시 3188억 위안에서 5726억 위안으로 확대됐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수준이다. 성장 여력도 크다. 2021년 중국의 1인당 평균 화장품 소비액은 62달러다. 일본 306달러, 미국 279달러, 한국 270달러 대비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중국 소비자의 소비 성향 변화다. 주요 소비자층이 달라지면서 소비 성향이 바뀌었다. 현재 중국 내 화장품의 주요 소비자층은 1990년대 이후 태어난 19~35세 여성이다. 한 차례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이들은 윗세대보다 외모에 관심이 많으면서 소비 능력도 더 크다.
기존 성향과 가장 크게 달라진 건 해외 유명 브랜드를 맹목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입소문을 중시하고 '가성비' 역시 챙긴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국내산(중국산)을 이용하자는 '애국소비'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전보다 높아진 중국 화장품 수준이 이러한 경향에 힘을 보탰다.
과거 중국은 화장품·식품에서만큼은 안전에 대한 우려로 외국 브랜드를 선호해 왔지만 최근 몇 년 새 자국 제품 수요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품질이 좋아지고 안전성 역시 강화돼 우려할 만한 요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프랑스·일본 등 타 국가의 약진도 원인이다. 한국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다른 국가 화장품으로 분산됐다. 2016년부터 3년 연속 중국 화장품 수입 시장을 선도하던 한국은 2019년에 일본과 프랑스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특히 일본이 치고 올라왔다. 일본은 기존 고가 중심의 일본 화장품을 중저가로 확대하며 한국이 주로 진출한 중국 중저가 화장품 시장에 진입했다.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티몰이 시작한 6·18 쇼핑축제 사전 판매에선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나스가 화장품 분야 1위를 기록했다. 중국 프로야의 '차이팅'은 6위에 이름을 올렸다. LG생활건강(후)과 아모레퍼시픽(설화수)은 순위권에도 오르지 못했다.
양날의 검에 베이다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의 쇠퇴 원인은 외부에만 있지 않다. 사실 두 회사의 높은 중국 매출 의존도는 일찌감치 '양날의 검'으로 지적받았다. 자칫 중국 시장이 무너지면 회사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됐다.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 대중(對中) 화장품 수출 규모는 2013년 2억7831만 달러에서 2015년 10억8743만 달러로 3년 새 4배 성장했다. 특히 한국 화장품이 중국에서 황금기를 맞은 2015년 한국 화장품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1%에 달했다.
당시 향후 중국의 경기 성장 둔화와 맞물려 화장품 소비 증가세가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했다. 이 시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6%대로 고착화되는 추세였다. 화장품 시장에 중국 브랜드가 가세하면서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 역시 이전부터 꾸준히 나왔다.
문제는 제기됐지만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마땅한 대체 시장이 없었던 데다 다른 시장을 키우기도 전에 코로나19와 같은 예상 외 변수가 불거지면서 대응할 여유를 잃었다. 물론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이 마냥 손 놓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넥스트 차이나'를 발굴해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려고 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2015년 발표한 글로벌 사업 비전에서 2016년 중동, 2017년 중남미에 차례로 진출해 세계 시장 공략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LG생활건강 역시 이 무렵 중동·중남미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중동과 중남미는 중산층 증가와 함께 화장품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꼽혔다. 중국에 이은 거대 시장 유럽과 미국의 문도 꾸준히 두드렸지만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장벽이 너무 높았다. 이미 글로벌 화장품 선두 기업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물러설 곳 없어… '어려워도 뚫는다'
어려워도 방법이 없다. 막다른 길이다.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마저 사그라들면서 두 회사 모두 중국을 대체할 시장이 필요해졌다. '포스트 차이나'는 단순히 성장 정체를 벗어나기 위함이 아닌 생존을 좌우할 문제로 떠올랐다.아모레퍼시픽은 북미 시장에 가장 힘을 실으면서 일본·동남아 등으로 진출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북미를 대표하는 유통 채널 세포라. 아마존에 설화수·라네즈 등 대표 브랜드 입점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 시장 전망이 밝다는 점도 위안거리다. 한국 콘텐츠의 선전에 힘입어 일본에서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수입화장품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본의 화장품 수입액 가운데 한국 제품은 217억 엔으로 지난해에 이어 1위를 차지했다. 전년 동기 대비 24% 증가한 액수다.
LG생활건강도 현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카드로 북미 시장을 선택했다. 2019년부터 점진적으로 준비해 온 북미 사업을 좀 더 빠르게 전개할 계획이다. LG생활건강은 2019년 디에이본의 전신 뉴에이본, 2020년 피지오겔의 아시아 및 북미 사업권을 인수했다. 2021년에는 미국의 패션 헤어케어 브랜드 알틱 폭스를 보유한 보인카에 이어 지난해엔 10~20대를 위한 중저가 화장품을 판매하는 더크렘샵도 인수했다. 4년 동안 이들 회사를 사들이는 데 6000억 원이 넘는 돈을 투입했다.
조은아 더벨 기자 goodgood@thebe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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