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콘크리트 유토피아', 서로에게 재난이 된..인간성의 충돌 ①

김미화 기자 2023. 8. 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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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스타뉴스 | 김미화 기자]
/사진=콘크리트 유토피아

선과 악의 충돌이 아니다. 인간성과 인간성의 충돌이다. 재난 영화로 포장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인간성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스크린을 찾았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다. 대한민국에 대지진이 발생하고, 모든 것이 무너진다. 그 와중에 홀로 우뚝 서서 남은 황궁 아파트. 그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주민들과, 아파트로 대피한 외부 사람들의 공생이 시작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미래 속에서 아파트 주민들은 식량 식수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자신들이 선택받은 아파트의 주민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들은 결국 아파트 주민이 아닌 외부인을 몰아내기로 한다. 아파트의 주민 중 한 명인 영탁(이병헌 분)은 1층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살신성인하며 불 속에 뛰어들어 불을 끄고 이 같은 용기 덕분에 단숨에 주목받아 아파트의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갈 주민대표가 된다. 영탁은 갑자기 씌워진 감투가 낯설지만, 어느새 권력을 즐기게 되고 비 주민을 몰아내고 주민들을 위해 앞장선다. 그렇게 주민과 비 주민의 패가 나누어지고,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는 사람들과 살아남기 위해 버티려는 사람들이 충돌한다. 서로의 이기심과 인간성이 부딪치며 주민들은 비 주민들에게, 비 주민들은 주민들에게 서로 재난이 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영화이지만, 재난 그 자체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고군분투보다 그 속에서 서로에게 재난이 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리는 데 힘을 쏟았다. 재난과 인간, 혹은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닌 인간성과 인간성의 충돌을 그린다.

/사진='콘크리트 유토피아'

서로에게 소중한 가족인 민성(박서준 분)과 명화(박보영 분)는 재난 속에서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충돌한다. 아파트 주민과 비 주민은 생존이라는 같은 목표를 두고서도 서로 다른 이해 방식으로 부딪치고 아파트 주민끼리도 방범대로 나서는 적극 주민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립한다. 황궁 아파트라는 작은 사회 속, 온갖 욕망과 갈등과 권력이 활개를 친다.

엄태화 감독은 거대한 비주얼 속 묵직한 이야기를 촘촘하게 담아냈다.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명연기 속,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관객의 가슴에 그대로 전달된다. 뚝심 있는 연출이고, 정확한 표현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평범한 한국형 재난 영화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아파트가 가진 의미를 이용해 인류 공통적인 인간성을 담아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라고 이름 붙인 디스토피아 세계관 속에서 극한의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라면 어땠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를 본 후에도 계속 여러 생각을 곱씹게 만드는 것은 감독 엄태화 감독의 힘이다.

/사진='콘크리트 유토피아'

이병헌은 대단한 배우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영탁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는 이병헌을 만나 생동감 있게 영화를 이끈다. 영화 초반 등장한 이병헌의 얼굴과, 후반부 이병헌의 얼굴을 비교해서 보면 그가 이 영탁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고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다. 이 사회의 피해자가 또 어떻게 이 사회의 가해자가 되는지 보여주며 '내 아파트 한 채' 라는 목표를 위해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투영한 모습으로 씁쓸함을 남긴다.

박서준 역시 좋은 얼굴을 보여줬다. 평범한 공무원이자, 가족인 아내를 지키려는 민성이 생존 앞에서 괴로워하면서도 그 사회에 흡수되고 앞장서게 되는 모습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박서준은 너무 튀지 않게, 또 밋밋하지도 않게 밸런스를 잡으며 민성을 표현했다. 함께 부부 호흡을 맞춘 박보영은 현실에 순응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명화를 연기하며 영화의 다른 방향으로 물꼬를 튼다. 말간 얼굴로 상황을 묵묵히 견디며 홀로 투쟁하는 명화는 이 영화의 희망이다. 박보영 역시 차분하게 캐릭터를 잘 표현해 냈다.

김선영, 김도윤, 박지후는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작품 속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이어갔다. 흠잡을 데 없는 배우들의 연기와 어두운 배경이 어우러져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좋은 연출, 좋은 연기, 명확한 메시지가 한데 모여 묵직한 영화가 탄생했다. 극장을 나서는 순간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다만 여름 극장가를 찾는 관객들이 선택할 만한 오락 영화가 될지는 미지수다. 속이 뻥 뚫리는 재미나 시원한 웃음이나 즐거움은 없지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웰메이드 영화를 찾는 관객이라면,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8월 9일 개봉. 러닝타임 130분.

김미화 기자 letme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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