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어린 리얼함, ‘콘크리트 유토피아’[한현정의 직구리뷰]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kiki2022@mk.co.kr) 2023. 8. 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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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우울하네...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병헌 스틸. 사진I롯데엔터테인먼트
이병헌은 찢었고, 리얼리티는 미쳤다. (우려했던) 신파 없이 절망 그 자체다.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해지는 과정은 비정하고도 씁쓸하고 웃프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욕할 수 없다. 신념을 지킬 용기도 감히 나질 않는다. 암울한 만큼 짙은 여운이 남는, 웰 메이드 재난물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주민 대표 ‘영탁’(이병헌)과 입주민들, 그리고 외부인들이 오로지 살아 남기 위해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을 담았다.

웹툰 ‘유쾌한 왕따’를 원작으로 한 ‘콘크리트 유니버스’ 중 관객들에게 공개된 첫 주자이자, ‘잉투기’, ‘가려진 시간’ 등을 선보인 엄태화 감독의 신작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병헌 스틸. 사진I롯데엔터테인먼트
오프닝부터 강렬하다. 한국의 70, 80년대의 아파트가 어떻게 만들어져 현대까지 이어졌는지 다큐멘터리식 구성으로 소개하다 대지진의 순간이 교차된다. 인류 멸망에 가까운 대재앙의 순간, 그 안에서 위풍 당당하게 살아 남은 황궁 아파트의 모습이 보이고, 웅장한 OST가 울려 퍼진다. 짧지만 강렬하고, 신박하고도 매혹적인 시퀀스다.

황궁 아파트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집을 잃고,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도 크게 당황한다. 생존자들은 하나 둘 몰려오고, 상황은 예측 불허다. 해묵은 감정들도 스멀 스멀 올라온다. 시스템이 무너진 이곳에서 주민들과 외부인들의 처절하고도 불편한 동거의 시작, 살기 위한 전쟁의 서막이 오른다.

이병헌은 등장부터 미쳤다. 아니 내내 빛난다. 불구덩이에 몸을 던져, 마치 의적처럼 등장한 그는 그저 평범한, 아니 짠내 가득한 아저씨의 얼굴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의 아우라, ‘권력’으로 점차 변해가는 광기, 이를 넘어 ‘집착’으로 섬뜩해진 분위기까지, 모든 걸 완벽하게 표현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내부에선 말 할 것도 없고, ‘빅4’로 맞붙는 경쟁작들, 이를 이끄는 쟁쟁한 김혜수 염정아 설경구 조인성 박정민 등 이름값 높은 그 누구와 견주어도 압도적인 연기력이요, 캐릭터 해석력이다. 에너지의 배분, 굴곡진 감정선의 표현, 발성, 비주얼 등 모든 면에서 표현의 디테일이 어나더 레벨이다. ‘내부자들’ 이후 또 한 번 그의 경이로운 연기 경지를 확인할 수 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박보영 박서준 스틸. 사진I롯데엔터테인먼트
박서준 박보영은 무난하다. 아파트 안팎에서 마주한 냉혹한 현실에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민성(박서준)과 변화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명화(박보영)로 분한 이들은 덤덤하고도 우직하게 제 역할을 해낸다. 부녀회장 금애(김선영)는 이번에도 엄지 척이다.

다만, (사실상 작품의 메시지를 품고 있는) 박보영의 캐릭터는 (현실적 관점에서 볼 때) 말뿐인 이상향이라 고구마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가장 몰입되는 건 박서준이지만 내내 안쓰럽고 안타깝다.

무엇보다 영화의 강점은 명확한 선악이 없다는 점이다. 우려했던 작위적 쥐어짜기 신파도 과감히 걷어냈다. 담백 그 이상의 리얼리티에 모든 인물들의 심리를 다채롭게 보여준다. 그래서 과몰입되고, 그렇기에 무거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내내 답답하고 우울하다.

‘만약 나라면’이라는 가정 하에 쉽사리 희망적 답변을 내놓을 수 없기에, 잔혹한 현실 앞에서도 현실적으로 ‘옳은’ 대안을 행할 자신이 없으니, 인간성 상실의 상황에서 펼쳐질 미래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그나마 ‘이상적인’ 인물도 응원할 수 없는 자신과 마주하는 게 씁쓸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 사진I롯데엔터테인먼트
감독은 이 같은 ‘암흑’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곳곳에 블랙코미디를 배치한다. 이 또한 현실적이다. 그럼에도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고, 그 속에서 희노애락을 찾는 게 본성이니까. 노련한 배우들은 이 또한 기가 막히게 해낸다. 특히 이병헌 김선영의 소소한 팀플레이는 어느 색깔로도 탁월하고 그 시너지는 영화의 유일한 숨통이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다뤄온 그 어떤 작품들보다 촘촘하고 현실적이며, 과감하고, 즐길거리도 풍성하다. 연출, 연기, 음악, CG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아쉬운건 엔딩이다. 현실적인 관점으로 쭉 달려왔지만 한 번에 몰려오는 빛이, 캐릭터의 엔딩이 안도감보단 어쩐지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 마지막 만큼은 희망으로 다루고자 한 감독의 배려가, 관객의 바람이 담긴 최선임을 알지만, 이전까지의 리얼리티 때문인지 자연스레 몰입이 되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극장을 나선 후에도 불편한 상상들이 머릿 속에서 펼쳐진다. 많은 이야깃거리를, 깊은 잔상을 남기는 게 영화의 귀중한 미덕임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어두운 것들 뿐이라 행복지수나 쾌감지수는 상당히 낮다.

오는 8월 9일 개봉한다. 러닝타임 1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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